스페인-카탈루냐,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
  • 박미선 스페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8 15:55
  • 호수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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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간 계속된 카탈루냐 독립 요구에 스페인 정부 무력 진압

 

요즘 스페인 카탈루냐주(州)의 주도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밤 10시가 되면 수저로 냄비를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도시를 뒤덮는다. 외부인에겐 소음처럼 들리는 이 소리는 10여 분간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스페인어로 ‘카솔라다(cassolada)’라고 부르는 이 행위는 스페인 중앙정부에 항의하는 카탈루냐 독립 지지자들의 일종의 항의 표시다. ‘카솔라다’는 스페인어로 냄비란 뜻을 지닌 ‘카솔라(cassola)’에서 파생된 단어다. 2016년 12월4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각 집에서 1분 소등 시위를 벌인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카탈루냐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은 국경일이 아닌 평일임에도 카탈루냐주 깃발인 ‘에스텔라다’를 발코니에 내걸었다. 독립 지지자들의 이 같은 열망은 10월1일 강행된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기점으로 최정점에 달했다.

 

카탈루냐 주민들의 다수가 독립을 이처럼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사실 스페인과 카탈루냐는 회사 근무시간이나 상점의 영업시간이 각자 다를 만큼 생활방식의 차이가 크다.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주민인 다니 마르티네즈(여·41)의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페인 내에서 우리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생각이나 생활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코 독재 시절 동안 스페인 전통인 투우 행사 개최를 강요하고, 학교에서는 ‘카탈란’(카탈루냐어) 교육을 금지시켰다. 스페인에서 적용하고 있는 근무시간이나 영업시간을 강제로 적용시켰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GDP(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 더 많은 재정적자를 부담해야만 한다. 오히려 카탈루냐 문화행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해가 지날수록 줄어들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0월11일 열린 카탈루냐 분리독립 지지 집회 참가자들 © 사진=AP연합

 

지원 줄고, 재정부담 늘고

 

사실 스페인의 역사와 정치제도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단어는 ‘제국주의’ ‘무적함대’ ‘프랑코 독재’ 등일 것이다. 하지만 카탈루냐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곳이다. 작가 조지 오웰은 1938년 쓴 그의 책 《카탈루냐 찬가》에서 바르셀로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바르셀로나의 상황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기에는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자본주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 행동하려 노력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1936~39년) 당시 직접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탈루냐 찬가》를 썼다. 책에 보면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갈 때도 카탈루냐는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지방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카탈루냐 주민들이 나름의 자부심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염원도 여기서 비롯됐다.

 

카탈루냐 투쟁의 역사는 짧지 않다. 카탈루냐는 1714년 9월11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패하면서 자치권을 박탈당했다. 2014년 자치권을 박탈당한 지 300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에 대한 의견을 묻는 비공식 투표가 시행돼 80.76%가 독립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스페인 중앙정부는 투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6일 카탈루냐주 의회는 분리독립 투표를 2017년 9월에 치를 것을 가결했지만, 스페인 헌법재판소에선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카탈루냐 주 의회와 대다수의 독립 지지자들은 10월1일 투표를 강행했다.

 

이날 스페인 경찰의 진압을 한국에선 편집된 몇 십 초 영상으로만 봤겠지만, 투표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1980년 5월 광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투표 참가자 야스미나(여·25)는 이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투표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새벽 6시쯤 일찍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경찰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밤새 투표함을 지키고 있던 시민들이 있었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밤새 그것을 지켜야만 하는 현실에 놀라고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밀고 때리기 시작했다. 내 옆에 서 있던 80대 할머니가 경찰의 곤봉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고 그녀를 일으키기 위해 도우려는 저에게도 경찰의 폭력이 이어졌다. 할머니와 저는 공포에 질려 함께 울었다. 다행히 앞에 서 있던 청년이 경찰을 막아서 우리를 보호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이 구급차를 불렀다. 사실 그 할머니는 독립에 반대하기 위해, 저는 독립에 찬성하기 위해 투표소에 왔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다양한 의사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우리에게 가한 경찰의 폭력과 탄압, 무례함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10월1일 진행된 분리독립 투표는 경찰이 고무탄 총과 곤봉으로 진압하면서 844명의 부상자(카탈루냐 자치정부 추산)가 발생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 측은 정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투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며 예비집계 결과 투표한 유권자 중 90%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 투표 이틀 후인 10월3일, 카탈루냐주는 투표에 대한 무력진압에 항의하고자 주 전체가 파업을 실시했다. 에스텔라다 기(旗)를 온몸에 두른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투표 당시 폭력이 있었던 학교 문에는 꽃을 꽂아뒀다.

 

물론 독립을 찬성하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카탈루냐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스페인 정부 및 기업의 정치적, 경제적 압력이 이어지자 독립 반대파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10월8일에는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스페인 국기와 카탈루냐 깃발 그리고 EU 깃발을 함께 흔들며 광장에 나왔다. 경찰 추산 35만 명, 주최 측 추산 95만 명에 달하는 집회 참석자들은 ‘더불어 살기(Convivencia)’ ‘그만하면 충분하다(Basta!)’ ‘우리는 모두 스페인이자 카탈루냐입니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지금까지 침묵하던 독립 반대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분리독립의 법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명분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경제 압력에 독립 반대파도 목소리 높여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는 후안 마뉴엘(41)은 “현재 중앙정부의 정치인들을 불신하는 것만큼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정치인들 또한 믿지 못한다”며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카탈루냐가 독립한 이후에 대한 명확한 계획과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 독립을 반대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한 투표와 이를 무력 진압한 스페인 중앙정부가 대응하면서 주민들 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대화와 타협 없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자치정부와 중앙정부도 이전으로 되돌리기 힘들 만큼 멀리 와 있다. 추후 카탈루냐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양측이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기 어려워 보인다. 분단의 현실과 마주한, 그리고 지역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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