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앞발에 손가락이 있었다면?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10.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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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류, 두뇌 크기 크고 뇌팽창 빠를수록 복잡한 문화 영위한다” 연구 발표 나와

 

You may not share our intellect.

(너희는 우리보다 머리가 나쁘지) 

 

Which might explain your disrespect for all the natural wonders that grow around you.

(너희 주변의 자연의 신비에 무례한 건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안녕, 그리고 그동안 우리에게 사료로 준 물고기는 고마웠어!)

 

코믹 공상과학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엔 돌고래들이 부르는 노래가 나온다. 지구에 닥칠 위험을 미리 감지한 돌고래들이 인간들에게 “그 동안 너희(인간)들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았다, 잘 있으라”며 부르는 작별의 노래다. 수족관 속에 갇힌 채 인간들이 주는 생선을 먹이로 받아먹는 돌고래들이 사실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사진=Pixabay

공상과학소설의 유쾌한 상상력이 아니라도, 돌고래와 같은 고래류 동물의 지능과 이들의 의사소통 능력 및 사회화 방식은 과학자들의 오래된 연구 주제였다. 고래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생물이다. 포유류이지만 수중생활을 하면서 물고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지느러미를 갖고 있지만, 폐호흡을 하고 자궁 속에서 태아가 자라난다. 

 

고래는 또한 상당히 지능적인 동물로 알려졌다. 다양한 소리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며 인간처럼 전혀 다른 생물과의 의사소통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상에선 고래의 놀라운 지능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엔 이 같은 고래목 동물들이 인간 사회와 매우 유사하게 견고한 사회 집단을 형성하고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소통하면서 심지어 지역 방언까지 구사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10월16일(현지시간)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엔 고래류의 문화와 행동을 두뇌의 크기와의 연관성 속에 분석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런던 정경대,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참여한 이 연구는 고래 두뇌의 크기와 고래 생태습성을 연결해 분석한 이 분야 최초의 보고다.

 

연구팀은 90종의 서로 다른 고래 종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두뇌 크기와 사회적 행동과 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구축했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고래류의 사회․문화적 특성은 뇌의 크기 및 두뇌의 팽창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사진=Pixabay

 

지느러미로 진화한 앞발…“손가락 있었으면 인간 따라잡았을 것”

 

연구를 진행한 영국 맨체스터대 진화생물학자인 수잔느 슐츠(Susanne Shultz) 박사는 사이언스타임즈에 “고래와 돌고래는 해양생물로는 예외적으로 크고 해부학적으로 정교한 뇌를 가지고 있다”며, 지상에 사는 포유류 가운데 커다란 두뇌를 가진 인간과 해양 생물 가운데 대용량의 뇌를 가진 고래를 비교했다. 슐츠 박사는  “거대한 뇌를 가진 인간은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지적 능력이 있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태계와 환경을 지배할 수 있었다”며 “고래와 돌고래도 두뇌작용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인간이 영위하는 것과 비슷한 해양 기반 문화를 창조해 냈다고 본다”고 말했다.

 

슐츠 박사는 또 “고래류 두뇌의 공동진화와 고래 집단의 다양한 행동들은 육지의 인간 및 다른 영장류에 비해 독특하면서도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고래가 양손의 손가락을 진화시켰더라면 인간이 만든 대도시나 기술을 모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래들은 그러지 못했다.” 고래의 양쪽 앞지느러미는 오래 전 앞발에서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Pixabay

 

인간과 상이한 뇌구조지만 비슷한 행동 패턴 보여

 

고래류는 아이를 태중에서 어느 정도 길러 낳아 기르는 것 외에도, 사람이나 다른 영장류와 비슷한 복잡한 사회행동을 많이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고래는 무리를 이끄는 리더가 있으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회 규범을 따르고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게 되면 ‘어색해’ 하기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과학자인 키런 폭스(Kieran Fox) 박사는 “일부 연구자들은 고래와 돌고래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능력과 사회적 기술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래는 인간과 뇌 구조가 상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사한 인지적 및 사회적 행동을 나타낸다”며 “이같은 연구 결과가 오히려 학계에 새로운 연구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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