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좌에서 ‘중국의 꿈’ 외치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0.23 08:45
  • 호수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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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공산당, 시진핑 ‘1인 체제’ 구축, 미국과의 경쟁 더욱 치열해질 전망

10월18일 오전 9시 중국 베이징(北京)의 인민대회당.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연단으로 들어섰다. 관중석은 2338명의 참가 대표와 수천 명의 국내외 기자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의 개막이 선포되자, 시 주석은 준비한 원고를 앞에 두고 업무보고를 시작했다. 업무보고는 시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로서 과거 5년간 거둔 업적을 홍보하고, 앞으로의 통치 및 정책 구상을 설명하는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다.

 

실제 그 중요성을 보여주듯, 시 주석은 68쪽의 원고로 무려 3시간24분 동안 연설했다. 13개 부분으로 구성된 업무보고에서 자주 언급된 용어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69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32번), 반부패 투쟁(20번) 등이었다. 특히 통치철학인 ‘치국이정(治國理政)’을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격상시켜 거론할 때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연설 내내 72차례의 박수가 나왔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분투해 나가자”고 말할 때는 연설을 마칠 때와 더불어 가장 큰 박수가 터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독주 체제'가 완성됐다.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가 10월18일 개막한 가운데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성과보고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주 체제 과시한 시진핑

 

표면상 중국엔 여러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를 통치하는 건 오직 공산당뿐이다.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오직 당의 지휘만 받는다. 따라서 당의 규범을 정한 당장(黨章·당헌)은 헌법보다 우선한다. 중국 최고지도자인 국가주석도 1990년대부터 공산당 총서기에게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직책으로 전락했다. 이런 현실에서 공산당 전당대회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로 손꼽힌다.

 

지난해 말까지 전체 공산당원은 8875만8000명이었다. 이들은 5년마다 각 지방, 기관, 군 등에서 대표를 뽑아 전당대회로 내보낸다. 전당대회에서는 200명 안팎의 중앙위원과 궐석을 대비한 후보위원을 뽑는다. 25명의 정치국원과 핵심지도부인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은 당대회 폐막 이튿날에 열리는 1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선출된다. 이들이 중국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당 중앙(黨中央)’이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이미 기본적인 진용은 갖춰진다. 1중전회에선 그 결과를 공개할 뿐이다.

 

이렇듯 전당대회는 ‘당의 국가’인 중국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만 이번 업무보고에선 과거와 다른 여러 장면이 눈에 띄었다. 먼저 보고 시간이 전례 없이 길었다. 이전에 총서기 보고가 1시간 반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아주 긴 연설이었다. 18차 전당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1시간40분을 소요했다. 이를 두고 베이징 외교가에선 “시 주석 독주체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실제 연설 내내 시 주석은 넘치는 자신감을 여과 없이 뿜어냈다. 간혹 원고를 보긴 했으나 모든 내용을 숙지한 듯 막힘없이 연설을 이어나갔다.

 

또 전임 최고지도자에 대한 예우에서 차이가 났다. 이날 시 주석은 장쩌민(江澤民) 및 후진타오 전 주석을 대동한 채 입장했다. 이들은 주석단석에서 시 주석의 좌우로 앉아 건재를 과시했다. 본래 언론에선 장 전 주석이 91세의 고령인 데다 측근들이 모두 숙청돼 불참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다만 업무보고 전후로 시 주석은 후 전 주석과는 한담을 자주 나눴지만, 장 전 주석과는 단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됐다. 18일 아침 필자의 중국산 SNS에는 중국인 친구와 지인이 쏟아내는 전당대회 축하 메시지로 홍수를 이뤘다. 흥미롭게도 당·정 관료는 조용했지만, 비(非)당원과 소수민족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이번 전당대회가 중국 정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여기는 중국인의 심중을 반영한다. 지난 10월11~14일 열린 18기 7중전회에선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장을 개정키로 결정했다. 수정될 당장에는 시진핑 주석이 주창해 왔던 ‘치국이정’이 지도사상으로 들어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10월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장쩌민(오른쪽 두 번째), 후진타오(왼쪽) 전 국가주석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치국이정의 주요 골자는 ‘5위 일체(五位一體)’와 ‘4개 전면(四個全面)’이다. 5위 일체는 정치·경제·사회·문화·생태문명 건설을 말한다. 4개 전면은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중산층) 사회 건설, 개혁 심화, 의법치국(依法治國·법치주의),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 추진이다. 시 주석은 업무보고에서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임무는 사회주의 현대화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며 “국정운영 방향이 5위 일체이고 전략은 4개 전면이다”고 설명했다. ‘치국이정’이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따라서 당장에 어떻게 실리는지가 관건이다. 현재 당장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만 개인 이름으로 들어가 있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三個代表論)’과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은 이름 없이 지도사상만 올려져 있다. 만약 ‘새 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시 주석의 이름으로 당장에 들어간다면 위상이 전혀 달라진다. 공산당 창건자이자 국부인 마오쩌둥이나 개혁개방의 아버지인 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달리 주목되는 점은 총서기의 권력 규정이다. 지금의 당장 22개조는 1982년 12차 전당대회에서 통과된 내용을 기초로 한다. 당시 덩샤오핑은 집단지도체제, 개인숭배 금지 등을 골자로 해서 마오쩌둥 시대의 권력집중을 없애려 했다. 이를 위해 당 총수를 주석에서 총서기로 바꾸고, 총서기의 직책과 역할을 모호하게 규정했다. 그러나 의법치국을 전면에 내세운 시 주석 입장에선 취약한 총서기의 법적 권력기반을 현실에 맞춰 바꿀 필요가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선 권력 강화를 뛰어넘어 당 주석제의 부활까지 점치고 있다.

 

 

4월7일(현지 시각) 미국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우회적 비판

 

비록 이번 업무보고에선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외교정책에서 뚜렷한 변화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시 주석은 업무보고에서 “어떤 국가도 홀로 인류의 모든 도전 과제에 대응할 수 없으며 어떤 국가도 고립으로 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은 절대로 헤게모니를 추구하거나 팽창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신형 국제관계 구축’을 주창해, 앞으로 적극적인 대외정책에 나설 것임을 암시했다.

 

과거 중국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지켜왔다. 도광양회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이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최대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또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세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세력 구축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시 주석의 집권 2기엔 미국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경색된 한·중 관계도 차츰 풀어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전당대회 이전 시 주석은 권력 강화와 강력한 지도자상 구축을 위해 사드 문제에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었다. 이는 군부와 당내 강경파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끊임없는 핵 도발로 ‘한반도 현상유지’라는 중국의 대외정책은 이미 치명타를 맞았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중국이 북한 정권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이런 실정에서 일대일로의 성공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협력은 절실하다. 따라서 집권 2기의 외교 라인이 갖춰지는 내년 봄에는 어떤 방식이든 한·중 관계를 복원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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