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의 미래?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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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개선’ 여부에 전문가들도 의견 엇갈려

 

‘가짜뉴스’란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얼핏 봐선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 힘든 각종 뉴스들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상에 넘쳐흐른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90%를 넘기며 누구라도 언제든 이런 ‘정보의 바다’에 자유롭게 접속하고 원하는 정보를 ‘골라’ 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가짜뉴스는 그 틈을 타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2016년 11월, 영국 옥스포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탈 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하는 용어다. 옥스포드사전위원회는 탈 진실이라는 단어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와 미국 대통령 선거 환경에서 많이 쓰였다”며 “지난해와 견줘 사용 빈도가 2000% 급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2016년 대선 이후 응답자의 64%가 ‘가짜뉴스가 대선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23%는 알게 모르게 가짜뉴스를 공유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 사진=Pixabay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월19일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선거법 위반행위 조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비방·흑색선전·가짜뉴스 등이 18대 대선과 비교해 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이전보다 10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가짜뉴스는 앞으로 더 많아질까. 아니면 가짜뉴스를 판별해내고 진짜뉴스를 걸러낼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이 발전할까. 인간과 ‘봇’들이 쉬지 않고 생성하는 가짜뉴스들의 확산 앞엔 어떤 미래가 있을까. 

 

가짜뉴스의 미래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엇갈린 전망을 보였다. 10월19일 퓨리서치센터와 미국 엘론대학은 가짜뉴스의 향후 전망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총 1116명의 최신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 학자, 전문직 종사자 등 전문가 집단이 이 조사에 응했다. 

 

연구진은 응답자 집단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향후 10년 간 정보생태계 내에 확산하는 가짜뉴스를 막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신뢰도 높은 방법이 등장할 것인가. 아니면 믿을 수 없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가짜뉴스의 확산으로 인해 정보생태계의 질과 진실성이 더욱 악화될 것인가.”

 

전문가들의 관측은 엇갈렸다. 응답자의 51%가 인간의 어두운 면모가 가짜뉴스를 빚어내며 정보생태계의 악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실었다. 반면 인간의 선한 본성이 이끌어낼 기술 발전과 사회적 솔루션에 희망을 거는 낙관파는 응답자의 49%였다. 

 

© 사진=Pixabay


 

■51% “가짜뉴스가 정보생태계 잠식할 것”

 

향후 10년 간 뉴스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이들은 ‘문제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라고 지적했다. 악한 동기가 개입된 악한 행동들이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퍼뜨리는데 추진력을 더해줄 것이란 관측이다. 인터넷 아키텍처 위원회(IAB) 위원장을 역임한 크리스티앙 휘티머는 “기술이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개조할 순 없기 때문에 미래에도 정보의 질은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시카고-켄트 법과대학 교수인 나이젤 캐머런은 “인간의 본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치적인 상황도 좋지 않다”며 가짜뉴스 비관론에 힘을 실었다. 

 

또 앞으로 발전할 새로운 기술들이 인간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정도의 난제들을 빠르게 만들어낼 것이기에 뉴스 생태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기술이 뒤틀린 진실과 거짓 정보, 무기화된 가짜뉴스들로부터 인간을 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번 연구조사에 응답한 익명의 기업인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건 너무나 쉽지만, 그것의 사실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품이 들고, 심지어 가짜뉴스 여부를 확인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속이기도 쉽다”고 말했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비방·흑색선전·가짜뉴스 등이 18대 대선과 비교해 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 사진=연합뉴스


 

■49% “인간은 늘 그랬듯 답을 찾아낼 것”

 

반면 개선될 것으로 낙관하는 이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 기술력과 더불어 상황의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발달된 기술이 가짜뉴스를 선별하고 필터링해 뉴스의 질과 신뢰도를 판단하는 공공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 있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석학인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포드 대학 교수는 가짜뉴스의 미래에 낙관적인 입장을 표하며 “주요한 디지털 정보 플랫폼이 우리를 더 권위적이고 믿을만한 정보 출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또한 인간 혹은 로봇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정보들을 걸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화를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답변도 많았다. 다양한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프랭크 카우프먼 사회활동가는 “뉴스의 질은 좋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늘 개선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인간은 기계와 더불어 더욱 정교하게 진화되고 있다며 상황을 낙관하는 이들도 보였다. 인류의 문명은 늘 문제를 직면했을 때 개선의 방향으로 해결해왔다는 믿음이 근저에 깔린 시각이다. 

 

비관론이든 낙관론이든 결국 문제 인식의 핵심엔 ‘인간’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인간의 상황 개선 의지와, 기술과 정보환경을 악용하려는 마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갈린 셈이다. 와이어드 매거진의 공동창립자인 케빈 켈리는 “​뉴스에 있어서 주요한 기사는 새로운 플랫폼에 의해 담긴 진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진실이란 것은 더 이상 권한이 있는 기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또래 집단 네트워크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며 “모든 사실엔 ‘반사실(counterfact)’이 있으며, 온라인상에선 사실과 반사실을 쉽게 구별할 수 없어 혼란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진실을 비추려는 인간의 마음과 잘못된 정보로 이를 취하려는 어두운 마음에 기생해 자라는 가짜뉴스.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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