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주거 문제 해결하려다 개발업자 배만 불릴라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5 17:01
  • 호수 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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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마포사옥 청년주택 촉진지구 지정 요건 미달…마포구 도로 기부채납해 꼼수 통과 논란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공약 중 하나가 역세권 청년주택 건설이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지하철역 근처에 20만 호의 임대주택을 건설해 청년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였다. 서울시도 지난해부터 ‘역세권 2030청년주택’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비싼 임대료와 민간 사업자에 대한 특혜 논란, 인근 주민의 반발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 계열인 이랜드건설(이랜드)은 현재 마포구 창천동 19-8번지 사옥 부지에 지하 5층, 지상 17층 2개 동(702가구)의 역세권 청년주택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랜드 측은 지난 5월 서울시에 주택건설사업계획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최근 이랜드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곳을 청년주택 공급 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이랜드가 최근 마포 사옥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특혜 논란에 휩싸이는 등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사업자 특혜 논란 등으로 잡음 이는 청년주택

 

문제는 이랜드 사옥의 전체 면적이 421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민간 임대주택 공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청년주택 공급 촉진지구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부지가 5000㎡를 넘어야 한다. 정상적으로 심의가 진행됐다면 이랜드 사옥은 청년주택 공급 촉진지구로 지정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 심의 과정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랜드가 마포구 소유 도로 부지 936㎡를 기부채납 조건으로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이랜드는 5154㎡로 사업신청서를 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서울시나 이랜드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임대주택과 역세권계획팀의 한 관계자는 “청년주택은 2030 청년세대의 주거 안정을 위한 사업이니만큼 관련법에 도로 포함이 가능하도록 명시돼 있다”며 “마포구청 등 관계 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랜드 측도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친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마포구가 기부채납한 부지에 사유지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지역 관계자는 “이랜드가 편입한 부지에는 도로로 사용되는 3필지 규모의 사유지도 포함돼 있다”며 “이랜드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사유지까지 강제로 사업부지에 편입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창천동 청년주택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랜드는 10층 규모의 조감도를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하지만 서울시에 청년주택 건설 사업계획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최고층이 10층에서 17층으로 변경됐다. 용적률 역시 250%에서 486%로 바뀌었다. 청년주택 사업부지에서 직선으로 20m 거리에 있는 창천1구역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이 236%인 점을 감안하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창천동 인근 주민들이 현재 청년주택 지구 지정 취소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청년주택이 완공되면 창천1구역 아파트 주민들은 심각한 일조권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형철 창천1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장은 “최근 송파구에 건설된 한 재건축 아파트도 일조권 문제가 제기되면서 일부 세대 공사가 중지된 법원 판례도 있다”며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3종 주거지의 용적률을 486%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마련한 역세권 청년주택 건립 및 운영기준에 따르면, 청년주택 경관 계획 시 주변 지역을 포함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사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 변경 시 사업대상지 이면부에 제3종 일반 주거지역 이하의 저층 주거지가 있는 경우 일조나 경관 등 저감방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서울시나 이랜드는 환경 및 교통영향평가나 주민 공청회 없이 사업을 강행했다. 공익사업의 특성을 감안해도 이랜드에 지나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도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시가 추진한 20㎡ 이하 1인 단독 역세권 청년주택의 평균 임대보증금은 4200만원, 월 임대료는 39만원”이라며 “대학생 평균 알바비의 55%, 29세 이하 비정규직 월급의 33%로 주거 안정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주택은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의 임대료를 받는 공공임대와 달리 최대 90%까지 임대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8년간의 의무 임대기간 이후 분양전환이 진행되면 저소득 청소년층은 거리로 내쫓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10월19일 서울시청 앞에서 마포 창천1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최형철 조합장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시 및 이랜드 “필요한 절차 모두 거쳤다”

 

반대로 말하면 청년주택 사업자는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서울시가 역세권 청년주택에 참여하면 3종 주거지를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같은 면적의 땅이라도 더 높게 지을 수 있어 사업성이 좋아지게 된다. 부동산 개발업자들 사이에서 청년주택이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랜드 역시 마포 사옥을 청년주택으로 개발하면서 두 배 가까운 용적률 상승 혜택을 입었다.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역세권 청년주택 제도가 자칫 경제력이 있는 일부 청년층과 개발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장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측은 “청년주택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역세권 민간토지에 용적률 완화나 세제 감면, 절차 간소화 등의 인센티브 혜택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부 특혜는 있었지만 과도한 수준은 아니다. 나중에 사업자로부터 전체 부지의 20%를 환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랜드 측은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설계도상 정문을 조정하고, 층고를 낮추는 등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했음에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서울시의 승인을 받고 모든 절차를 처리한 만큼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에 문의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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