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기 위한 기억, 生을 위한 공간, 경기 안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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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2014년 4월16일, 아직도 그날 아침 뉴스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300여명이 사망한 대참사,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났던 날. 발표되는 희생자 수가 늘어갈 때마다 슬픔과 분노로 심장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진도 인근 해상이었다. 수색작업이 한창이던 당시, 진도 팽목항은 사망자 수습과 여러 애도행사가 이루어지는 거점이 됐다. 지난 3월 인양돼 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현재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과 가장 관련이 깊은 도시는 아무래도 경기도 안산시 아닐까.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 대거 희생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비극성은 안산시란 도시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 안산시는 세월호 사건과 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리는 도시가 됐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소위 ‘416공간’이 현재까지 15개에 이른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들, 유가족과 시민들의 모임들, 그리고 함께 슬픔을 나누고 위로를 받기 위한 커뮤니티들이다. 세월호 사건의 상징이 된 ‘노란리본’을 매단 상점들을 ‘노란가게’라 부르는데, 이런 곳까지 합치면 그 수가 상당하다.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 사진=김지나 제공

 

 

 

도시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416공간’

 

그중 안산교육지원청의 한쪽 건물에 마련된 ‘기억교실’은 단원고 학생들이 생전에 지냈던 교실을 재현해놓은 대표적인 416공간이다.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교실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극심한 슬픔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곳이었다.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마지막 시간들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비통한 마음이 가실 줄을 몰랐다.

 

물론 ‘기억’에 충실한 공간도 중요하지만,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치유와 공감의 장소도 필요하다. 미국 하버드대의 와이드너도서관은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책을 좋아하던 아들을 기리기 위해 기부금을 내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한층 쾌적해진 환경에서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 됐다.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돼있는 '4.16기억교실' 내부 © 사진=김지나 제공

 

와이드너도서관은 죽음보다 삶을 기억하는 곳이다. 그 어머니는 단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신 아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아들과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이 아들이 미처 누리지 못한 현재를 대신해서 이어나가는 것을 보며,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깊은 슬픔을 새로운 경험과 기억으로 정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는 지난 9월말부터 10월 초에 걸쳐,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가 열렸다. 이번 박람회장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든 미니정원들이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진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 유가족들은 정원을 만들기 위해 추억을 떠올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할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테다. 그리고 미니정원으로 그것을 표현해본 것 아니었을까. 이 작은 공간은 이로써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통로가 됐다.

 

2017년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든 미니정원이 전시되었다. © 사진=김지나 제공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 두고 갈등도

 

최근 세월호 희생자들의 납골당을 지하에 만들고 그 상부에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공원의 예정부지는 화랑유원지 일원이다. 안산의 대표적인 공원인만큼 찬반 의견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추모공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님비(NIMBY)라 비난하고, 반대하는 이들은 사자(死者)의 공간이 일상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전통적인 금기의 감수성을 호소한다. 두 입장 모두 이해는 되지만, 어찌됐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을 두고 한 도시공동체 내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기억은 눈에 보이는 어떤 공간에 담겨지지 않으면 쉽게 사라지거나 왜곡되며, 새로운 추억이 덧붙여 쌓일 수 없다.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공원은 세월호 사건의 악몽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물리적인 기반으로서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은 반드시 소통의 공간이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은 단지 유가족들만의 아픔이 아니라 단원구민, 나아가 안산시민, 혹은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극복해야할 트라우마 같은 사건이었다. 죽음의 슬픔을 드러내기보다는,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안산시의 모든 이들이 위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생명과 안전의 도시'를 꿈꾸는 안산시 © 사진=김지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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