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김경수.전해철…'조직 총괄' 노영민이 실세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0 17:11
  • 호수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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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핵심 실세 10인 집중 탐구 (2)

문재인 정부가 출발한 지 어느덧 6개월가량 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제대로 된 인수위원회도 거치지 못하면서 집권 초기 내각 인선부터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이젠 1기 내각 인선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정책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과감한 개혁’과 ‘적폐청산’이라는 커다란 두 축을 세우고, 지방 분권이나 개헌 같은 대형 이슈도 함께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이 ‘문재인의 사람들’이다. 조각 작업이 모두 끝나고 문재인호(號)가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하면서, 과연 누가 국정의 어젠다를 쥘 수 있는 ‘실세’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주목해 봐야 한다. 시사저널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10인을 꼽았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측근 외에도 문재인 정부 1기를 이끌어 갈 인물들은 다양한 면면을 갖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시절 인사와 시민단체, 학계가 골고루 섞였고,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의도’ 김경수·전해철…‘조직 총괄’ 노영민

 

청와대 안에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의 ‘5인방’이 있다면 청와대 바깥엔 김경수·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다. 김경수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좌했다. 이때부터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란 별명을 얻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엔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김해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대 총선에서 62.4%라는 당내 전국 최다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선 직후 “노 전 대통령에게 빚 하나 갚은 느낌”이라는 당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번 대선 기간 내내 문 대통령 곁에서 보좌했다. 대변인을 맡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일을 도맡아 했다. 2012년 대선 때에도 문재인 캠프의 공보특보와 수행팀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비서실 기획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담당 비서관을 역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해 “내 영혼까지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세심하게 읽어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고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할 줄 안다는 의미다. 가장 대표적인 친노·친문 계열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그런 구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친다.

 

전해철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3인방인 ‘3철(전해철·양정철·이호철)’의 한 명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민정수석,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참여정부에서도 중역을 담당한 만큼 현 정부 내에서의 입김도 상당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문 대통령 당선 후에 권부의 심장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는 중이다. 한때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런 직을 맡지 않았다.

 

 

 

전 의원은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캠프 조직특보단장으로 활약했다. 당 최고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추미애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캠프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담당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으로 재야 법조계에서 활약한 86그룹 법조인이기도 하다. 전 의원은 1993년 천정배 의원이 세운 법무법인 ‘해마루’에 몸담았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 선대위 법률지원단 감사로 참여했다. 민정비서관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이런 인연 때문에 19대 국회에 입성한 뒤 문 대통령이 공격당할 때마다 방패 역할을 맡았다. 문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에 “문재인의 비선실세 아니냐”는 공격도 받았다. 전 의원은 그럴 때마다 “(문 대통령은) 원칙과 원리가 대단히 강하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캠프에선 공식적인 직을 맡지 않고 2선으로 물러났다. 현재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출마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영민 주중대사는 ‘조직 관리의 달인’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장을 맡아 전국 조직을 총괄했다. 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맡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2012년 대선 캠프에도 합류했다. 올해 대선 캠프 조직본부장을 맡아 문 대통령 지지 기반을 넓히고 세력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한 뒤 내리 3선에 성공한 노 대사는 19대 국회에서 원내대표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 대사는 지난해 시집(詩集) 강매 논란에 휩싸여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은 뒤 4·13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본래 문재인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주중대사로 낙점됐다. 한 여권 인사는 “노 대사는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풀어야 하는 임무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문제를 잘 풀면 권토중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가이자 복심’ 양정철·이호철

 

문재인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을 꼽으라면 상당수가 ‘양비’를 꼽는다.‘양비’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일컫는 말이다. 기자 출신인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인 《문재인의 운명》 집필을 돕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선 문재인 캠프 비서실 부실장 역할을 수행했다.

 


 


 

양 전 비서관은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임기 내내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재단 설립준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재단 설립 작업을 이끌면서 문 대통령과 급격히 가까워졌다. 양 전 비서관은 좀처럼 아랫사람을 하대하지 않는 문 대통령이 편하게 하대하는 참모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날 때 동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줄곧 따라다니는 ‘문재인의 실세’란 수식어는 부담스러워했다. 그 때문인지 문 대통령 당선 후에는 청와대의 요직을 맡을 것이란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2선으로 후퇴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3철’ 중 한 명이다. 일각에선 “3철 중 1번은 이호철”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비서관과 제도개선비서관, 국정상황실장, 민정수석 등 요직을 두루거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임시완이 맡았던 운동권 학생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1981년 부림사건 피해자일 때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을 때 정치 입문을 권했지만 “내 일이 아니다”며 거절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쥐고 나서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엔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특히 총선에서 민주당의 영남지역 판세를 짜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19대 총선에서부터 영남지역 ‘낙동강 벨트’를 디자인하는 데 이 전 수석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당선 뒤에 청와대 입성을 예상했지만 그 역시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선거 캠프엔 참여했지만 공식 직함조차 받지 않았다.

 

이 전 수석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제가 존경하는 노변과 문변, 이 두 분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살아오면서 이만한 명예가 어디 있겠습니까”란 글을 SNS에 남기고 해외로 나갔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현재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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