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조스를 두려워하는 자? 실리콘밸리 모두다“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0 18: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부호 순위의 새로운 시대 연 제프 베조스

오랫동안 세계 1위 부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였고 이는 마치 세계의 상식처럼 통용됐다. 그런데 그가 세계 제일의 거부 자리를 내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빌 게이츠의 자산은 약 885억 달러(약 100조원)로 평가받았는데, 900억 달러(101조원)의 거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CEO다. 10월27일 아마존의 주가는 개장하자마자 10%나 상승해 1067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발표한 3~4분기 실적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기 때문인데 그가 보유한 자산도 덩달아 증가하며 순위가 뒤바뀌었다. 

 

지난 4월 아마존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조스는 전체 아마존 주식의 17%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2013년 인수한 워싱턴포스트와 민간우주기업인 블루오리진 같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CEO는 900억 달러(101조원)의 보유 자산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됐다. © 연합뉴스/AP


블랙홀 같은 아마존을 만든 베조스

 

국내에서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뿐, 아마존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테크기업이자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사후 실리콘밸리는 가장 주목하는 인물로 베조스를 꼽았다. 잡스는 사망했고 빌 게이츠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막상 다른 영역을 침범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베조스는 달랐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탈리스트인 샘 저스텐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제프 베조스를 두려워하는 자는 누구인가?(Who's afraid of Jeff Bezos?)’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답을 내렸다. “우리 모두다”라고. 확장성이 어마어마한 베조스만이 실리콘밸리의 모든 기업에 무서운 존재라는 이야기였다.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소매점이자 하드웨어 업체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팔 수 있는 동시에 e북 리더기와 스마트 스피커 시장을 리드하고 있고 저가 태블릿 업체로도 만만치 않다. 클라우드 사업인 '아마존 웹서비스(AWS)'는 올해 3분기(7~9월) 매출만 45억8000만 달러(약 5조원)를 기록하며 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소비자를 위해 온갖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운영에 필요한 서버나 하드웨어 장비, 소프트웨어에도 힘을 쏟는다. 심지어 유통을 고민하며 드론 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소비자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용으로 확장하며 B2B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B2C와 B2B 두 영역에서 모두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기업은 드물지만 아마존은 가능하다. 이런 블랙홀 같은 아마존을 운영하는 베조스를 실리콘밸리가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베조스의 인터뷰를 보면 만면에 가득 짓는 미소와 호쾌한 말투 탓에 밝고 긍정적인 보스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아마존을 다룬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은 베조스와 일할 때 겪는 어려움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브래드 스톤이 쓴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를 보면 콜센터의 대응에 불만을 가진 베조스가 임원 회의에서 담당 디렉터를 질책하는 살벌한 모습이 그려진다. 주말이나 휴일에 상관없이 회의를 소집해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간부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묘사돼 있다. 물론 그들은 베조스를 견디지 못하고 아마존을 떠났다. 

 

직원과의 질의응답을 가진 이벤트에서 한 여성 직원이 베조스에게 근무 환경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회사는 일과 생활의 균형 부분에서 언제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베조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존의 DNA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모든 걸 업무에 걸 수 없다면 이 직장은 당신에게 적합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직원 처우를 상당히 신경 쓰는 실리콘밸리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셈인데 임원이 출장을 갈 때 이코노미 클래스 항공권을 제공하고 사원들을 위한 셔틀버스 제안을 거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가 셔틀버스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버스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근무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막상 ‘혁신’을 말하지만 기업 문화는 퇴행적이라고 비판받는 아마존이다. 하지만 CEO인 베조스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다. 베조스는 여러 채널을 통해 그의 성공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고객 중심주의를 장기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간다. 대부분의 회사는 고객보다 경쟁사를 바라보고 있다. 또 2~3년 내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포기하고 그 다음 선택을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 차선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존의 진정한 힘의 비밀이다. 이런 요소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매우 적다.”

 

 

아마존의 핵심경쟁력은 고객이 주문 후 트럭에 실을 때까지 30분이면 충분한 물류창고에 있다. © 연합뉴스/AP

 

‘Amazon.Bomb(아마존 폭탄)’라는 시장의 평가 극복해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버블이 붕괴할 때 미국에서도 “아마존은 끝났다. 인터넷 기업은 이미 사망했다”는 주장이 난무했다. 인터넷 버블이 붕괴하자 주가는 급락했고 스톡옵션의 권리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아마존 임직원들의 사기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브래드 스톤의 책에 따르면 베조스도 당시 비관적인 의견을 많이 들어야 했다. 시장은 아마존을 ‘Amazon.Bomb(아마존 폭탄)’이라고 불렀다. 

 

당시 시장조사업체인 포렌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도 “아마존은 끝났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심지어 베조스가 하버드 MBA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 학생들은 토론 뒤 “아마존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학생들은 “베조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당장이라도 반스앤노블(미국 대형 체인 서점)에 아마존을 양도하는 편이 좋다”고 권유했다. 이런 주변의 지적에도 베조스가 아마존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앞서 언급한 ‘장기적인 관점’이라는 원칙 때문이라고 브래드 스톤은 결론 내린다.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해 ‘만물상’으로 확대한 아마존은 이제 다른 성격의 기업이 됐다. 10월26일 3분기 결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베조스는 인공지능 알렉사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는 지난 달 새롭게 5가지의 알렉사 지원 장치를 출시했고 BMW와의 통합을 발표했다. 알렉사를 탑재한 장치는 이제 2만5000개를 넘었다. 알렉사의 두뇌는 ‘아마존 웹서비스(AWS)’에 있기 때문에 새로 습득한 능력은 새로운 장치를 구입한 사람뿐 아니라 에코(알렉사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의 모든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 인공지능을 통해 미래의 모습까지 선점하려는 게 지금 아마존과 베조스의 장기적인 관점이고 시도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