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만에 2000만원 결제” 리니지M 사행성 논란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11.09 10:29
  • 호수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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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M의 화려한 조명 이면엔 철저한 과금 유도 정책들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이 게임 시장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리니지M은 올해 3분기 구글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iOS)에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 시장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국내 출시만으로 전 세계 모든 게임의 결제 규모를 뛰어넘었다는 의미다. 하루 최고 매출 130억원의 신기록도 달성했다. 증권업계에선 올해 9월까지 리니지M의 누적 매출 예상액을 6000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매일 60억원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출시 두 달 전 증권업계에서 일평균 매출 규모를 5억원 수준으로 책정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리니지M의 흥행은 게임업계 절대강자인 엔씨소프트의 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엔씨소프트는 11월9일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의 전망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3분기 매출은 704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업이익이 32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7% 급등할 전망이다. 올해 2분기와 비교하면 770%에 가까운 수치다. 출시 이전에 비해 엔씨소프트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최근 증권사마다 실적을 바탕으로 목표 주가를 추가 인상하는 분위기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는 직접 TV 광고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까지 쌓았다.

 

리니지M의 흥행 이면에는 늘 사행성 논란이 따라붙는다. 엔씨소프트의 흥행이 커질수록 논란도 더욱 거세진다. 엔씨소프트의 실적과 PC방 1세대로 불리는 ‘린저씨(리니지와 아저씨의 합성어)’들의 통장 잔고는 반비례한다는 의미다. PC방에서 리니지나 스타크래프트 등을 즐기던 10~20대 청년들은 어느덧 30~40대 아저씨로 성장했다. 한 달에 2만9700원의 정액권을 끊기 위해 용돈을 모았던 코흘리개들이 어느덧 한국 경제를 받치는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씀씀이가 커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예전의 리니지와 단순 비교하면 큰 오산이다. 과거보다 단기간에 상대적으로 적은 유저가 훨씬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리니지M의 흥행에 사행성 논란이 따라붙는 이유다.

 

© 시사저널 임준선

 

“완전 도박 같았다…후회막심”

 

경기도 용인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남·38)는 최근 이혼 직전까지 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몰래 리니지M을 시작해 수천만원을 썼다가 아내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가볍게 시작했다. 리니지M 역시 적당한 과금(課金),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과거의 추억에 빠져 캐릭터 육성에 밤을 지새웠고, 어느덧 레벨 상위 100위 안에 드는 ‘랭커’가 됐다. 게임 내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는 것이다.

 

지옥은 이때부터였다. 소위 랭커들끼리 변신, 장비 경쟁이 자존심 싸움처럼 번졌다. 박씨는 출시 이후 한 달에 300만원을 썼는데, 다른 유저들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랭커들이 그만큼 게임 아이템을 구매한다는 의미였다. 박씨의 시선은 최고 능력치를 가진 특정 변신카드에 쏠렸다. 공격속도가 일반 변신에 비해 148% 빠르고, 공격력 또한 엄청나게 상승한다. 박씨는 광복절이 낀 8월 징검다리 연휴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변신 뽑기를 시작했다. 3만3000원을 결제할 때마다 11개의 변신카드가 주어졌고, 이들을 다시 합성해 더 좋은 변신카드를 뽑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200만~300만원 정도를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나름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 꽤 잘되는 편이라 수입이 쏠쏠했기 때문이다. 식당 영업을 끝내고 지인들과 술을 마시거나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가는 비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꼭 해당 변신카드가 아니어도 남들보다 좋은 변신카드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박씨는 결제와 카드 뽑기를 반복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좀 더 좋은 변신카드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500만원 정도를 썼을 때 한 단계 아래급인 ‘영웅 변신카드’ 2장을 얻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4장을 모아야 합성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카드 한계가 넘어섰다. 카드사에 결제 금액을 입금한 뒤 한도를 충전해 다시 결제했다. 이틀 동안 결제한 금액만 2000만원이었다. 박씨는 “솔직히 리니지라는 게임 특성상 돈을 써야만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면서도 “옛날과 시스템이 너무 다르다. 완전 도박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는 박씨만의 일탈적인 행동이 아니다. 유명한 인터넷 방송 BJ가 리니지M에서 4000만원어치 변신카드를 뽑는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10월25일 인터넷 방송에선 1억원을 썼다는 임아무개씨가 자신의 캐릭터 현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확인할 순 없지만 이용자들 사이에선 1억원을 결제했는데도 카드 뽑기에 실패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3000만원을 결제한 또 다른 이용자는 도박 중독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린저씨’들은 왜 지갑을 열어야만 했나

 

리니지M은 유명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리니지가 어떤 게임인가. 대표적인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의 하나로, 1998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한국 게임 산업의 성공을 이끌었다. 2000년 초 이용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동시접속자 18만 명의 기록을 썼다. 오늘날의 엔씨소프트를 만든 보물이었다. 이용자 사이에 현금 거래로 수조원대 지하경제가 생기면서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 출시 전부터 리니지에 대한 향수를 적극적으로 자극했다. 인터페이스, 음향 등을 모두 리니지 원작에서 가져와 모바일에서 고스란히 구현했다. 출시 초기에는 등급 심의 문제로 아이템 거래가 불가능해 이용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주했다. 엔씨소프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18세 이상 이용가 버전과 12세 이용가 버전으로 나눈 뒤 거래소를 도입시켰다. 개인 간 직접 거래는 아니지만 중개 방식을 통해 이용자 간 아이템 거래를 허용한 것이다. 거래는 게임 내 현금 결제를 통해 구입해야만 하는 ‘다이아’를 화폐로 삼았다. 한 번 거래 때마다 수수료 2%를 회사에서 회수해 가는 방식을 썼다.

 

이용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시스템은 따로 있었다. 리니지M 이용자 사이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인하사드의 축복(아인)’이다. 상당수 린저씨들은 과거 월정액 2만9700원만 내면 적당히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진입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인이 사라지면 캐릭터 육성 속도와 아이템 획득 가능성이 줄어든다. 아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획득 경험치 차이만 최대 7배에 달한다. 당연히 캐릭터 레벨을 중시하는 게임 특성 때문에 대다수 이용자들은 아인을 구매해야만 했다. 지난달 게임을 그만뒀다는 한 이용자는 “리니지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월정액만 지불하면 어느 정도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리니지M은 달랐다”며 “랭킹을 올리기 위해 24시간 자동 사냥을 돌리려면 2~3일에 한 번씩 아인을 충전해야 했다. 한 달에 아인 값으로만 60만원 넘게 썼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랜덤박스’로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 획득 시스템이다. 초기 리니지와 달리 리니지M은 아이템을 게임사로부터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는 일정 확률로만 획득이 가능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3만3000원짜리 상자에서 강력한 무기인 ‘커츠의 검’을 뽑을 확률은 0.0001%다. 로또 2등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하다. 이외에 다른 아이템도 제공하지만, 몇 시간 게임을 하면 얻을 수 있는 무의미한 아이템이다. 사실상 3만3000원짜리 뽑기인 셈이다. 최근 할로윈 이벤트에선 확률형 아이템과 함께 호박석을 제공해 아이템 제작을 가능하도록 했다. 현금으로 환산해 보면 약 130만원을 투자해야만 ‘오리하루콘 단검’이나 ‘파괴의 장궁’ 등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나마도 거래가 불가능한 아이템이라 가치가 현저히 떨어졌다.

 

리니지M 광고에 출연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계속되는 사행성 논란, 규제와 육성 사이

 

정부의 게임 정책은 한동안 규제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였다. 2000년대 초·중반 게임 강국의 모습은 사라지고 성장이 둔화됐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월 50만원으로 제한된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올해 7월까지만 해도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개선 과제로 발표하면서 폐지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리니지M을 필두로 한 모바일 게임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 이뤄지면서 사행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근본적으로 사행성을 지니고 있다”며 “업계 자율규제에만 맡겨두는 것은 문체부의 업무태만으로, 합리적으로 관리·감독할 방안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 역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경우 적절한 규제와 계도를 통해 선순환 구조를 정부 차원에서 이끌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리어 모바일 게임 역시 결제 한도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성인 월 50만원, 청소년 7만원으로 결제 한도가 설정돼 있지만, 모바일 게임은 결제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게임 회사들이 확률형 게임에만 빠져 제대로 된 게임은 만들지 않고 있다”면서 “모바일 게임 리미트(결제 한도)는 반드시 정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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