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대세’ 오세근 “아직 올라갈 곳 많이 남았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17 10:02
  • 호수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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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안양 KGC 오세근 “개인 성적보다 팀 승리가 몇 배는 더 기뻐”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1라운드 MVP는 유효 투표수 101표 중 81표를 획득한 안양 KGC 오세근(30)에게 돌아갔다. 오세근은 1라운드에서 역대 통산 국내 선수 2호 ‘20(득점)-20(리바운드)’을 달성했고 개인 2호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오세근은 지난 시즌에도 정규리그-올스타전에 이어 플레이오프 MVP까지 수상했고, 김주성(2007~2008시즌)에 이어 KBL 역대 MVP 트리플 크라운을 수상한 두 번째 선수가 됐다. 시즌 종료 후 그는 첫 FA(자유계약선수) 권리를 행사했는데, 원소속팀인 안양 KGC와 7억5000만원(연봉 6억원+인센티브 1억5000만원), 계약기간 5년에 사인하고 KGC에서 농구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올 시즌 농구 코트에서 펼치는 오세근의 플레이는 완성형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양 KGC를 상대하는 팀 감독마다 “KGC에는 3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다. 2명의 외국인 선수와 또 한 명의 오세근이다”라며 난색을 표한다. 오세근의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얘기에 이견을 다는 이가 없을 정도다.

 

11월9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전성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오세근을 만났다. 인터뷰 직전 오세근은 KBL이 발표한 1라운드 MVP 선정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팀 상황이 그에게 웃음만 선물하진 않았다. 오세근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안양 KGC 오세근 선수 © 시사저널 임준선

 

어제(8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양 팀 최다 득점인 30점을 달성했다. 12리바운드에다 블록슛도 양 팀 최다인 3개를 기록했는데 팀 패배로 개인 기록이 묻힌 느낌이다.

 

“어휴, 정말 힘든 경기였다. 4쿼터에 외국인 선수 사이먼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혼자 상대 수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4쿼터 40분을 뛰면 한두 차례씩 휴식이 주어지는데 어제는 사이먼까지 제외되는 바람에 (김승기) 감독님도 내게 휴식을 주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경기 막판에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집중력 부족으로 야투율(슛 성공률)도 확 떨어졌다. 30득점을 올렸다는 건 그만큼 내게 쏠리는 부담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인 성적보다는 팀 승리가 몇 배는 더 기쁘다.”

 

 

농구 경기는 40분 내내 치열한 몸싸움이 펼쳐진다. 최근 팀의 주축 선수인 양희종은 상대 선수와 부딪히면서 코뼈 골절 수술을 받았고, 사이먼도 무릎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상 부상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특히 내 포지션(파워포워드)의 특성상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리바운드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늘 부상을 달고 산다. 경기를 마치면 두세 군데는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골절만 아니면 치료받고 바로 회복해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회복력이 이전 같지만은 않다.”

 

 

올 시즌에는 영원한 동반자일 줄 알았던 이정현이 FA를 통해 전주 KCC로 이적했기 때문에 그 공백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직접 체감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인가(이정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프로농구 사상 최고 액수인 연간 최대 9억2000만원에 전주 KCC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통합 챔피언에 올랐던 안양 KGC는 이정현의 공백으로 올 시즌 전력이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정현이랑은 87년생 동기로 안양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며 익숙해진 플레이들이 있는데 정현이의 공백으로 처음엔 다소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계속 같은 팀에서 뛰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샐러리캡(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KBL은 4년간 23억원으로 동결돼 있다)으로 둘 다 KGC에 남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농구계에선 지난 시즌부터 두 선수가 함께할 수 없을 거란 소문이 있었다.

 

“우리 둘이 감정싸움을 벌인 적은 없었다. 나로선 팀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며 도움이 되고 싶은데, 감독님이 외곽 위주의 플레이를 선호하시면서 이정현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다 보니 내가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찾아 들어갔다. 공격하면서 리바운드 하나라도 더 잡아내려고 뛰었다. 득점 올리고 속공 플레이 하면서 더 빨리 뛰어주고, 최대한 스크린 많이 걸어주는 등 내 역할을 만들었다. 팀 운영에 나를 맞추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현이와 내가 감정적으로 불편할 일은 전혀 없었다. 단, 주위에서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13일부터는 KBL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대신 대표팀에 합류해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지역 예선대회를 갖게 되는데 오세근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인가.

 

“오랜 시간 동안 대표팀에서 활약했는데 여전히 태극마크를 달면 가슴이 뛴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명감, 책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10년 전인 중앙대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최근 3년간 부상 등의 이유로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크다. 어느새 주장으로 선임돼 선수들을 이끄는 입장이 됐지만 허재 감독님의 배려와 이해 덕분에 선수들 분위기가 가장 좋았다.”

 

 

지난 8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끝난 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에서 3위에 오르며 한국 농구의 희망을 봤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열혈남아’로 대변되는 허재 감독이 변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내가 막내였던 시절 대표팀 생활하면서 허재 감독님한테 많이 혼났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그렇게 혼난 경험이 없던 나로선 당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감독님은 훨씬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 보이셨다. 이전에는 감히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다면 지금은 어떤 얘기도 다 받아주시는 편이다. 덕분에 대표팀 분위기가 좋아졌고, 그 분위기가 경기 내용으로 나타난 것 같다.”

 

 

대학생 신분으로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대표팀에서 가장 눈에 띈 선배가 누구였나.

 

“아무래도 같은 포지션에 있는 (김)주성이 형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성이 형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그 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내게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형들을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형들의 장점을 어떻게 해서든 뽑아내려고 졸졸 쫓아다니면서 질문을 많이 했다.”

 

 

선배들로부터 각각 배운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해 달라.

 

“주성이 형한테선 전체적인 움직임을 배웠다. 파워포워드의 기본적인 움직임이라든지, 골밑에서 혼자 움직이는 것과 볼이 없을 때 어떤 형태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했었다. (양)동근이 형으로부턴 사생활 관리를, (주)희정이 형한테선 웨이트 트레이닝 하는 법, 개인 훈련하는 노하우 등을 배웠다. 희정이 형은 몸 상태가 안 좋으면 훈련 시간보다 일찍 나가서 개인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대단한 선배들이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며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세근은 안양 KGC의 후배 김민욱이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농구를 배우려는 모습이 귀찮기보단 오히려 대견해 보인다고. 대신 오세근은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노하우를 알려주진 않는다. 배움에 대한 간절함을 가진 이가 먼저 찾아와서 물어봐야 그 배움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월24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전주 KCC와 안양 KGC의 경기. KGC 오세근의 공격에 골밑 싸움이 과열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시즌은 오세근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한 시즌에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3개나 차지하지 않았나(올스타전,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챔프전 우승 확정 후 눈물 흘렸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내 농구 인생은 롤러코스터였다. 프로 신인 때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데뷔를 했고, 데뷔 해에 신인왕, MVP를 수상하는 등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들을 영위했었다. 그러다 발목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할 뻔한 위기가 있었고, 개인적인 문제로 팬들에게 걱정을 끼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든 덕분에 다시 팀 우승을 일궜고, 덕분에 상까지 받게 되는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더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것 같다.”

 

 

‘안양 KGC는 오세근이 부상만 안 당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프로 데뷔 이후 여러 차례 부상으로 코트에 서지 못했다. 그동안 수술한 것만 몇 번인가.

 

“네 번이다. 발목 한 번, 무릎은 두 번, 손가락 골절로 한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중 가장 심했던 부상이 2012~2013시즌 당했던 발목 부상으로 알고 있다.

 

“당시 한국에 있는 병원에선 수술을 못하겠다고 해서 일본 가와사키 전문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가 내 발목 상태를 보고선 좀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 난 수술 받으러 일본까지 간 건데 의사는 부상 부위가 너무 심해 수술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하니 나로선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락을 기다렸는데 그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한 달이 지난 후 가와사키의 병원으로부터 수술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수술 받고 재활하느라 3개월가량 일본에 더 머물렀었다.”

 

 

수술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말하길 훈련보다 재활 훈련이 몇 배는 더 고통스럽다고 하더라. 실제 어땠나.

 

“한국에서 재활을 했더라면 조금 덜 답답했을 텐데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혼자 3개월을 지내니까 미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재활을 마치고 내가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주위에선 ‘오세근의 농구 인생은 이미 끝났다’ ‘복귀해도 이전처럼 뛸 수 없을 것이다’란 수군거림이 대단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더 오기와 독기가 생겼던 것 같다. 이 모든 걸 이겨내서 내가 건재하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일본에서의 3개월 동안 단 한 사람도 날 찾아오지 않았는데, 당시 안양 KGC를 이끌었던 이상범 감독님(원주 DB프로미)이 예고 없이 가와사키를 방문해선 맛있는 밥 한 끼 사주고 돌아가셨다. 그때 큰 감동을 받았다. 감독님의 따뜻한 관심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고, 평생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겠다고 다짐했던 계기가 됐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울컥해진다.”

 

 

오세근은 당시의 아픔이, 절망이,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인생의 소중한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후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다 털어버릴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경기 결과에 춤을 추는 인터넷 댓글을 포용하고 상처받지 않게 된 것도 그 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노 알코올 맥주 10캔을 앞에 두고 하나씩 마시며 눈물 흘렸던 일본 생활이 오세근에게 각인되면서 그를 더욱 단단한 선수로 만들어준 것 같다.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될 것이다. 은퇴 후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하다.

 

“원래 난 지도자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은퇴 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농구 지도자가 아니냐고 얘기하더라. 지금까지 지켜본 지도자들의 삶은 선수들 못지않게 힘든 일로 인식됐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지도자의 세계에 발 들여 놓을 자신이 없었는데 아내의 설득으로 마음을 정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 과정을 밟고 싶다고. 내가 겪고 배운 모든 것들을 선수를 가르치는 데 쏟아 붓고 싶다.”

 

 

오세근의 농구 인생은 현재 몇 쿼터에 이르렀다고 보나.

 

“3쿼터 시작할 무렵이라고 생각한다. 1·2쿼터는 너무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왔기 때문에 3·4쿼터는 더 집중해서 이기는 경기를 계속하고 싶다. 아직 올라갈 곳이 더 많이 남았다. 그 목표를 다 이루면 마음 편히 은퇴를 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등번호가 41번이다. 그래서 인터뷰 때마다 마흔한 살에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10년 더 뛰어야 한다(웃음). 어렵게 3쿼터까지 왔으니 남은 ‘인생 경기’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오세근은 13개월 된 쌍둥이 아빠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셋째가 태어난다. 연년생의 세 어린아이들을 키울 생각에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더 열심히 농구를 해야 하는 필요조건이 성립됐다며 미소를 보인다. 항상 어려 보이기만 했던 오세근이 벌써 세 아이의 아빠라니! 세월은 금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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