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독재가 낳은 최악의 부산물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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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사임한 무가베의 통치, 그리고 망가진 짐바브웨

 

물가가 상승하고 통화 가치가 낮아지는 상황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정도를 넘어 물가가 지나치게 올라가거나, 통화 가치가 떨어져 지폐가 휴지조각과 다름없을 정도에 도달하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위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의 소국 짐바브웨.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지만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독재자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이 37년의 장기 집권을 끝냈다. 11월21일 대통령 탄핵절차를 개시한 짐바브웨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이 무가베의 사임 서한을 직접 읽으며 그의 퇴진을 마무리했다. 

 

발단은 군의 이탈이었다. 영국 'SKY뉴스'는 11월15일 짐바브웨 군이 수도 하라레에 집결해 무가베와 그의 아내 그레이스를 발포 끝에 구속했다고 보도했다. 93세의 대통령이 후계를 아내에게 물려주기 위해 부통령을 해임했고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자 군이 현실 정치에 개입했다. 짐바브웨 군은 국영방송국을 제압한 뒤 사령관이 직접 그 사실을 TV를 통해 발표했다. 장갑차는 하라레 중심의 정부기관과 국회, 법원 등으로 이어지는 길을 봉쇄했고 군은 무가베의 측근(군은 이들을 ‘범죄자’라고 불렀다)들을 구속했다. 

 

짐바브웨는 201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짐바브웨 신문인 ‘짐바브웨 인디펜던트’는 “무가베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계속 국가를 이끄는 것이 어렵다”고 전했다. 자연스레 후계 다툼이 치열했는데, 무가베는 그의 아내 그레이스를 후계자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경쟁자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남아공 매체인 ‘news24’는 11월13일 “짐바브웨군은 그레이스를 후계자로 삼는다면 군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무가베에게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레이스의 별명은 ‘구찌 그레이스’다. 명품을 좋아하는 그녀의 낭비벽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무가베가 경고를 무시하자 군이 정치에 개입했고 퇴진 압력에 몰린 독재자는 사임을 선택했다. 그 방아쇠는 결국 독재자의 아내였다.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이 군의 개입으로 37년의 장기 집권을 끝냈다. © 사진=EPA연합

 

지폐에 0이 몇 개가 붙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나라

 

독재자는 사라졌다. 그럼 짐바브웨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사라질 수 있을까.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에서는 600억 배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지폐를 장작 대신 불을 피우는데 쓰기도 했다. 전쟁 등으로 발생하는 혼란 정도가 돼야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발생했다. 하지만 21세기 짐바브웨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자국 통화인 ‘짐바브웨달러’가 유통되고 있었다.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할 때 1달러=0.68짐바브웨 달러였는데 2006년 7월에는 이미 1달러=180만 짐바브웨달러까지 하락했다. 통화 가치가 260만분의 1로 추락한 셈이었다. 이듬해 8월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예금을 묶은 뒤 맨 끝 '0' 세 자리를 줄이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다. 동시에 미국 달러에 자국 통화를 60% 평가 절하해 1달러=250짐바브웨달러(새로운 화폐)로 조정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막진 못했다. 2008년 5월에는 액면가 1억과 2억5000만 짐바브웨달러 지폐가 발행됐고, 곧 이어 50억, 250억, 500억 짐바브웨달러 지폐가 나온 뒤 1000억 짐바브웨달러 지폐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다. 2008년 8월 중앙은행은 다시 1000억 짐바브웨달러를 10짐바브웨달러로 하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지만 인플레이션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또 다시 12월 말 100억 짐바브웨달러, 2009년 1월 200억과 500억 짐바브웨달러 지폐가 또 다시 등장했다. 2009년 1월, 짐바브웨달러 가치는 1달러=250억 짐바브웨달러까지 추락했고 연간 2억3000만%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2009년 2월에는 1조 짐바브웨 달러를 1짐바브웨달러로 하는 12자리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다. 

 

하지만 3번의 화폐개혁은 모두 실패했고 그 뒤부터는 짐바브웨 지폐의 0이 얼마나 뒤에 붙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사실상 화폐를 잃은 짐바브웨 정부는 2009년 1월부터 미국 달러와 유로, 파운드, 남아프리카 랜드 등의 외화 유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무원의 급여도 달러로 지불했다. 그 결과 0이 엄청나게 붙은 짐바브웨 지폐는 모두 폐지됐고 이제는 관광객에게 기념품으로 판매된다.

 

1980년 신생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가 된 무가베의 모습. 당시만 해도 그는 혁명의 영웅이고 유능한 정치 지도자였다. © 사진=AP연합

 

독재의 리더가 된 독립의 리더

 

짐바브웨의 독재자는 2007년 6월, 미쳐 날뛰는 물가에 화가 치밀자 기업이 생산하거나 상점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반값으로 내리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판매되는 모든 물건이 진열장에서 사라졌다. 물건들은 대신 어둠에서 거래됐다. 무가베의 극단적인 경제 정책은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과신해 시장을 통제하려고 들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데표적인 사례가 됐다. 그리고 무가베는 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주범이기도 했다.

 

무가베가 처음부터 독재자의 길을 밟은 건 아니다. 1980년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한 짐바브웨다. 젊은 무가베를 아는 세대에게 그는 혁명의 영웅이고 유능한 정치 지도자였다. 독립 이전의 짐바브웨는 불과 6000명의 영국계 백인 농장주가 전 국토의 40%를 소유한 곳이었다. 약 22만명의 백인이 약 400만명이 넘는 흑인을 힘으로 눌러 다스리던 곳이었다. 이런 왜곡된 상황을 뒤집기 위해 해방 투쟁을 지휘한 리더가 무가베였다. 

 

반(反)식민지주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인종차별)를 내걸고 흑인들이 무력으로 대항하면 폭동과 내전을 두려워하는 백인들이 국외로 도피하게 된다. 백인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강력하게 대처할수록 백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기자 더 이상 아파르트헤이트는 힘을 쓸 수 없었다. 결국 1980년 영국과 미국의 조정 아래 무가베를 중심으로 한 혁명군은 권력을 이어받았고 이렇게 신생 짐바브웨가 탄생했다.

 

짐바브웨는 독립 후에도 백인 농장주의 권리를 최대한 지켜준, 드문 국가였다. 실제로 2000년에도 짐바브웨 인구 중 1%가 안 되는 백인이 전체 농지의 20%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백인 농장주와 흑인 영세농의 격차는 정치 이슈가 됐다. 이런 가운데 무가베는 1990년 말, 갑자기 백인 소유 농장의 강제 접수를 단행했다. 접수 조치 뒤에는 장기 독재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있었다. 

 

1997년 식민지 시절 무가베와 함께 싸운 참전 군인들은 연금이 연체되자 여당 당사를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무가베는 축제에 빠져 있지만, 우리는 일용할 양식조차 얻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과거 동지들의 압력을 받자 무가베 정부는 7만명의 참전용사에게 1명 당 500만원 가량을 일시불로 지급했고 월 30만원의 연금을 약속했다. 하지만 재원이 마련되지 않은 선심성 약속은 결국 국가 재정을 파탄의 위기로 내몰았다.

 

1999년에도 실정은 계속됐다. 무가베는 내전을 치르고 있는 이웃나라 콩고민주공화국에 1만 명의 자국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목적은 따로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콩고에 있는 무가베 가문 소유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보낸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통령의 사적인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지만 군대는 타국의 내전에 개입했고 짐바브웨 경제는 더욱 악화돼 갔다. 

 

짐바브웨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하다. 2010년 등장한 100조 짐바브웨달러 지폐. © 사진=AP연합

 

독재에 대한 반감 줄이기 위해 백인 이용해

 

국민들의 반감을 돌릴 곳이 필요해진 무가베는 백인을 이용했고 농장 점거를 용인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백인 지배자들의 모습과 다름없는, 반대파를 탄압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독재자로 무가베는 이미 변해있었다. 흑인을 지배했던 백인은 사실상 짐바브웨의 경제도 지배하고 있었다. 짐바브웨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던 백인들이 토지를 접수당한 뒤 추방되자 관련 산업은 순식간에 정지해버렸다. 

 

2007년, 무가베가 인플레이션 대책으로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반값으로 하는 명령을 내린 것은 결정타였다. 짐바브웨 내 자생 기업은 제품 생산을 중단해버렸다. 외국계 기업에 주식의 과반수를 무상으로 양도하라는 명령도 실시했는데, 짐바브웨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그들마저 철수해버렸다. 이런 식의 산업 붕괴가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턱없이 부족한 물자 덕에 물가는 치솟았고, 상대적으로 통화는 폭락했다. 

 

망가진 건 경제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1990년 62세에서 34세로 추락했고 국민의 80%가 실업자이며 어린이의 4분의 1이 고아라는 얘기도 나왔다. 성인 5명 중 1명이 HIV 감염자라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린다. 37년의 집권, 무가베는 독재와 어리석음의 상징이 됐고 그렇게 짐바브웨는 독재가 보여준 최악의 부산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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