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범죄자’ 불법체류자의 두 얼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3 11:31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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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신분 악용한 범죄 피해로 속앓이…관리 안 돼 강력범죄 저질러도 적발 어려워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 문물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외국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는 ‘외국인 타운’이 형성되면서 ‘한국 속의 외국’을 연출하고 있다. 전국의 산업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돼 땀을 흘리고 있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한 명의 일손이라도 아쉬운 농촌 지역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야말로 ‘효자손’이다.

 

그러나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증가하면서 적잖은 폐해도 나타나고 있다. 불법체류자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불법체류자는 21만 명 정도다. 이들 중 상당수는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했다가 장기 체류하고 있다. 또 취업비자를 받고 입국해 체류기간을 넘긴 경우도 있다.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에 남았다.

 

우리 사회에서 불법체류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불법체류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체류할 수 있는 것은 노동시장의 부족한 인력 때문이다. 고용주들은 싼 임금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체류자인 것을 알면서도 고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단속 인력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 일러스트 오상민

 

범죄 사각지대에서 신음

 

현행법상 불법체류자들은 단속에 걸릴 경우 곧바로 추방된다. 이런 약점 때문에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 이들의 불안한 신분을 악용한 임금착취, 폭행, 성폭행 등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은 사실상 범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근 태국 국적의 불법체류 여성이 직장 동료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올해 한국 생활 11년째인 추티마(29)다. 그녀는 18살 때인 지난 2006년 돈을 벌기 위해 홀로 한국에 왔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후 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 후 경기도 안성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10년을 일했다. 매달 100만원 정도를 태국의 부모에게 송금했다. 태국에는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낳은 13살짜리 딸도 있었다.

 

11월1일 추티마는 직장동료 김아무개씨(50)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불법체류자 단속이 나온다고 하니까 다른 곳으로 가자”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추티마를 승용차에 태워 경북 영양군의 한 야산으로 이동했다.

 

나흘 뒤인 11월5일 새벽 3시쯤 추티마는 이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돌로 머리와 얼굴을 맞아 턱 부분 등이 함몰된 상태였다. 범인은 직장동료 김씨였다. 그는 시신을 버려둔 채 안성으로 돌아갔다가 범행 사실을 전해 들은 가족의 권유로 11월4일 오후 자수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같이 놀러 가려고 했는데 빨리 돌아가자고 해서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추티마를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추티마가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것을 악용했다. 불법체류자들은 신분노출 위험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공개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김씨의 범죄가 살인이 아니라 성폭행에 그쳤다면 신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불안한 신분을 약점 잡아 지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불법체류자들은 자국민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난 9월 충남 아산경찰서는 국내에 불법 체류하는 자국민을 상대로 21억원 상당을 가로챈 태국인 부부 사기단을 검거했다. 이들은 국내에 있는 불법체류 태국인들에게 접근했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고금리 이자를 주겠다”고 현혹했고, 여기에 속아 55명이 피해를 입었다.

 

피의자들은 불법체류 중인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하고도 강제 출국을 우려해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못하는 점을 노리고, 불법체류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부부 또한 2013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출국하지 않은 불법체류자였다.

 

오랫동안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해 속앓이하는 불법체류자들도 적지 않다. 임금체불 피해를 입어도 신분상 불이익 때문에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8월 광주 남부경찰서는 신분상 약점을 악용해 외국인 근로자에게 임금 수천만원을 지불하지 않은 혐의(공갈)로 정아무개(52)씨 등 건설업자 2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아파트나 빌라 등 신축공사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원하고도 “불법체류자니까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겁을 주며 임금을 착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상대로 “비자를 받게 해 주겠다” “체류 기간을 늘려주겠다”고 속인 뒤 금품을 가로채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범죄 피해를 당했을 경우 보호하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3년부터 ‘통보의무면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불법체류자가 범죄 피해를 신고한 경우 경찰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자의 신상정보를 알리고 인계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통보의무’가 면제되면서 경찰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자의 신상정보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외국인들도 많지 않을뿐더러 추방당하거나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를 꺼리기 때문이다.

 

범죄 피해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적발돼도 곧바로 추방되지는 않는다. 법무부는 성폭행이나 성매매 피해 여성, 소송, 임금체불 등을 겪는 불법체류자에게 G-1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해당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최소한의 체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날로 흉포화하고 있는 범죄

 

불법체류자가 범죄 가해자인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불법체류자가 증가하면서 범죄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입국관리사범은 15만2482명이었다. 4년 전인 2012년 9만6799명에 비하면 약 1.6배 증가한 수치다. 불법입국자, 불법체류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외국인에 대한 강제 퇴거도 2012년 1만8248명에서 2만8784명으로 늘었다.

 

불법체류자들의 범죄도 날로 흉포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외국인 범죄 피의자들 대부분은 불법체류자들이었다. 2008년 경기도 양주에서는 중학교 1학년이던 강수연양(14)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강양은 가슴과 목 등을 무려 13차례나 찔렸다. 범인은 7년째 불법체류하던 필리핀 국적의 J씨였다. 그는 “성폭행하려다 욕심을 채우지 못하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2012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토막 살해한 오원춘도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오씨는 피해자의 시신을 무려 358점으로 토막 낸 뒤 14개의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는 중국에서 폭행, 도박, 문서위조 등의 범죄 전력이 있었으나 국내에서는 파악되지 않았다.

 

2014년 12월 동거하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토막 낸 박춘풍도 불법체류자였다. 그는 2008년 12월2일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여권을 위조해 입국했다. 오원춘이나 박춘풍은 범행 전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물론 일부 엽기적이고 잔혹한 사건으로 모든 불법체류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면 안 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2012년부터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의 지문을 채취해 관리해 왔다. 취업비자 등으로 90일 이상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은 열 손가락의 지문을 모두 법무부에 등록해야 한다. 관광비자 등을 이용해 한국에 90일 미만 단기 체류하는 경우는 양손의 검지만 지문을 등록한다.

 

‘팔달산 토막 살인’ 사건의 피고인 박춘풍씨(55·중국 국적)가 2015년 11월16일 사이코패스 정신병질 감정을 받기 위해 서울 이화여대 뇌인지과학연구소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불법체류자 관리대책 시급

 

2015년 4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서 중국 동포 김하일이 같은 국적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시화방조제 인근에 유기했다. 피해자의 시신이 이틀 만에 확인된 것은 입국 당시 법무부에 등록한 지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제도가 시행된 2012년 이전에 입국한 외국인의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지문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신원파악이 불가능하거나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살인 사건 현장에서 증거물로 범인의 지문을 채취해도, 기록이 없어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이다.

 

2012년 이후라도 밀항이나 밀입국 등으로 입국한 경우에는 마찬가지다. 가령 불법체류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몰래 국내를 빠져나가면 해결 방법이 없어진다. 밀입국하거나 호적세탁 등으로 다시 들어오면 범행을 저질러도 신원 파악이 안 된다. 지문 감식도 안 돼 범행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해도 추적할 수 없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폭력조직원들의 경우 추방되더라도 열에 아홉은 호적 세탁이나 위조 여권을 통해 다시 들어온다고 한다.

 

2012년 6월 각종 범죄로 인해 한국에서 추방된 중국 국적의 조선족들이 여권과 주민등록증(호구부)을 고쳐 한국에 재입국했다가 130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2003년 7월 경기지역 한 카페 여종업원을 흉기로 찌른 뒤 성폭행해 강제 추방된 조선족 김아무개씨는 생년월일을 한 달 늦추고 이름을 바꿔 3년 만에 재입국해 귀화까지 했다.

 

불법체류자인 중국인 A씨는 2009년 2월 살인미수죄로 구속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고 추방됐다. 그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바꿔 다른 사람 명의의 여권을 발급받은 뒤 방문취업비자(H-2·체류기간 3년)로 2009년 12월13일 재입국했다. A씨는 6년간 국내를 활보하다 2015년 3월에야 관계 당국에 적발됐다. 국내 범죄조직이 외국 범죄조직이나 불법체류자들과 연계해 청부살인 등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8월18일 배우 송선미씨의 남편 고아무개씨(45)는 유산상속분쟁을 벌인 외조부의 장손 곽아무개씨(38)에 의해 청부 살해됐다. 그는 고씨를 살해한 조아무개씨(28)에게 조선족 청부살해업자를 언급하며 고씨를 살해할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이들의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 반면 불법체류자의 범죄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불법체류자를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한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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