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잔치’에 재 뿌리기 부담스러웠던 김정은
  •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28 15:05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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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시진핑 정부 2기 출범 전후해 도발 자제하다 29일 기습 미사일 발사

 

북한은 9월3일 수소폭탄급 핵실험을 감행하자 불과 9일 만에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은 3일 뒤 사거리 3700km의 중거리미사일을 또다시 일본 너머 태평양으로 발사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제재에 굴하지 않음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월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경고하자, 다음날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국무위원장 성명을 내고 “모든 것을 걸고 공화국 절멸을 외친 미국 통수권자의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9월23일 B-1B 전폭기가 NLL(북방한계선) 이북 공해상에서 북한을 위협 비행하자, 9월25일 리용호 외무상은 요격을 경고했다.

 

이후 미국 측에선 대화와 압박의 신호를 섞어 내보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9월30일 베이징에서 “북한과 2〜3개 직접 대화채널을 열어 대화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고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틸러슨에게 “‘꼬마 로켓맨’(김정은)과의 협상은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고 일축했다. 북한도 미국의 정책 일관성을 신뢰할 수 있다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국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10월19일 모스크바 비확산회의에 참석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이 조셉 윤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협상을 개시할 수도 있다는 의향을 표명했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화성-12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 추가 도발 감행 가능성 그 동안 꾸준히 제기

 

트럼프 대통령도 11월8일 한·미 정상회담과 9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면서 “자기는 김정은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김정은을 ‘작은 뚱보’라고 놀리지 않는데 북한은 왜 자기를 ‘늙다리’라고 야유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17일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했다. 트럼프는 큰 기대를 표명했다. 하지만 쑹타오가 빈손으로 귀국하자 트럼프는 11월2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고 이어서 미 재무부는 대북 추가 독자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은 11월 29일 새벽 3시17분쯤 기습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된 지 8일, 문재인 정부 들어 11번째였다. 이날 발사된 ​미사일의 세부 제원에 대해선 현재 군당국이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사일의 고도가 약 4500km, 비행거리가 960km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미사일이 고도 4000km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이 기간 북한은 미국과 기싸움은 하면서도 왜 무력도발은 하지 않았던 것일까. 먼저 북한에 반드시 필요한 석유의 80% 이상을 공급하고 대외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최고지도부 재출범 행사를 망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트럼프의 동북아 방북, 특히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원유 공급 중단 같은 극단 조치가 합의될 수도 있으므로 일단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0월 중순부터 미 로널드 레이건 항모전단이 한반도 인근에서 한국 및 일본과 각각 해상훈련을 시행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항모전단에는 이지스 구축함과 핵잠수함이 동행하는데 이들은 각각 북한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더구나 11월10일부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니미츠 항모전단이 가세해 3개 항모 전단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북한을 압박했다. 따라서 도발에 따른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미사일 실험을 위한 기술적 진보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확실한 기술적 진보나 실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엄청난 응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향후에도 계속 도발을 자제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먼저 북한은 여전히 지정학적으로 주한미군과 한국, 일본을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안보 인질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계속 강화되는 대북제재가 괴롭기는 하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개발이 재정이 어려워져 포기해야 할 정도로 고비용이 드는 것이 아닌 데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안보 억지력과 정권의 권위 및 안정성 강화는 조금 괴롭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핵과 미사일은 이미 권력 유지 그 자체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작년에 북한 경제가 3% 이상 성장했다는 통계가 나오듯이 올해 3% 하락하더라도 그 때문에 핵을 포기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이제 1~2년만 버티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완성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임기는 3년밖에 안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도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으며,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한다면 레임덕 상황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또한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합의를 불인정하고 가볍게 말 뒤집기를 반복한 전례를 보면, 김정은은 미국과 협상을 타결해도 트럼프의 변덕으로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은 지속하면서 속도만 조절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두 달여 동안 도발을 자제한 것이 재진입기술 등 기술적 한계 때문이었고 이제 그 한계를 돌파했다면 2012년 12월처럼 올해도 김정일 6주기를 앞두고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감행할 수도 있다. 또한 이번에 성공할 경우 김정은은 내년 신년사를 통해 핵미사일 배치를 지시하고 핵 억지력을 확보했다고 선언하면서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를 동시에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또다시 강경책 구사할 듯

 

북한 핵미사일 완성이 임박하고 있는데 트럼프는 우리에게 확실한 핵 억지력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이득은 취해 갔다. 트럼프는 또 한 차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면서 경제·전략적 이익 취득 2라운드를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확실한 핵 억지력을 구비해야 하는 과제를 남긴 채,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도록 조속히 한반도 평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기회나 정책 수단은 문 대통령의 국빈 중국 방문과 대북 특사 파견, 개성공단 재개, 남·북·러 경협 등이다. 우리 정부가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느냐는 대부분 외교적 설득력과 대미 자율성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는 우선 문 대통령 방중을 통해 한·중 협력 기조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 자제와 올림픽 참가를 유도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유예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 대북 특사를 파견하고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동시에 북핵 협상도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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