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탈원전’ 재등장에 전전긍긍
  • 황건강 시사저널e. 기자 (kkh@sisajournal-e.com)
  • 승인 2017.11.29 14:35
  • 호수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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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후폭풍으로 탈원전 여론 높아지자 “전기요금 조기 인상되나” 우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추진에 전기요금 부담을 우려해 오던 산업계가 잇단 지진 발생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해 경주 지진과 올해 포항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지진으로 탈원전 지지 여론에 힘이 실려 국내 전력 생산의 중추인 원자력발전이 급격히 축소될 경우, 전기요금 인상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는 탓이다.

 

 

지진 이후 ‘원전 조기 축소 가능성’ 여론 주목

 

지난 10월 원전 공론화위원회에서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와 장기적인 원전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오는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탈석탄·탈원전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노후 석탄화력·원자력 발전소를 자연스럽게 폐쇄하고, 신규 석탄화력·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줄여 장기적으로 친환경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완성한다는 복안이다. 국내 원전 건설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전에 대해 규모 6.5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건설된 신고리 3호기는 규모 7.0의 지진까지 견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내년 6월까지 규모 7.0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예상하는 최대 지진은 규모 6.5 수준이다.

 

문제는 이번 포항 지진으로 영남지역의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재평가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 영덕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양산단층이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대부분이 이 지역에 몰려 있다.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경주·울산·부산 인근에는 12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부산에서 울산에 걸쳐 위치한 고리 원전과 경북 경주에 위치한 월성 원전 등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원전 안전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사진=Pixabay·시사저널 미술팀

김종훈 민중당 의원(울산 동구)은 포항 지진 직후 개최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신고리 5·6호기가 공론화를 거쳐 건설이 재개됐다고는 하지만 지진 발생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에 이어 매년 지진이 발생하는 등 조건이 변화한 만큼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활성단층에 세운 거대한 원전단지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종오 민중당 의원(울산 북구) 역시 “규모 5가 넘는 강진이 작년과 올해 계속 발생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 위에 핵발전소가 있어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즉각 재검토하고 노후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력(한전) 측에서는 오는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보고 있다. 2023년까지는 신규 발전소 건설이 예정돼 있어 전력수급이 양호하다는 게 한전의 근거다. 공론화 절차를 거쳐 건설 재개가 결정된 신고리 원전 5·6호기와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인 강릉안인화력발전소, 그리고 삼척화력과 당진에코 등이 건설 대기 중이다. 조환익 한전 사장 역시 국정감사에서 “오는 2022년까지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며 “2022년까지 수급 요인으로 인한 전력 변동 사항은 많지 않으며, 변동이 있더라도 한전에서 흡수할 역량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한전의 이런 시나리오에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전의 예상은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석탄화력·원자력 발전소 축소가 진행된다고 가정할 경우에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한 불안감이 확산돼 원전 즉시 폐쇄 주장이 힘을 얻거나, 장기적인 안전성 보강에 들어갈 경우에는 얘기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김정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추진 등으로 전기료는 2018년 ㎾h당 113.6원 수준에서 2019년에는 119.25원, 2020년에는 122.86원으로 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만에 8%가량 인상되는 수준이다. 전력거래소가 예상한 전기요금 인상률도 3.3~10.5% 수준이다. 다만 여기서는 원전 의존율을 20%, 석탄화력 36%, 가스 22%, 신재생에너지 20%로 가정했다. 원전이 조기 축소될 경우, 실제 전기요금 인상폭은 이보다 커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기요금 인상, 전자·철강·화학 업체 직격탄

 

원전 조기 축소로 전기요금이 인상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업종으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 업종과 철강 업종 등이 꼽힌다. 한전에서 집계하는 전력소비 상위 업체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는 제조 과정에서 전기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최근 수년간 전력구매 상위 업체 순위는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한전 집계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한 곳은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은 당진과 인천·포항1 공장 등에서 연간 1만2000MWh가 넘는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제철 다음으로는 삼성전자가 전력 소비량이 많은 기업으로 집계됐다. 국내 철강 업계의 맏형 포스코는 3위다. 이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상위에 올라 있다. 기판에 발광 물질을 증착시키는 공정이 반도체와 유사한 만큼 전력 사용량도 많은 곳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비슷한 수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밖에 10위권에는 OCI·LG화학·롯데정밀화학·한화토탈 등 화학 업체들과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업체가 자리하고 있다. 또 동국제강과 세아베스틸 등 중견 철강 업체들과 영풍·고려아연 등 비철금속 업체들도 전력 사용량이 많은 곳들이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전력 사용량 순위와 실제 전기요금 인상 시 영향력이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 업종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반면 철강·화학 업체들은 주요국 통상 압박 속에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한 철강 업체의 경영기획팀 관계자는 “한수원 측은 현재 수준에서 추가 보강이 필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내진 성능 보강에 여론이 쏠릴 경우 국내 원전 90%가 보강에 들어가야 한다”며 “전기료 상승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들의 생산비용 상승은 물론, 수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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