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개혁 총론엔 ‘공감’ 각론엔 ‘동상이몽’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3 21:57
  • 호수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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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검경 수사권 조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7인 전수조사

 

“민정수석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게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이 그렇다.”(2011년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을 ‘실패’로 평가했다. 검찰을 견제·감시할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었다. 특히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해내지 못한 점을 “참여정부가 받아야 할 비판의 몫”(2011년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이라 ‘자책’하기도 했다.

 

짙은 아쉬움은 강한 의지가 됐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줄곧 검찰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여론도 힘을 보탰다. 올해 초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국민 10명 중 9명이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1월6일 리얼미터). 정부는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10월엔 공수처 설치 방안을 담은 ‘법무부안’을 국회에 제출해 조속한 합의를 재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을 넘겨받은 국회의 합의 속도는 사실상 정체(停滯)상태다. 자유한국당에선 당장 현 검찰의 ‘보복성 수사’를 문제 삼으며 ‘공수처 반대’를 당론화했다. 한국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에 공수처 안건을 올리는 자체를 거부하며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그저 공수처 논의를 막기 위한 꼼수’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11월29일 해당 안건을 다루는 법사위 제1소위 회의 직후, 민주당 소속 금태섭 법사위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한국당은 ‘공수처에 전면 반대하므로, 구체적인 설치 방안에 대해 어떠한 논의도 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여전히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국당 소속 여상규 위원 역시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을 뿐 합의된 건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야 법사위원들 사이에선 “공수처는 이제 법사위 선에서의 합의가 불가능해졌다”며 비관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현재 여야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강하게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개혁을 위한 논의는 법사위 문턱에서 시동조차 못 걸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들의 ‘동상이몽’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시사저널은 여야 법사위원 17명을 대상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전망을 물었다. 현재 법사위원은 민주당 7명, 한국당 6명, 국민의당 2명, 바른정당 1명, 정의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11월30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당 “공수처 ‘조건 없는 반대’”

 

현재 한국당을 제외한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위원들은 공수처 설치 찬성에 큰 합의를 이룬 상태다. 10월 발표된 법무부안(案)을 기본으로, 박범계-이용주(공동발의)·양승조·오신환·노회찬 위원 등이 각각 발의한 공수처 법안까지 두루 검토해 구체적인 사안들을 합의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법사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한국당 위원들의 반대에, 개별 안들은 아직 기본적인 검토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한국당이 공수처에 ‘조건 없는 반대’를 선언하는 데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즉, 현재 검찰수사가 중립을 잃었기 때문에 공수처 역시 또 다른 ‘권력의 시녀’ 혹은 ‘불필요한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소속 김진태 위원은 “공수처는 제2의 정치사찰기구가 될 것”이라며 향후 논의 자체를 거부할 의사를 밝혔다. 같은 당 정갑윤 위원 역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봤을 때 공수처의 표적은 너무나 분명하다”며 “정부의 충견(검찰)에 이어 맹견(공수처)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또 하나의 공룡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공수처를 찬성하는 위원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당 소속 박지원 위원은 “공수처에 대한 통제 기관도 반드시 마련돼야 하며, 국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소속 이용주 위원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는 것이 앞으로 해 나갈 검찰 개혁 중 하나이므로, 공수처 역시 둘 다 갖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소속 오신환 위원은 아예 공수처가 갖는 권한 중 기소권을 배제한 법안을 별도로 발의하기도 했다. 오 위원은 “전 세계에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 갖고 있는 부패방지처나 수사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불필요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 공수처를 만드는 건데, 공수처에도 그와 다를 바 없이 권력을 부여하는 건 불합리하다”며 발의 이유를 전했다.

 

그러나 공수처 찬성 위원들 가운데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 박범계 위원은 “둘 다 갖고 있는 공수처여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기소권이 배제된 공수처를 만드는 건 또 하나의 경찰 조직을 만드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정성호 위원 역시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으면 기소 여부를 다시 검찰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공수처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오 위원의 법안은 이 같은 우려를 예상해 ‘검찰이 공수처의 기소 요구를 거절할 시 그 사유를 모두 적어 언론에 공개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다른 위원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향후 공수처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진행되면, 기소권 부여를 둘러싼 위원들 간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공수처 찬반 팽팽…수사권 조정은 공감

 

결국 한국당 소속 위원들은 공수처 설치를 통해 권력을 ‘확대’하기보다 수사권 조정을 통한 권력의 ‘분산’이 검찰 개혁의 정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공수처는 여야 간 찬반이 갈리는 반면, 수사권 조정은 정부와 여야 모두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므로 먼저 합의하자는 것이다. 때문에 원칙적으로 ‘선(先) 공수처 설치 후(後) 수사권 조정’을 외치며, 최소 두 사안의 ‘동시 논의’를 제안해 온 여당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 설치를 주장하는 위원들 역시 검찰 개혁에서 수사권 조정의 중요성을 부인하진 않는다. 민주당 소속 금태섭 위원의 경우 “오히려 수사권 조정이 공수처보다 더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신환 위원 역시 “수사권 조정이 더 핵심적인 문제이므로, 정부가 공수처 설치뿐 아니라 수사권 조정 문제에 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사권 조정의 경우 합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를 우선 추진할 경우 검찰 개혁 전체가 상당히 지체될 수 있는 것이다. 정의당 소속 노회찬 위원은 “공수처와 수사권 조정 문제에 반드시 선후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은 검찰·경찰의 견해를 충분히 듣고 그 사이 갈등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기간을 더 길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이춘석 위원 역시 “국회에서 당장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먼저 올려놔버리면, 현실적으로 검찰 개혁의 합의점을 더 찾기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며 한국당의 막무가내식 태도를 꼬집었다.

 

결국 공수처 찬성 위원 측에선 현재 한국당의 수사권 조정 주장은 공수처 설치를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소속 백혜련 위원은 “한국당 내에서 상황에 따라 공수처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결국 검찰수사와 맞물려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정성호 위원은 “수사권 조정이 쉽지 않은 걸 알고 공수처 설치를 막아 검찰을 본인들 편으로 만들려 하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野, 처장 임명권 양보에도 강경… 패스트트랙 가능성도

 

한국당의 강경한 반대에, 한때 박범계 위원을 포함한 여당 소속 위원 중 일부는 “이후 공수처장 추천권을 일체 야당에 부여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공수처 논의를 지속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에 한국당 위원들 사이에서도 다소 기류가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한국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과 주광덕 위원은 공수처장 임명권을 두고 조건부 찬성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두 위원이 법사위 내 공수처 안을 주로 다루는 제1소위에 속하지 않아 적극적인 의사를 피력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1소위 소속 한국당 여상규 위원은 “처장 임명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막말로 보수정권에 한 맺힌 재야의 검사들로 아래를 채워버리면 또다시 현재 검찰처럼 칼춤 추는 조직이 되지 않겠느냐”며 공수처 설치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애초에 연내 통과를 목표로 했던 공수처 설치가 답보상태에 빠지자, 설치 찬성 위원들 사이에선 공수처 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논의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해당 상임위 재적 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동의하면 여야 합의 없이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제도다. 법사위는 한국당 위원 6명을 제외하더라도 총 11명으로 해당 기준을 충족한다.

 

한국당 소속 위원들은 신속처리안건 논의 자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기관을 새로 도입하는 문제를 합의 없이 처리하는 건 향후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다른 정당 소속 위원들은 가능하다면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권성동 위원장이 한국당 소속이기 때문에 신속처리안건 지정부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많다.

 

민주당 정성호 위원은 “얼마 전 신속처리안건으로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된 ‘사회적참사법’도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우리 당(민주당) 소속이라 가능했다”며 “결국 공수처는 국민 여론으로 한국당을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경실련 등 오랜 기간 공수처 설치를 촉구해 온 시민단체에서도 연일 ‘공수처 반대 입장을 철회하라’며 한국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 합의해도 세부 쟁점 산더미

 

공수처는 빠른 시일 내 설치가 결정된다 해도 조율해야 할 세부 쟁점들이 산더미다. 때문에 내년까지도 최종 합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회가 고려해야 할 안은 법무부안과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법안 4개까지 총 5건에 이른다. 공수처에 부여할 권한부터 조직 규모, 수사 대상 범위 등 내용이 제각각이라 추후 합의해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여당은 법무부안을 기본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10월 처음 법무부안이 발표됐을 땐 기존의 기대보다 공수처 권한이 훨씬 후퇴해, 여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 들어 9월에 내놓은 권고안보다 조직 규모가 최대 122명에서 70여 명으로 반 토막 났다. 수사 대상도 2급 이상 중앙부처 고위공무원단 전체에서 정무직 공무원만으로 축소됐다. 이 때문에 법무부안 발표 직후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도 “공수처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러나 현재는 여당을 비롯해 공수처 찬성 위원 다수가 “검찰을 견제하고 중립성을 지키기에 문제 될 게 없는 내용”이라며 법무부안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향후 입법 가능성을 위한 ‘합리적 절충점’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일부 위원들은 여전히 법무부안에 대해 아쉬운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9월 참여연대와 함께 공수처법을 입법청원한 민주당 소속 박주민 위원은 “입법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만, 생각보다 검찰에 대한 독립성이 다소 약해져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노회찬 위원 역시 “조직 규모는 그렇다 쳐도 수사 대상에서 고위공무원, 군 장성 등이 빠진 건 추후 반드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위원들 사이에선 최근 여러 차례의 회의가 잇달아 빈손으로 끝나자, 이젠 합의가 불가능한 법사위 선이 아닌 원내대표 대화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수처 관련 산적한 쟁점들뿐 아니라 이후 수사권 조정 문제까지 조속히 합의하기 위해서라도 이젠 당 차원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정당 오신환 위원은 “지금은 여당의 협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라며 “정부·여당도 당장 공수처 설치로 검찰 개혁의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위원은 “대통령 임기 내에만 (공수처를) 설치하면 된다. 무조건 당장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좀 더 넓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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