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라는 세계의 확장의 발판 ‘철’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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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지구 위에서 보는 인류사]

 

가야가 세계적으로도 탁월한 해상국가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제1부에서 보았다. 그 모습이 우리의 역사를 축소·왜곡시키려는 외세의 노력 때문에 거의 지워져왔을 가능성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의문이 남는다. 영토적으로 볼 때 가야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바로 앞에서 적어도 서기 1세기에서 6세기 동안 중국 양쯔강 유역의 주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시사했었다. 과연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범위까지 영토를 확장해간 예는 세계사에서 종종 등장한다. 유럽 상고대의 페니키아 같은 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외부로 영토를 넓혀가는 것도 그럴 잠재력이 있다고 어느 인간집단이나 다 하는 일은 아니다. 또 강과 바다를 끼고 있다고 해서 다 해상대국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본토 내부적으로 볼 때 나가야 할 만한 긴박한 사정이 있다는 ‘밀어내기 요인(push factor)’과, 나가서 승부를 볼 만한 능력이 있다는 ‘잡아당기기 요인(pull factor)’, 이렇게 양쪽 장단이 맞아야 그 정도의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가야연맹의 초기 근거지였던 김해평야지방은 <가락국기>에 나오는 수로왕의 표현대로, “여뀌처럼 좁은” 땅이다. 인간 정주 초기에는 살만했겠지만, 곧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구 압박이 심해졌을 만한 조건이다. 태백산계와 소백산계가 만나서 이루는 울창한 삼림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타고 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인근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품질이 좋은 목재를 다량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목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좀 더 기후가 온난한 일본 열도나, 비슷한 위도이며 당시에는 훨씬 덜 개발되었을 중국 양쯔강 유역의 삼림 쪽이 더 유리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가야가 외부세계로 진출하는 데는 밀어내기 요인은 있으나 잡아당기기 요인은 별로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자료를 통합해서 보면 가야에는 기원 직전부터 서기 500년경까지 일대를 주름잡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할 만한, 부가가치가 높은 무역 아이템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철’이다. 

 

철광석은 지구상에 두루 분포하는 광물자원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특히 몰려 있는 곳이 있다. 이런 곳에 철광을 제련하는 노하우와 제련하기 위한 열을 공급하는 목재가 있으면 뛰어난 철강 제품이 탄생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철기시대는 선사시대의 마지막 단계인 기원전 1300년경부터 서기 600년경까지로 간주되며, 이 시기 동안에는 품질 좋은 철기 및 철제 무기의 소지 정도가 권력의 바로미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야는 이 철기시대의 절정에 존재했던 국가다. 한반도에는 철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철광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노천광산도 꽤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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