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현 회장, 구치소서 2세 승계 치밀하게 준비했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7 09:42
  • 호수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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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알짜 계열사 합병 과정서 2세들 대주주 둔갑…전문가들 “이 회장이 내부 정보 알고 이용했는지가 관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13년 7월 수천억원대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이 회장의 구치소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인 김희재씨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다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2016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수시로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야 했다. 한때 70~80kg을 오르내리던 몸무게는 40kg대까지 빠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벌였다”는 게 당시 CJ그룹 측 설명이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이 회장은 차근차근 후계구도를 준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말부터 오너 일가의 지분이 있는 계열사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자녀들이나 친인척의 지분율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너 2세들이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점에서 ‘2세 밀어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2015년 12월15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휠체어에 의존해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2세 지분율 오르고, CJ㈜ 지분율 하락 논란

 

IT 계열사였던 CJ시스템즈(現 CJ올리브네트웍스)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 회사는 한때 내부거래율이 80%를 웃돌았다. 계열사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매년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이재현 회장이 33.18%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최대주주는 66.32% 지분을 가진 CJ㈜였다. 이 회장은 2014년 12월2일 CJ시스템즈와 유통 계열사인 CJ올리브영을 합병해 CJ올리브네트웍스를 출범시켰다.

 

주목되는 사실은 합병 하루 전인 12월1일 이 회장이 장남 선호씨에게 CJ시스템즈 지분 15.91%를 증여했다는 점이다. 다음 날 CJ시스템즈와 CJ올리브영이 합병하면서 선호씨는 주요 주주(11.30%)에 이름을 올렸다. CJ㈜(76.07%)와 이재현 회장(11.36%)에 이은 3대 주주였다.

 

1년 후인 2015년 12월 이 회장은 나머지 지분 11.36%도 선호씨와 장녀 경후씨, 조카 소혜씨와 호준씨에게 증여하면서 선호씨는 이 회사 2대 주주가 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듬해 3월 공시된 CJ올리브네트웍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매출은 3454억원에서 1조558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328억원에서 699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호준씨를 포함한 CJ가(家) 2세들을 밀어주기 위해 이 회장이 합병 직전 지분을 넘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CJ그룹 측은 “이 회장이 자녀들에게 증여한 지분이 바탕이 됐고, 필요한 공시 또한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당시 항소심에서 실형을 받는 등 재판 전망이 불투명했다. 건강도 악화되면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계열사 지분을 자녀들에게 넘긴 것”이라며 “오너가 지분이 있는 회사의 합병 비율을 시장가보다 낮게 책정하는 등 합병 과정에서 구설에 오르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의 시각은 달랐다. “오너 2·3세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알짜 계열사 주식을 취득할 수 있었겠냐”는 것이 금융이나 경영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는 덤이었다. CJ 계열사들은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CJ올리브네트웍스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내부거래 비율은 2013년 2034억원에서 2014년 2415억원, 2015년 2803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CJ시스템즈가 CJ올리브영과 합병하기 전 내부거래율은 80%대에 이르렀다. 상대적으로 내부거래 의존도가 낮은 CJ올리브영과 합병하면서 CJ올리브네트웍스의 내부거래율은 18%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분 증여를 앞두고 이 회장이 CJ올리브네트웍스의 실적을 어느 정도 보고받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경우 회사 내부 정보를 승계 구도에 이용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증여세는 통상 증여 시점을 전후로 계산한다”며 “오너 일가가 그해 실적이 좋아질 것을 알면서도 증여를 결정했다면 편법 승계 논란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CJ 본사 © 시사저널 포토

 

CJ그룹 측 “이 회장 건강 악화 따른 선택”

 

CJ올리브네트웍스는 2016년 9월8일 자회사인 CJ파워캐스트와 또다시 합병을 공시한다. 이 회사 최대주주 역시 60% 지분을 가진 CJ㈜였다. 뒤를 이어 선호씨(24%), 경후씨(12%), 소혜씨(4%) 순이었다. 합병 직전 매출은 849억원으로, 414억원(49%)이 내부거래를 통해 나왔다. 두 회사가 합병해도 내부거래율을 떨어뜨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회장은 다시 묘수를 발휘했다.  CJ파워캐스트를 통해 이전까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던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먼저 흡수하게 한 것이다. 이 회사는 스크린 광고영업 대행사로, 이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를 합병한 뒤, 다시 CJ올리브네트웍스와 합치면서 내부거래율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2세들의 지분은 또다시 상승했다. 통합 CJ파워캐스트의 최대주주는 이재환씨(53.35)였다. 뒤를 이어 CJ올리브네트웍스(27.99), 선호씨(11.20%), 경후씨(5.60%), 소혜씨(1.86%) 등이었다. 하지만 CJ올리브네트웍스와 합병하기 하루 전 이재환씨는 2세들에게 14.78%를 매도한다. 이후 이씨의 지분율은 38.57%로 감소했다. 대신 선호씨와 경후씨, 소혜씨의 지분율은 각각 16.95%, 9.43%, 3.53%로 증가했다. 이후 통합 CJ파워캐스트와 CJ올리브네트웍스가 다시 합병하면서 CJ 2세들은 매출 1조4000억원 규모 알짜 회사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합병된 회사 4곳 중 2곳의 최대주주였던 CJ㈜의 지분은 55.01%로 간신히 경영권만 유지했다. 반면 CJ그룹이 계열사 합병으로 지배구조를 조정하면서 오너 2세들은 적지 않은 시세차익을 냈다. 실제로 CJ올리브네트웍스와 CJ파워캐스트,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등 3사는 2016년 9월 동시에 합병 공시를 냈다. CJ파워캐스트가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먼저 합병한 후, CJ올리브네트웍스와 통합 법인을 다시 합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CJ그룹은 ‘포괄적인 주식교환’ 방식을 택했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신주를 교부해 재산커뮤니케이션즈 주식을 인수하는 식으로 합병이 이뤄진 것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 최대주주인 CJ㈜의 지분율이 여러 차례 합병 이후에도 높아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 9월 공정위는 이재현 회장의 동생 이재환씨가 운영하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CJ CGV를 검찰에 고발했다. © 사진=연합뉴스

 

상황에 따라 배임 이슈 확대될 수도

 

특히 CJ올리브네트웍스와 CJ파워캐스트 등은 합병 계획을 동시에 공시했지만, 합병 기일은 한 달 정도 차이를 두게 잡았다. CJ파워캐스트가 먼저 합병하고, 이재환씨 지분을 2세들에게 넘기기 위한 시간 벌기용으로 추측되고 있다.

 

CJ그룹도 일정 부분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 회장의) 재판이 진행됐던 만큼 위법 소지가 있는 일감 몰아주기 이슈를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며 “CJ파워캐스트의 경우 재산커뮤니케이션즈 지분을 매입할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을 선택했다. CJ㈜의 지분 손실은 없었다. 오히려 CJ올리브네트웍스로부터 거액의 배당까지 받은 만큼 문제는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상황에 따라서는 편법 승계나 배임 이슈로까지 논란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오너 일가들이 충분히 이사회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재계 현실이다. CJ그룹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오너 일가가 이익을 본 만큼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이재현 회장 일가가 지분을 거래할 당시 지위를 이용해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회장은 구속됐을 당시 신장 이식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는 말까지 CJ그룹에서 나올 정도였다. 2014년 4월 구속집행정지 신청이 거절되면서 이 회장은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당시 이 회장은 여러 차례 응급 상황이 발생해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전병인 ‘샤르코 마리 투스’(CMT)마저 악화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뒤에서는 2세들의 승계를 치밀하게 진행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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