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을 어찌하오리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1 11:27
  • 호수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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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 ‘장하성 왕따’ 분위기 친문계·변양균계와 갈등설 불거져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에서 리더 자리에 오른 특이한 이력의 정치인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참모가 곧장 제왕이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기에 문 대통령은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는 정치인으로서 큰 자산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던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취를 감춘 것도 집권 경험 탓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친문(親文)’이라는 ‘인의 장막’에 가려 용인술이 금방 바닥을 보일 거라는 지적을 받았다. 재집권하더라도 결속력만 강한 소수의 정치세력에 의존해 국정을 챙겨나갈 거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집권 후 문 대통령 주변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다수 포진했다. 친문 실세들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검증된 관료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등용되고, 동시에 대선 기간 자신과 뜻을 달리했던 반대편 인사까지 영입해 외연을 넓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검증된 관료 출신 인사란 김동연 경제부총리, 홍남기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다. ‘적장(敵將)의 참모’라도 능력만 있다면 중용한 대표적 인물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꼽힌다. 장 실장은 지난 대선 기간 중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 사진=뉴스1

 

인사 놓고 친문계·장하성계·변양균계 대립

 

여권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거짓말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거의 결벽증 수준이다. 반대로 한번 약속한 것은 어떻게든 지키려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인사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보은성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올 7월 청와대에서 여야 4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한 야당 대표가 “앞으로는 무자격자·부적격자의 낙하산이나 보은 인사를 안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자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문 대통령 본인보다 그 주변 참모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최고지도자 주변에는 언제든지 실세들이 포진해 있다. 대통령과의 대면 거리와 권력의 세기는 비례하기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그래왔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인사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생각이 비슷한 인물을 천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 권력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부지기수다. 그런 면에서 최근 각종 인사를 놓고 참모진 간 갈등설이 나오는 것은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현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싸고 3대 세력이 공존하는 구도다. 첫 번째 축은 문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친문계’다. 청와대의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 등이 친문계로 분류된다. 여기에  친문계 원조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은 외곽에서 ‘친문 스크럼’을 짜고 있다. 전해철,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내의 대표적 친문 인사들이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찾아온 정치적 위기를 함께 견뎌낸 ‘동지’들이다.

 

이들이 외연을 확대한 것이 ‘광흥창팀’이다. 최근 정무수석으로 승진한 한병도 수석도 광흥창팀으로 분류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양비(양정철 전 비서관 지칭)의 조기 투입 이야기도 나왔지만, 본인이 완강하게 고사해 한 비서관을 수석으로 올렸다”면서 “한 수석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전대협 3기 핵심으로 활동했지만, 정치 입문 이후 성향은 친문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이 있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다. 청와대의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뿐만 아니라 수석급 파워를 가진 오종식·탁현민 행정관도 광흥창팀 멤버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친위세력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 경험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3개월 만에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한 것은 문 대통령에게 커다란 학습효과가 됐을 것이다. 특히 공직사회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해 왔다. 공직사회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속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공직사회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현재 문 대통령은 공직자와 민간인(학계 등) 출신으로 공직사회 개혁을 이끌려 하고 있다. 이들 각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장하성 현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나머지 두 축은 바로 이들을 가리킨다.

 

변 전 실장은 행시 14회로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예산통이다. 변 전 실장은 행시 후배인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말 똑똑한 공직자’로 평가받았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치철학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와 인연이 닿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김동연 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부임하게 된 것도 변 전 실장의 추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사람은 공직에 들어온 후 주로 예산 분야에서 일한 ‘예산통’인 데다 중장기 정부 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을 기획할 때 함께 손발을 맞췄다. 장하성 실장의 역할은 민간의 혁신 시스템을 공직사회에 이식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장 실장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투톱을 이뤄 자신의 미션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7년 8월31일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변양균 정책실장(맨 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급 임명식에 배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장 실장 인사 개입 비판 의견, 청와대에 전달돼”

 

현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인사를 보면 중국 법가의 대표 사상가 한비가 떠오른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더불어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한비자》에서 한비는 제왕의 자질을 법(法)·술(術)·세(勢)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한비가 활동한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에는 법도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법파(法派)’, 정치적 전략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술파(術派)’, 권력과 위세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파(勢派)’가 서로 대립했다. 하지만 한비는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 말할 수 없기에 이 셋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제왕의 조건이라고 봤다. 한비가 말한 세 가지를 오늘날 대한민국 권력지형에 대입시키면, 법파는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변양균계, 술파는 적의 참모까지 끌어안은 장하성계, 세파는 정치적 이념을 중시하는 친문계로 볼 수 있다.

 

세 축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공존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로선 가장 이상적인 구조다. 그러나 가진 것을 뺏고 빼앗기는 것 또한 권력의 속성이며, 그 중심에 ‘인사’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산하 공기업 및 정부 입김이 센 금융기관 수장 자리를 놓고 3대 축 간 이견이 심화되고 있다는 소문이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여권에는 장하성 정책실장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고 있다. 11월 중순 한 언론에 ‘누가 포스코와 KT를 흔드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이후 갈등이 표면화되는 양상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 실세 A는 문 대통령의 측근인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을 밀어내고 하나금융지주 출신 최흥식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금융감독원장에 앉혔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박경서 공적자금관리위원장,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이동걸 산업은행장 등과도 가까운 사이로 설명돼 있다. 기사에서는 A라는 이니셜로 처리됐지만, 여권에서는 이를 두고 장하성 정책실장을 지칭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최근 여권에서는 “장 실장의 인사 개입을 비판하는 의견이 청와대에 전달됐다”는 이야기마저 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장 실장이 하나금융그룹 출신 인사들을 대거 천거했는데, 그 뒤에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두 사람은 경기고-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다른 색채를 내는 반대편에게는 좋은 빌미가 된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한 여권 인사는 “김승유 전 회장은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왕’으로 불린 인물인데, 적폐청산을 내세우는 이 정부가 김승유 사단을 중용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집권 초기,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 장하성계와 변양균계가 이견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은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줄이는 방법 등으로 노동자의 소득을 늘리면 소비 여력이 늘어나 경제가 선순환한다는 성장론이다. 장하성 실장이 많이 강조한 이론이다. 그러나 올 9월말부터 기류가 달라지면서 최근 들어서는 김동연 부총리 주도의 혁신 성장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도 9월26일 국무회의에서 “혁신성장이 소득 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해 김 부총리에게 일정 부분 힘을 실어줬다.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장하성계는 친문계와 변양균계로부터 협공당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장 실장은 굉장히 불쾌해한다는 전언이다. 장 실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정부 출범 초기 각계각층에서 후보자가 추천돼 인사 과정에서 혼선이 있어 그걸 중간에서 조정해 준 것뿐인데, 이를 두고 마치 인사를 전횡하는 것처럼 알려진 것에 대해 (본인이) 굉장히 억울해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소문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장하성 찍어내기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여권 역학구도에서 장 실장의 몰락은 ‘테크노라시(Technocracy)’의 후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5월25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전에 장하성 정책실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 참모진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KT·포스코 회장 자리 놓고 계파 간 이견차

 

현재 정부 인사는 후반전을 향하고 있다. 임기가 만료되는 주요 공공기관 인사를 놓고 3대 세력 간 불꽃 튀는 경쟁은 앞으로 얼마든지 치열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포스코와 KT를 비롯해 대형 금융기관 인사는 권력지도 개편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한 인사는 “인사 갈등을 놓고 서로를 비방하는 이야기가 문 대통령 귀에 들어가면서 양측이 휴전에 돌입했지만, 언제든지 확전 모드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KT 등 거대 민간기업 수장 자리는 각 진영 간 역학관계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 종이와 같다. 두 기업은 정부 지분은 없지만, 회장 인선과 관련해 정부 입김이 세게 미치는 곳이다. 특히 KT는 역대 정부마다 정권 교체 후 외부 출신으로 수장이 바뀌곤 했다. 때문에 최근 황창규 현 회장을 흔드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 KT 인사는 “정권만 바뀌면 수장이 바뀌다 보니, 경영진이 추진해 온 정책이 얼마 못 가 사장(死藏)되는 일이 빈번했다”면서 “내부적으로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는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황 회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오히려 주위에서 자천타천 형식으로 후보자로 이름을 올리는 분위기다. 현재 시장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B씨와 전직 KT 출신 사장 C씨 등이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 회장 자리를 놓고는 진영 간 이견이 더 크다. 한 여권 인사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계돼 있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당장 내쳐야 한다는 게 친문계 생각이라면, 장하성계는 ‘확실히 나온 잘못이 없는 마당에 실적이 좋은 권 회장을 내치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 때문에 최근 사정 당국이 부산 엘시티 사건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데, 어쩌면 여기서 교체 명분의 단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회장이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 두 번의 문 대통령 순방 수행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도 이러한 여권 내부의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포스코는 12월13일부터 16일까지 있을 문 대통령 중국 방문단에 권오준 회장 대신 오인환 사장을 신청했다. 권 회장 스스로가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각축전이 시작됐다. 김준식·김진일 전 사장과 황은연 현 사장(포스코인재창조원장)의 3파전이 치열한 가운데 의외의 인물이 낙점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준식 전 사장은 광주제일고 출신으로 장하성 실장과는 초등학교·중학교 동기동창이다. 김 전 사장은 전임 정준양 포스코 회장 시절 ‘황태자’로 불렸다. 장하성 실장은 2003년 고려대 교수(기업지배구조개선연구소장) 시절 이구택 포스코 회장의 추천으로 포스코 지배구조개선안 마련을 주도했다. 당시 장 실장이 제안한 지배구조개선안은 이듬해 주총에서 일부 채택됐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최근 포스코는 장 실장을 통해 청와대에 여러 사안을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文, 친문계·장하성계 모두에게 경고”

 

김진일 전 사장은 친노계 원로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무총리)의 용산고 동문이다. 세 후보 중 유일한 현역인 황은연 사장은 친문계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황 사장은 “서울대 공대(금속공학과) 등 특정 대학 출신이 포스코 회장을 독식하는 것은 끝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준식·김진일 전 사장 모두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반면, 황 사장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한 포스코 전직 임원은 “권 회장 임기가 남은 상황에서 각 진영에서 벌써부터 차기 회장을 추천하자 청와대 내부에서 친문계·장하성계 모두에게 경고가 내려졌다”면서 “기본적으로 문 대통령 스스로가 비선라인의 인사 청탁을 극도로 싫어해 각 진영에서 노골적으로 자기 사람을 포스코·KT 회장 자리에 앉히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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