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의 노래 포르투갈의 ‘파두’
  •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2 09:37
  • 호수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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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싱송로드] 제국주의 시대 포르투갈의 팽창과 떠돎의 역사가 파두 음악의 독특함 만들어

 

한국과 무려 9시간 시차가 나는,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쪽 끝에 위치한 나라 포르투갈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름과 함께 작년 유럽 대륙을 제패한 축구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릴 이들도 많겠지만, 세계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선 ‘파두(fado)’라는 단어가 그보다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이후에 서구 ‘팝’이나 ‘클래식’ 음악으로 분류되지 않는 음악들이 월드뮤직이라는 간판 아래 소개·판매되면서 널리 산업적으로 재조명받은 음악들이 있는데, 파두 역시 그 과정에서 세계 음악 팬들에게 더더욱 친숙해진 장르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아담’해져서 한국과 비슷한 면적의 영토를 지니고 있지만, 한때 제국을 이뤄 세계 곳곳을 호령했던 포르투갈의 전성기 ‘대항해시대’에서 유래한 어떤 정서들이 파두 장르 안에 녹아 있다. 바다로 떠난 자와 기다리는 자의 마음들, 두려움과 먹먹함, 외로움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음악축제에서 뮤지션들이 파두 공연을 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

 

파두, 우리네 판소리와 닮은꼴 역사

 

파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제각각이다. 언어학자 마누엘라 쿡(Manuela Cook)에 따르면, 가장 영향력 있는 설 중 하나는 이렇다. 제국주의 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항해를 떠난 이들이 배 위에서 지어 부르던 향수의 노래들에서 파두가 기원하고 있으며, 19세기 들어 본토에서 장르화된 것이 현재의 형태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설에 의하면, 대서양을 건너 세계 각지를 돌며 새로운 땅·문화·음악을 접했던 이 팽창과 떠돎의 역사가 파두 음악의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현재의 파두 음악에서 당시 항해자들이 발을 들여놓았던 피식민 지역의 음악적 요소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카보베르데의 모르나(morna)음악에 쓰인 리듬 등과 유사한 요소들이다. 즉 이 설에 의한다면, 파두는 제국주의 시절의 뱃사람들이 타지를 떠돌며 얻어내고, 바다 위에서 빚어낸 뒤, 고향으로 다시 가지고 돌아온 노스탤지어의 노래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현재 포르투갈 수도이기도 한 리스본에는 파두의 아종(亞種)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리스본 파두’의 전통이 심어졌다. 19세기 초, 도시 내의 하층계급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장르화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파두는 서서히 다른 계급, 그리고 주변 지역의 청중들까지 사로잡으며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국가적’ 음악이 되었다. 또한 제국주의 이후 내전과 독재 등 역사의 굴곡을 겪는 동안 파두 장르가 국민적·국가적 문화 정체성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18~19세기 지구 반대편 한반도의 판소리 역사와 꽤나 닮았다 할 수 있겠다. ‘민속악’으로 태어나 서민들 사이에서 향유되었지만, 곧 지배계급의 귀까지 매혹시켜 널리 퍼져 나갔고, 해방 후 국민·국가 제도 안에서 대표적 ‘국악’의 장르로 보호·지지받은 게 판소리의 역사인 탓이다.

 

리스본 파두 음악에서는 12현으로 이뤄진, 우리가 흔히 아는 형태의 기타보다 작고 보다 둥근 모양의 몸통을 가진 ‘포르투갈 기타(guitarra portuguesa)’를 기본 악기로 사용한다. 이 악기 역시도 스패니시 기타의 변종이 아니라 아랍권의 류트(16세기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했던 발현악기)에서 유래한 악기라는 설도 있다. 포르투갈 기타는 인접한 두 개의 줄씩 쌍을 이루어 같은 음을 내기에 묘한 효과가 나는데,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특유의 풍부하면서도 까랑까랑한 질감이 매력이다. 종종 이 포르투갈 기타와 스패니시 기타가 함께 연주되기도 하며, 현대에는 물론 여러 다른 현악기들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그 위에 목소리 하나가 얹어지는데, 특기할 만한 점은 이 노래꾼의 목소리가 ‘여성의 것’으로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리스본 파두를 부르는 남성 파디스타(fadista·파두 가수를 일컫는 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성들이 목소리를 맡는 인접 장르 ‘코임브라 파두’와 대별되는 리스본 파두의 장르적 특성으로서 흔히들 솔로 여성 싱어의 존재를 든다.

 

포르투갈 여가수 둘스 폰테스의 공연 모습 © 사진=EPA연합

 

그리움과 쓸쓸함, 고독과 상실 등의 감정 담아

 

앞서 언급했듯 ‘향수’라는 정서와 그 근원에서 얽혀 있는 만큼, 대체로 코러스 없이 한 명의 목소리로 불리는 리스본 파두의 가사는 그와 연관된 감정들(그리움과 쓸쓸함, 고독과 상실 등)을 담고 있다. 파두가 지닌 단조풍의 멜로디와 특유의 꺾기는 판소리나 민요의 계면조(슬픔을 노래할 때 사용하는 단조풍의 스타일)를 연상케도 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파디스타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진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1920~1999)의 노래 《감각 속으로 파두를 실어오네》(Trago Fado nos sentidos)의 아래와 같은 가사에서 보듯, 파두는 그 단어 자체로 내면의 슬픔, 잃어버린 꿈과 등치(等値)된다. 다시 말해 파두를 부르는 일은 인간에 내재한 숙명(파두라는 단어 자체가 포르투갈어로 숙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으로서의 슬픔을 꺼내 보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기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비롯한 위대한 리스본 파두의 목소리들은 대체로 수동적 유약함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운명을 응시하고, 거칠게 끌어안고, 또 부대끼며 버티는 이의 목소리로 들린다. 둘스 폰테스(Dulce Pontes)·마리자(Mariza)·미지아(Misia)나 테레사 살게이로(Teresa Salgeiro) 등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저 대륙 반대편에서 어떤 소리들이 도시와 바닷가를 채우며 우리 모두에 내재한 이러한 보편적 정서를 불러내는지 느껴보기를 권한다.

 

“감각 속으로 파두를 실어오네

 심장 속의 슬픔을

 잃어버린 꿈을 데려오네

 쓸쓸한 밤들로”

(리처드 엘리엇의 책 《파두와 그리움의 공간》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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