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MBC, 언론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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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정상화된 MBC에 바란다

 

12월7일 드디어 MBC의 새로운 사장이 선출됐다. MBC에서 시사프로그램 을 통해 PD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방송계에 정립시킨 인물, 2012년 해고된 후에도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다양한 부정부패 사건들을 고발했던 인물 최승호 PD가 MBC 사장으로 시청자 곁에 돌아왔다. 사장에 출마했을 때 그가 내걸었던 출사표는 ‘청산과 재건’ 그리고 ‘방송제작의 자율성’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공영방송의 자율성, 정상화와 함께 지난 9년간 MBC의 보도 및 시사교양 역할을 무력화시킨 이들에 대해 강력한 청산을 강조한 최승호 사장의 MBC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MBC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많은 수험생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언론사 중 하나로 손꼽혔다. 수많은 언론․방송사가 있지만 MBC의 기자․아나운서․PD 등 채용 공고가 등장하면 언론사 지망생들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 및 카페는 온통 마비가 될 정도로 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MBC는 보도의 신뢰, 예능과 드라마의 유쾌한 재미를 겸비한 ‘만나면 좋은 친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력 감시자로서의 역할, 오락적 기능을 모두 보유하고 있던 MBC는 시사저널의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2010년까지 한겨레, KBS 등을 제치고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1위로 인정받았다. 

 

MBC 최승호 신임 사장이 12월11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MBC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언론매체 1위를 유지했던 비결은 단순하다. 성역(聖域)에 끊임없이 도전했기 때문이다. MBC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피디수첩》은 2005년 황우석 당시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하며 참여정부 및 여러 언론매체와 대립했다. 이후에도 스폰서 검사 사건,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며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이 아닌 공공(公共)을 위한 방송이라는 점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겼다. 언론사들 간의 대립이 금기(禁忌)였던 시절, MBC는 특정 사안에 따라 조선일보, YTN 등과 대립하기도 했으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노조 탄압을 비판하며 무소불위의 삼성그룹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시사저널이 조사한 언론매체 순위를 보면 MBC가 그간 얼마나 위상이 하락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에서 MBC는 6위에 그쳤으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언론매체(신뢰도) 순위에서는 8위에 머물러 있다. 가장 열독하는 언론매체(열독률)에서는 심지어 10위에 그치고 있어 모든 지표에서 매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MBC는 영향력도 없고 신뢰도 못 받는 존재로 추락한 상황이며 이제는 국민이 별로 시청도 안 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다. MBC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언론사 지망생들에게도 현재 MBC는 인기 최악의 방송사로 인식되고 있다. 

 

언론을 흔히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칭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을 위한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사에게 성역이 존재해서는 곤란하다. 그 결과 언론매체는 암울했던 시절, 권력자들이 통제해야 할 수단으로 간주됐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섰을 때도 군사정권은 ‘언론 검열 철폐와 자유 언론 실천’을 주도한 기자협회 간부를 모두 검거하고 그 해에만 무려 700명의 언론인을 해직시켰다. 당시 군사정권은 ‘부실 언론사 개편 및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 통폐합과 비판적인 언론인을 해직시킨 후 언론을 도구화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2008년 이후 또 다시 MBC 등 일부 언론매체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미국 헌법은 언론의 자유에 대해 그 어떤 법적 제재도 가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으나 국내는 권력자가 부도덕한 방법으로 감시자로서의 언론 역할을 흐리게 하면 단기간에 얼마나 신뢰도와 영향력이 하락하는지 MBC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해 주요 보도 기능을 통제하고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했던 인물들을 모두 해고한 후, MBC는 철저히 정권의 나팔수가 됐다. 지난 9년간 MBC 뉴스는 앵무새 앵커들이 비판 의식이 결여된 영혼 없는 보도를 쏟아내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MBC가 보도했던 내용 중 황당한 보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2013년 2월에 보도한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을 좌우 한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알통 둘레가 두꺼울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고 알통 둘레가 얇을수록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다는 이 황망(慌忙)한 보도는 해당 논문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고 임의로 보도한 엉터리 기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후 ‘비 오는 날에 소시지 빵을 선호 한다’는 기사나 ‘윷놀이에서 모가 나오는 비법 소개’와 같은 보도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다룰만한 소재임에도 이를 메인 뉴스에서 보도했다. 팩트도 없고 인과관계도 없는 이런 3류 기사를 보도한 MBC가 그간 정상이었을 리가 만무하다. 

 

미국의 언론사는 그 누구에게도 사전 검열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권력자를 포함해 그 어떤 공인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는 조직이 바로 미국의 언론사이다. 언론을 통제하려는 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언론 자유를 위해 모든 기자들이 온 힘을 다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오며 언론의 자유를 지켰기 때문이다. 1971년 미국 국방부가 보안을 유지하며 작성한 ‘미국의 월남 정책 결정 과정의 역사’를 뉴욕타임스가 보도하며 닉슨 대통령과 대립, 법원의 보도 중지 명령으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도 워싱턴포스트가 곧바로 다시 보도를 강행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대통령의 권력에 지속적으로 맞서며 모든 기자들이 협력한 사례는 너무나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뉴욕타임스에게 내렸던 보도 중지 결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며 대통령과 언론사의 대립에서 최종적으로 언론사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언론의 자유와 법원의 독립성이 정치로부터 확고히 분리돼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미국 국민들이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보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신뢰하는 이유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도 태블릿 PC를 단독으로 보도한 JTBC,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공개한 한겨레, 정윤회라는 이름을 최초로 보도한 시사저널, 십상시 사건을 세상에 알린 세계일보 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국내 언론사가 대통령의 권력과 비선실세,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맞서고 있을 때 MBC는 이들 언론사들을 오히려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 사이 MBC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해직 언론인 및 부당 전보된 언론인들은 MBC의 정상화를 촉구하며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 해직된 후 1997일만에 MBC의 수장이 된 최승호 신임 사장은 MBC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정상화된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를 누구보다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공식 선임된 최승호 사장이 곧바로 보도국 인사를 모두 바꾼 후 메인 뉴스의 앵커를 교체한 건 정상화된 MBC로 탈바꿈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손석희 사장 취임 이후 JTBC는 불과 4년 만에 신뢰와 영향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추측 보도, 흥미 위주의 보도를 제거하고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하며 ‘균형, 공정, 품위, 팩트’라는 언론사의 철학을 토대로 JTBC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언론사에게 철학이 없으면 언제든지 보도와 방송은 권력이나 시류에 함몰되게 된다. 최승호 사장은 취임 후, 공영방송다운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MBC는 사주도 없고 국영방송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모두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유일한 방송사라고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의 주인의식이 더 이상 훼손당하지 않도록 언론의 자유, 방송의 자유를 최승호 사장이 지켜주길 바란다. 다시 태어난 MBC 그리고 최승호 사장의 새로운 철학과 비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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