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커피로 맺어진 ‘동지’
  • 구대회 커피테이너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1 16:20
  • 호수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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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회의 커피유감] 커피 하나의 인연으로 느낀 대만 여행의 감동

 

대학 시절 필자가 가장 애정을 쏟은 생활은 차(茶)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면 인사동에 들러 마음에 드는 다구(茶具)와 좋아하는 차를 사는 재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지금 커피를 업(業)으로 삼게 된 것도 그때의 영향이 컸다 하겠다. 당시 좋아했던 차의 대부분이 대만의 고산(高山)에서 생산되는 것이라 필자 마음속에는 대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자리 잡았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만에 갈 기회는 잡지 못했다.

 

작년에 필자가 저술한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가 올해 대만어로 번역되어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평소 대만의 카페와 커피농장이 궁금했기에 좋은 기회다 싶어 대만을 방문했다. 지난 11월, 필자는 타이베이 도심과 구컹(古坑) 지역의 고산을 두 발로 누비며 대만의 카페와 커피농장을 취재했다.

 

대만의 한 커피농장에서 수확한 커피체리의 과육을 벗겨낸 후 햇볕으로 생두를 건조하고 있다. © 사진=구대회 제공

 

구름다리 너머 커피농장이 있었다

 

커피농장이 있는 ‘화산(華山)커피거리’는 마을버스나 택시로 가야 한다. 마을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기에 결국 택시를 타고 화산커피거리로 향했다. 타이베이에 있을 때는 대만이 아열대 기후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가는 길목의 좌우로 늘어선 파인애플농장과 바나나나무를 보고 비로소 갑자기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20여 분 달린 후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쉼 없이 10여 분 더 달렸다. 택시기사는 한 카페 앞에 정차한 후 여기가 화산커피거리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가 예상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스둔(石墩)커피’라는 커다란 간판을 단 카페에 들어가 여주인장에게 이 근처에 커피농장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자기들도 커피농장이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직접 다른 커피농장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 다른 나라의 커피 산지가 그랬듯, 여기도 근처에 커피농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순진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차도로 산 정상까지 1시간30분여를 걸어 올라갔으나, 결국 커피농장에 닿을 수는 없었다.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가 화산커피거리가 어디냐고 물으니, 어느 쪽에서 왔느냐고 되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스둔커피 위로 난 거리가 바로 당신이 찾는 그곳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걸어 내려오는데,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기온은 섭씨 30도에 육박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해 햇볕은 무척 따가웠다.

 

화산커피거리로 돌아와 이 동네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라오우(老吳)커피장원’에 들어갔다. 아이스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목이 타 들어가는 것 같은 갈증 때문에 커피를 생수처럼 숨 한 번 안 쉬고 벌컥벌컥 다 마셨다. 대만에서 마신 커피 가운데 가장 맛있는 커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시간 반 동안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걸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 카페의 사장이라는 노인분에게 필자는 자기소개를 했다. 대만에서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커피농장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스티브 우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의 농장은 해발 1300m에 위치해 있어 차로 가도 한 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차로 5분 거리에 보여줄 수 있는 다른 커피농장이 있다고 소개했다.

 

족히 20년은 더 넘었을 것 같은 그의 BMW 3시리즈 자동차에 올랐다. 차량은 오래되고 낡아 조수석 창문조차 열리지 않았다. 그럼 어떠랴. 커피농장에 갈 수만 있다면.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5분 정도 달린 후 자동차는 산비탈 아래에 정차했다. 급경사의 수백 개 나무계단을 오르고, 위험천만한 구름다리를 건넜다. 잠시 후 정말 거짓말처럼 수백 그루의 커피나무가 눈에 박혔다. 신기한 것은 좌측엔 차나무가 있었고, 우측에 커피나무가 있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커피체리 하나하나를 손으로 쓰다듬은 후 커피나무를 와락 껴안았다. 필자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그는 지금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며 셔터를 눌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는 해발 650m 정도 되기 때문에 차와 커피를 동시에 재배하기에 적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해발이 낮아 최상급 커피를 얻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는 대만의 농부 © 사진=구대회 제공

 

생면부지 외국인에 대한 친절함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이 농장이 택시에서 내려 처음 방문했던 스둔커피의 소유라는 것이다. 필자가 가고 싶었던 농장이었는데, 귀인을 만나 이렇게 방문하게 되니 세상은 참 오묘하고 재미있다고 생각됐다. 스티브 우 사장은 근처의 다른 커피농장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다시 그의 차에 오르면서 필자는 작은 불안감이 일었다. 사례비로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필자 수중에 대만달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으니, 그는 쓰윽 웃으며 우리는 이제 친구니까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다른 농장에서 만난 노부부는 정성스럽게 키운 커피나무에서 잘 익은 커피체리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고 있었다. 스티브 우 사장은 필자 소개를 간단히 한 후 인사를 시켰다. 필자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노부부께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오기로 한 손님처럼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스티브 우 사장의 매장으로 돌아와 그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연락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더우류(斗六) 기차역으로 가는 마을버스 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버스 시간이 남아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스둔커피에 들렀다. 스티브 우 사장과 통화를 했는지 필자의 모든 것을 꿰고 있었다. 자기 농장에도 간 것을 알고, 느낌이 어땠는지 물었다. 필자는 사이폰으로 추출한 대만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당신들은 정말 멋진 커피농장을 가지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담은 찬사를 보냈다. 커피 한 잔을 맛있게 비운 후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스둔커피의 여주인장이 스쿠터를 타고 필자에게 다가왔다. 그는 필자가 정류장을 못 찾을까봐 걱정돼 왔노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류장은 구멍가게 건너편에 표지판 하나 없이 마을 사람들만 아는 장소였던 것이다. 필자는 감사한 마음에 그와 포옹을 했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오후 11시쯤 호텔로 돌아왔다. 커피농장을 다녀오는 데 정확히 17시간이 걸렸다. 비록 커피농장과 카페에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험의 질로만 본다면 몇 달을 머문 것보다 값지고 알찬 시간이었다. 어떻게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저토록 친절할 수 있을까. 필자는 커피에서 그 답을 찾았다. 커피농장을 가꾸고 카페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한국에서 커피 하나 때문에 대만의 시골까지 찾아온 나라는 사람은 이미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게 바로 커피가 주는 매력이자 힘이며 향기인 것이다. 필자는 이 맛에 커피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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