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력 건강한데, 정치권력 허약한 게 光州의 문제”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6 10:50
  • 호수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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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장 출마 선언한 민형배 광산구청장

 

흔히 송정리로 더 잘 알려진 ‘광산(光山)’은 근대화 이후 오랜 시간 고요했다. 늘 광주의 변방으로 여겨졌다. 새로움보다는 낡음이, 활기보다는 침묵이, 희망보다는 비관이, 미래보다는 과거가 광산에 더 어울리는 것 같은 고정관념마저 생겨났다. 이 광산이 100년의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40만 인구의 도·농 복합도시 광산은 KTX, 공항, 고속도로 등 ‘교통 인프라’에 힘입어 기반시설과 생산 환경에서 이미 광주의 중심이다. 그러나 광산은 물적 토대보다 더 중요한 내용으로 대한민국의 표준을 제시하는 혁신정책의 발신지가 됐다.

 

광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1월28일 늦은 오후, 광산구청에서 민형배 구청장을 만났다. 민선 5~6기를 연거푸 재임 중인 민 구청장은 “지난 7년 동안 ‘사람’을 최고의 가치에 두고 ‘참여’와 ‘자치’를 운영원리로 많은 일들을 해 왔다”며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그동안 광산구가 보여준 참여, 나눔과 연대의 모범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민형배 광산구청장 © 시사저널 정성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발상지

 

민 청장의 지자체 운영방식은 기존 문법과는 달랐다. 민선 5기 구청장에 취임하자마자 자치공동체와 지방분권, 사회적 경제 등을 전면에 내세운 강력한 혁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투게더 광산 나눔운동’, 생활임금, 동장 직선제 등 직접민주주의 구현 등은 한국 사회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정책들로 꼽힌다. 모두 전국 최초 사례들이다. 최초 정책은 ‘시대성’과 ‘확장성’을 가졌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정책 지론이다.

 

광산발(發) 혁신정책은 정부 정책을 바꿨다. 전국 ‘최초’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선도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그는 자부하고 있다. 광산구는 2011년 1월 시작해 올해 8월14일까지 총 174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광산이 정규직 정책의 물꼬를 튼 셈인데,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자리 잡았다며 민 구청장은 뿌듯해했다. ‘투게더광산 나눔운동’ 역시 지역을 넘어섰다. 2010년부터 광산구 전체 21개 동에 투게더광산 동위원회를 꾸렸는데, 이것은 정부의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읍·면·동으로 확장하는 정책의 모태가 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정책 1순위로 채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거침없이 답변했다.

 

“노동과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이 지속 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지자체든 정부든 우리 사회를 옳고 생산성 높은 방향으로 재구조화하는 급소가 ‘정규직 전환’에 있다. 광산구의 정규직 전환은 고용불안을 없애는 것뿐 아니라 합리적 임금체계, 평등한 노동조건 등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차별 시정’ 조치 전반이 포함돼 있다.”

 

사회적 경제자치의 성장도 괄목할 만하다. 클린광산협동조합 설립이 대표적 사례다. 이 조합은 광산구의 생활쓰레기 수거를 대행하던 업체의 폐업신고로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만들었다. 이 또한 전국 최초다. 그의 선택은 기존 행정 문법과는 확연히 달랐다. 보통 문제가 생기면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곳과 계약하면 그만이지만, 그는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자 청소노동자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업무를 계속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경영자이자 노동자로서 이중 지위를 가진 청소노동자들은 구조만 바꿨을 뿐인데 급여는 25% 올랐고, 노동은 제자리를 찾았다. 채용과 관리운영의 부조리도 사라졌으며 비용도 절감되고 서비스의 질도 높아졌다. 청소노동 관리운영이 이윤 중심 시장영역에서 사람 중심 공공부문으로 이전한 성과란다. 그는 “사회적 경제로 기본소득도, 사회보장도 모두 지킬 수 있는 희망을 봤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본 대 노동의 대립 구조를 넘어 기업과 노동의 결합체로서 사회적 경제가 앞으로 미래의 새로운 소득 분배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효율은 정의에서 나온다는 논리다.

 

그는 신문기자, 시민운동가에 이어 구청장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민 구청장은 2006년 1월 시사저널이 창간 기념으로 실시한 ‘광주·전남을 움직이는 인물’ 가운데 윤장현 광주시장, 조비오 신부, 강신석 목사 등과 함께 NGO 대표로 선정됐다. 당시 시사저널은 그를 “전남일보 기자 출신으로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지역 현안에 밝은 시민운동가”라고 소개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광주를 이끌 차기 정치 지도자로 부각되고 있다.

 

민 구청장은 지난 11월20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자체 조사결과 차기 광주시장 적합도에서 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2위에 올랐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 참조) 광주 ‘변방’ 구청장의 지지율이 급등한 비결을 물었다. 그는 “촛불 이후 대전환의 시기에 시민들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숱한 명망가 출신들이 광주를 이끌었으나 갈수록 광주의 위상이 축소되면서 새 시대에 대한 시민들의 절실함이 집단지성으로 자신을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 광주’ 비전 제시가 내년 선거 관건

 

광주의 가장 큰 현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민주화 성지 이후에 광주만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 것이다”고 답했다. “광주의 고민은 ‘포스트(post) 광주’에 있다. ‘5·18 이후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다. 기아자동차, 금호타이어에 의존하는 지역경제도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내년 광주시장 선거는 누가 ‘포스트 광주’의 비전을 제시하는지에 달렸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8일 《광주의 권력》이라는 자신의 세 번째 책을 출간했다. 이른바 광주권력론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그동안 겪어온 광주의 지체는 숲을 가꿀 시민 정원사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시민이 고용한 정원사(광주권력)들이 문제였다. 시민권력은 건강하고 지혜로운데 정치권력이 허약하고 영리하지 못했다”며 “광주의 경우, 빼어난 시민과 열정적인 운동가들은 금방 떠오르는데, 여기에 버금가는 멋진 ‘선출직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차기 광주는 최고의 광주권력인 ‘광주시장’을 실력 있는 대표 정원사로 제대로 앉혀야 한다. 광주의 미래에 대한 문제의 답도 여기에 있다”고 그는 광주 시민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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