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베테랑’ 찬밥 신세인 이유
  •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7 16:10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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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시장에 부는 찬바람, 쉽사리 풀리지 않는 준척급 FA 계약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KBO리그도 구단 간에 선수들이 이적하는 스토브리그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열기는 생각보다 뜨겁지 않다. 물론 강민호와 민병헌, 김현수 등이 이적하는 등 거액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따낸 선수들도 있다. 또 투수 최대어인 양현종의 거취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준척급 FA 선수들을 비롯한 방출 선수의 영입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KBO리그에서 FA를 선언한 선수는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황재균과 김현수를 제외한 18명이다. 그 가운데 FA 계약을 맺은 선수는 지난 12월23일 현재 9명에 불과하다. 김현수와 손아섭, 황재균, 강민호, 민병헌 등이 이른바 ‘FA 대박’을 터뜨렸지만, 정근우와 김주찬, 최준석, 이대형, 채태인 등과 같은 준척급 FA들은 아직 유니폼 앞의 이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준석과 이대형, 채태인, 이우민 등은 원소속팀에서 이적해도 보상 선수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영입할 뜻을 나타낸 구단은 아직 없는 상태다.

 

지난 11월30일 각 구단은 보류선수 명단(팀당 최대 65명)을 공식 발표했다. 이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는 FA와 달리 아무런 보상 없이 자유롭게 다른 팀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이른바 방출 선수로, 2017년에는 무려 79명이 원소속팀에서 풀려났다. 그중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국내 선수만 68명이다. 이승엽과 이호준, 박재상 등과 같이 은퇴한 선수도 있지만, 대다수 방출 선수는 새로운 팀을 찾아 현역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정성훈과 김경언, 김종호, 조영훈 등 다년간 실적을 남긴 베테랑들에게도 새로운 팀이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정성훈 © 사진=연합뉴스

 

베테랑들의 한파

 

이처럼 2017년 스토브리그의 가장 큰 특징은 ‘베테랑들의 한파’라고 할 수 있다. 예년 같으면 방출 선수 명단에 오르지 않을 선수가 보류 선수 명단에 오르지 못한 경우도 있다. 또 이적할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FA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정근우와 김주찬 등의 계약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으며, 2018년에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보상 선수를 주지 않아도 되는 채태인과 최준석 등도 새로운 팀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각 구단이 베테랑을 사기보다 젊은 선수 육성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젊은 선수 육성정책은 새로울 것이 없는 말이다. 몇 년 전부터 줄기차게 강조돼 왔다. 최근에는 모기업의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 효율적인 구단 운영을 내세우는 팀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높은 연봉을 받는 베테랑보다는 젊은 선수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구단이 적지 않다. 그런데 구단이 젊은 선수를 우선시해도 성적을 내야 하는 현장에서는 베테랑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젊은 선수의 성적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베테랑은 다년간의 평균치가 있어 그 기대치가 명확하다. 반면 젊은 선수는 전력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결과물을 낼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이정후처럼 뛰어난 성적을 남길 수도 있지만, 타율 2할도 기록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젊은 선수다. 그렇기에 예상할 수 있는 베테랑을 감독이나 코치는 선호한다. 선수 능력에 맞춰 시즌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망주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베테랑을 현장에서 멀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 즉, 방출이다. 감독이 아무리 베테랑을 선호한다 해도 베테랑이 없으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런 점이 이번 ‘베테랑들의 한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견해다.

 

한 야구인은 “재작년(2015년) 두산과 NC의 백업 포수를 보라”고 지적했다. 새해 NC의 최대 약점은 포수다. 다년간 주전 마스크를 쓴 김태군이 경찰청에 입대해, 새해에는 1군 무대 경험이 거의 없는 박광열과 신진호 등이 안방마님을 맡게 된다. 2015년 NC의 백업 포수는 베테랑 용덕한이었다. 그때 박광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그의 기대치를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의 성장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트레이드 등으로 김태군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방법도 있다. 그런 점에서 2년 전 베테랑을 주로 쓴 부메랑이 새해에 돌아오는 것이다.

 

 

베테랑 기용과 선수 육성의 딜레마

 

반면 두산은 그해, 주전 포수 양의지가 부상으로 퓨처스에 내려갔을 때, 과감하게 신예 박세혁의 출장 기회를 늘리며 그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했다. 최재훈이라는 경험이 풍부한 백업 포수가 있는데도, 박세혁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 기회를 살려 박세혁은 좋은 기량을 선보였고, 이는 2017년 초 최재훈의 트레이드로 이어졌다. 또 새해에 FA가 되는 양의지를 잡지 못했을 때, 그 대안도 미리 준비한 셈이 된다(물론 양의지는 리그 최고 포수니만큼, 그 이탈에 따른 전력 약화는 피할 수 없지만, NC 등과 같이 공백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즉, 젊은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성적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젊은 선수를 성장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KBO리그는 극단적인 ‘투저타고’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만 해도 예술에 비견되는 타율 3할을 기록한 타자가 무려 33명이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최저 타율은 kt 박경수가 기록한 2할6푼2리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웬만큼 타격 재능이 있는 선수를 한 시즌 꾸준히 기용하면 타율 2할7푼은 누구나 칠 수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만큼 ‘투저타고’에서는 젊은 선수를 기용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

 

타율 3할이 동네 편의점만큼이나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 그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재능 있는 선수에게 한 시즌 기회를 줬을 때, 과거 같으면 좋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2할7푼을 칠 수 있으므로 세대교체에 따른 후유증도 크지 않다. ‘저비용 고효율’을 노래 부르는 구단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는 그림이다. 그래서 2017년에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친 베테랑 선수 다수가 이적 시장에 이름을 올렸지만, 불러주는 구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경언 © 사진=연합뉴스

 

“베테랑도 베테랑다워야 산다”

 

베테랑에게 찬바람이 쌩쌩 부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베테랑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이다. 팀의 주축이나 중견 선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 만큼 젊은 선수에게는 큰 벽과 같은 장애물이다. 그 벽을 뛰어넘어야 KBO리그에서 안정적으로 뛸 수 있다. 그렇지만 베테랑의 벽은 젊은 선수가 자력으로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기량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젊은 선수의 육성에 있어서 필요한 존재가 바로 베테랑이다. 베테랑이 젊은 선수가 성장할 때까지 버팀목이 돼 줘야 한다. 베테랑은 젊은 선수의 살아 있는 표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2017년 스토브리그에서 베테랑들의 방출이 두드러진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 구단 관계자는 “나이가 많다고 모두 좋은 베테랑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흔히들 베테랑의 가치는 숫자 이상이라고 한다. 베테랑은 개인 성적 이상으로 팀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젊은 선수에게 표본이 되는 것도 그런 요소 중 하나다. 또 팀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의 역할도 베테랑의 몫이다. 그런데 베테랑 가운데는 개인 기량은 뛰어나지만, 팀워크를 저해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과거 이야기지만, 유망한 신인 선수가 입단했을 때 포지션을 다투는 베테랑들이 서로 힘을 합쳐 그 신인 선수를 따돌리며 괴롭힌 경우도 있다. 베테랑은 젊은 선수가 성장하는 데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가장 큰 방해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요소도 있어 2017년 스토브리그에서 베테랑들의 방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여전히 결과를 남길 기량은 있지만, 팀 분위기를 저해하는 베테랑. 그렇다면 성적은 다소 떨어지지만 팀에 활기를 불어넣을 젊은 선수를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구단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준척급 FA 역시 마찬가지다. 준척급 FA 선수의 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보상금과 보상 선수라는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다만 2017년의 경우, 몇몇 선수는 원소속팀이 보상 선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이적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것은 구단들이 팀 분위기를 저해하는 선수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구단은 리더가 되지 못할, 혹은 리더를 도와주지 못할 베테랑은 필요 없다고 외친다. 반면, 선수는 아직 뛸 수 있는데 인위적인 세대교체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한다.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보는 듯하다.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에 4명의 증언이 엇갈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사실은 하나지만 사람마다 진실(기억)은 다 다르다. 베테랑을 둘러싼 2017년 스토브리그도 이와 같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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