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기분 좋은 까닭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8 15:35
  • 호수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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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주얼리 나드리(NADRI)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7년판 롤스로이스 오너스클럽 연감(yearbook)에 소개된 글입니다. 이 연감은 세계적인 명품만 엄선해 소개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나드리라는 기업을 알고 나면 놀라게 됩니다. 한국(계) 기업이 이 책에 수록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나드리는 경남 고성 출신의 최영태 회장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주얼리 업쳅니다.

 

시사저널 1457호에 소개된 최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는 1984년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나드리(NADRI)’라는 이름을 내걸었습니다. 여느 시장상인과는 달리 브랜드의 중요성에 일찍 눈떴던 셈입니다. IMF 외환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던 1997년 4월, 그는 한국을 떠나 홀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서 미국 주얼리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패션 후진국인 한국의 재래시장 상인이 세계 최고 브랜드들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미국 뉴욕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나드리를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패션 주얼리 업체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동안 그가 겪은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합니다.

 

최 회장이 여느 한국인 기업가들과 달랐던 점은 그가 세계 최고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의 모국은 당시만 해도 패션 후진국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는 실력과 배짱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방탄소년단은 11월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 K팝 그룹 최초이자 올해 유일한 아시아 뮤지션으로 초청받았다. AMA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 그래미 어워드와 함께 미국 3대 음악시상식으로 불린다.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와 유사한 상황이 최근 팝 시장에서 벌어졌습니다. 7인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화제의 주인공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방탄소년단(BTS)이란 존재를 지난 11월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11월19일 무렵일 겁니다. 포털에 방탄소년단 관련 기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습니다.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AMA)에서 방탄소년단의 히트곡 《DNA》 무대가 화려하게 펼쳐졌더군요.

 

호기심이 생겨 방탄소년단 기사를 정독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존재를 모르고 살았구나’ ‘꼰대 다 됐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어린 친구들이 오랫동안 남몰래 흘렸을 땀과 눈물을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공부에 빗대어 기존 아이돌 그룹이 주입식 교육이 낳은 수재였다면, 방탄소년단은 자기주도적 학습 결과로 나온 천재라는 점입니다. 최영태 회장처럼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본고장을 공략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기본기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지만, 실력이 있는데도 목표를 작게 잡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역시 목표는 크게 잡고 볼 일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 앞에 스스로 소국(小國)이라면서 ‘쫄’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네이밍도 칭찬받을 만합니다. ‘BTS’라는 영어 약칭을 채택한 것이 그것인데, 굉장히 영리한 짓입니다. 이래저래 방탄소년단은 철학과 전략이 있어 보입니다. 이들이 선봉에 선 ‘신(新)한류’는 한국을 전 세계에 매력적인 나라로 각인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것입니다. ‘양자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뜻의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란 표현이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시사저널이 올해의 인물 중 방탄소년단을 표지에 내세운 까닭이기도 합니다.

 

 

*신년호인 다음 호(1472호)부터는 이 칼럼의 문체를 일반 기사체로 바꾸고 분량도 조절하려고 합니다. “존댓말을 쓰니 칼럼 같은 느낌이 안 든다”는 지인들의 문제 제기가 있어 그렇습니다. 분량은 촌철살인을 기본 콘셉트로 삼기 위해섭니다.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니 2018년에 시사저널은 많은 것을 바꿔보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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