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사각지대 ‘전자상품권 다단계 사기’ 기승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9 17:52
  • 호수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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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S시스템 사기 행각 드러나…소액 투자 미끼로 투자자 끌어들여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전자상품권을 활용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일들이 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사는 전직 보험설계사 조아무개씨는 친구를 따라 서울 역삼동의 한 사무실을 찾았다. 사명(社名)이 ‘LHS시스템’인 이곳에서 조씨는 회사 관계자로부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되, 일정 요건만 갖추면 별도의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투자 권유를 받았다. 이 회사는 최근 유행하는 ‘광고 시청형’ 다단계 피라미드다. 다국적 피라미드 조직 F사가 개발한 이 방식은 투자자들에게 온라인 광고만 시청하면 돈을 준다고 유혹하고 있다. 가입비를 내고 이 회사가 개발한 온라인 홈페이지에 접속해 광고를 매일 일정 수준 클릭하면 나중에 포인트로 환산해 돈으로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의 투자 방식이 인기를 끄는 것은 투자금이 많지 않은 데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조사 결과, 이 회사는 무등록 다단계 업체인 것으로 밝혀졌다. 회사 측에서는 일정 금액의 광고 패키지를 시청하면 해당 기업에서 광고비를 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소개했으나, 관계당국 조사 결과,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광고 시청으로 인한 수입이 아닌 투자자들의 가입비를 나눠 가져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LHS시스템은 이 회사 사기 방식에서 변형된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회사 설명 자료에 보면,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와 YTN·드라맥스·GS숍·롯데홈쇼핑·OCN 등 유명 케이블채널을 시청하면, 해당 내용이 광고주에게 전달돼 수익금을 준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투자 방식을 세계 최초라고 소개하고 있다.

 

© 일러스트 정재환

 

“온라인 광고만 보면 상품권 준다” 유혹

 

판매원 모집 방식은 전형적인 다단계 피라미드다. 가입비 50만원을 낸 뒤 자기 아래에 2명의 투자자를 끌어오는 것이 승급 요건이다. 결국 가입자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총 150만원의 투자금을 회사에 내야 한다. LHS시스템에 투자자들이 많이 현혹된 것은 가입금액이 적고, 자기 아래 둬야 할 가입자가 많지 않다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보통 대규모 다단계 피라미드는 여러 명의 가입자를 데리고 와야 단시간 내 이익금이 불어나는 구조다. 하지만 이런 피라미드 구조는 투자자들이 회원모집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최근 등장하는 다단계는 모집 부담을 최소화하되, 별도의 수익 구조를 만들어 마치 고배당을 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홍보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LHS시스템은 자신을 빼고 4명의 투자자를 가입시키면 4명 투자금의 2.5%를 직급수당으로 주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2단계까지 내려가 6명의 인원수를 채우면 전체 투자금의 1.5%, 3단계까지 내려가면 1.0%를 수당 명목으로 준다. 다단계 피라미드 방식이 투자자들을 손쉽게 현혹시키는 것은 투자자를 모집하는 게 쉬워 보여서다. 회사 측 주장대로 본인 바로 아래 단계는 2명, 2단계는 6명이며, 이렇게 지속적으로 투자자가 가입될 경우 7단계만 가도 자기 아래 가입자가 256명에 이른다. 이들이 낸 투자금의 일부가 위로 상납되는 구조라고 소개되면서 상당수 투자자들이 다단계 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LHS시스템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사무실 문을 닫은 채 잠적한 상태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사기당한 피해자들의 피해금액이 대략 200억~300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LHS시스템과 같은 금융 다단계 피라미드가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기 행각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들이 투자자들에게 자체 제작한 전자상품권이라는 것을 지급하면서 가상화폐란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최근 가상화폐 붐을 타고 여기에 편승해 투자자들을 현혹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는 2000년대 반짝 나왔다 사라진 상품권 사기 사건과 유사하다.

 

사기 방식은 다음과 같다. 사기 조직은 ‘특정 회사의 상품권을 할인가에 사들여 정가에 되파는 사업에 투자하면 매달 7~8%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LHS시스템은 자신들이 사명을 LHS라고 지은 것도 롯데(L)·현대(H)·신세계(S) 백화점 등 국내 3대 유통업체와 제휴를 맺어 상품권을 제값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광고 시청 이후 수익금을 회사에서 발행한 상품권으로 지급했고, 이를 추후 다시 회사에서 정상적인 상품권으로 바꿔줬다. 매달 수익금을 돌려주는 수단으로 회사가 발행한 전자상품권이라는 법적 효력을 갖추지 못한 유가증권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수익금을 받지 못한 게 아니다. 피해자 조씨는 “초기 2~3개월까지 약속대로 투자금이 들어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2000년대 초반 상품권 밀어내기 논란이 일자 대형 백화점 등 유통업계는 상품권 발행에 엄격한 기준을 마련했다. 장혜진 신세계그룹 이사는 “일부 판매조직의 과도한 마케팅 활동이 문제가 되면서 발행금액을 할인해 주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상품권은 가격 할인이 아닌 추가 상품권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발행된다. 카드·현금 등 결제 방법에 따라 지급률은 다르다. 가령 신세계는 1000만~3000만원어치 상품권을 현금으로 매입할 경우, 전체 금액의 2.5%, 카드일 경우 0.5%를 보너스로 주고 있다. 매입 금액이 최대 4억원 이상이면 현금 결제는 보너스 지급률이 3.5%, 카드는 1.5%다.

 

 

상품권법 폐지 후 관련 사기 급증

 

관계당국은 이들이 고객 투자금으로 대량의 상품권을 사들여 그 돈으로 일부 투자자들에게 상품권을 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사한 형태의 사기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전통적인 상품권 사기 행각은 2000년대 후반 커다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최근 강남 일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기 행각은 당시의 자체 발행 상품권이 전자상품권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상품권 발행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상품권 발행 규모는 11조원을 넘어섰다. 규모로만 치면 현금·수표·카드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상품권은 1999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관련법이 없어진 후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누구든지 인지세만 내면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다. 이러한 신종 사기를 관리·감독할 정부 기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무등록 다단계업체 관리·감독은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지만, 이번처럼 금융 시스템 업무까지 맡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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