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주지도 않고, 고쳐서도 안 된다는 애플의 오만
  • 김회권·공성윤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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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게이트’가 예고된 참사인 이유…소비자 직접 수리도 법적으로 막아

 

2012년 9월, 팀 쿡 애플 CEO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아이폰5의 엉성한 지도 서비스로 소비자 원성이 높아졌기 때문. 그는 “극도로 죄송하다(extremely sorry)”는 표현까지 쓰며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7년 12월,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가 터졌다. 회사 측은 이번에도 사과문을 띄웠다. 하지만 쿡 CEO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배터리 게이트는 애플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구형 아이폰의 작동 속도를 제한한 것이다. 이는 비공개로 이뤄졌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의 교체 주기를 위해 성능을 고의로 제한한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애플은 “배터리 문제로 인한 기기 성능 저하 때문에 취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애플이 고의로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린 데 대한 집단소송이 제기될 전망이다. 법무법인 휘명 박휘영 변호사는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참여할 인원 20여 명을 모집했으며 2018년 1월초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017년 12월28일 서울의 한 애플제품 리셀러샵. © 사진=연합뉴스

 

머리 숙인 애플, 팀 쿡 CEO는 없었다

 

그러나 애플의 해명이 소비자들을 납득시키기엔 이미 늦은 걸로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는 9999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00조원이 넘는 규모의 집단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됐다. 미국뿐만 아니다. 한국을 포함해 이스라엘, 프랑스, 호주 등 10여 개국 소비자들도 소송에 가세했다. 호주에선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가 500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21만 명이 단체로 소송의사를 밝혔다. 

 

단지 애플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일까. 그렇진 않은 걸로 보인다. 시카고 지역 변호사 제임스 블라키스는 USA투데이에 “이번 사건에 대한 애플의 보상안은 매년 신형 아이폰을 사는 전 세계 애플 충성 고객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애플은 사과문을 통해 1인당 50달러를 보상할 테니, 원래 79달러인 교체 비용을 29달러만 내라고 공지했다. 이 사과문엔 쿡 CEO의 이름은커녕 책임자가 한 명도 적혀 있지 않다.  

 

 

배터리 안파는 애플, 삼성과 달리 교체도 안 돼

 

애플은 배터리를 팔지 않는다. 애플의 보증 기간 1년 동안에는 ‘배터리 교체 1회’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교환이 가능한 건 배터리에 결함이 있을 때이며, 그 결함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소비자는 알 수 없다. 

 

만약 애플의 해명대로 배터리 때문에 기기의 성능 저하가 우려됐다면, 소비자가 배터리를 바꿀 수 있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애플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이폰은 배터리와 기기가 일체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애플은 법적으로도 배터리 교체를 반대해오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아이폰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명시한 법률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미국 네브라스카와 일리노이, 메사추세츠, 미네스타, 뉴욕, 테네시 등 여러 주에서 ‘수리의 권리(Right to repair)’를 보장하는 입법이 진행됐다. 이 법안의 골자는 제조사에서 수리 설명서를 발행하고, 고장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간단한 수리공구 등을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품의 소유주에게 제품을 고칠 권한을 주는 건 당연하다는 취지에서다. 

 

올 1월3일 서울 한 애플서비스센터에서 소비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소비자가 직접 고치는 것도 허락 안 해

 

그런데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업들은 강력한 로비를 무기로 이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중엔 소비자기술협회(CTA)와 같은 이익단체도 있다. 반대 논리는 간단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제조업체의 정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 2016년 미네소타에서 수리의 권리가 논의되고 있을 때, CTA는 성명서를 통해 “이런 입법 제안이 제조업체의 독점 정보를 유출시킬 수 있다”며 반발했다. CTA의 회원사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업체가 바로 애플이다. 

 

애플의 논리도 CTA와 맞닿아 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애플은 “사용자가 스스로 배터리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할 경우 아이폰의 해킹이 보다 쉬워지고, 아이폰 내부를 볼 수 있게 되면 모조품 제작이 쉬워진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애플은 우리나라에서도 수리 문제로 소비자들의 골치를 썩이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에 하자가 심할 경우 리퍼폰(불량품이나 중고품을 고쳐 다시 내놓은 제품)으로 바꿔주는 수리 정책을 고수해오고 있다. 애플 공인 국내 서비스센터 케이머그(KMUG)에 따르면, 리퍼폰 교체 비용은 아이폰X의 경우 75만 9000원이다. 새 기기 가격(142만원·64GB기준)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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