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 뒤흔들고 있는 이 한 권의 책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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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끝에 출간된 ‘화염과 분노’...트럼프 민낯 둘러싼 논란

새해 벽두부터 출판된 한 권의 책이 절판을 거듭하며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트위터 등에서는 이 책의 구입방법을 묻는 얘기들이 국경을 넘어 떠돌고 있다. IS(이슬람국가)나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메신저에는 이 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링크가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책이 다루는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대통령을 다루는 책이 수없이 쏟아지는 미국이지만, 이번은 이례적인 속도로 충격을 주고 있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울프가 쓴 '화염과 분노:트럼프 백악관의 내부'를 두고 백악관은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책이 주는 충격은 취재원 때문이다. 뉴요커가 소개한 이 책의 주요 인터뷰 대상은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가 지난 여름 해임됐던 배넌은 ‘브레이트바트’라는 우익 매체의 편집장 출신이고 ‘미국제일주의’를 주창했던 보수 논객이다. 현 정부의 개성을 대표하는 인물의 증언이 담긴 책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에 대한 접근이나 정보 없이 거짓된 책들을 쓰는 몇몇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영향력을 가진 척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책은 탄생 과정부터 작동까지,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은밀한 얘기를 기록했기에 트럼프 정부의 구조를 해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런 폭로는 신뢰도가 중요한데, 배넌의 증언은 그런 면에서 주목받는다. 책 내용을 미리보기 해보자.

 

 

저널리스트 마이클 울프가 쓴 '화염과 분노:트럼프 백악관의 내부'는 현재 절판을 거듭하며 베스트셀러로 거듭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1) 트럼프와 캠프 스탭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시사주간지 뉴요커가 1월3일 발췌를 보면 트럼프 캠프의 스탭들은 2016년 8월, 승리를 포기했다. 스탭들은 자신의 이름을 캠프 명단에 올리는 것에만 관심을 있었을 뿐, 선거에서 이길 경우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이해상충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배넌의 눈앞에 있던 트럼프도 점점 당선이 확실해지자 어리둥절해 했다.

 

"후보자 (트럼프)과 진영 경영진은 자신들의 행동 방식과 세계관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이나 부동산 소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 상충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납세 신고서의 공개도 거부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패하더라도 트럼프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악한 힐러리에 맞선 그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될 수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었다."

 

(2) 트럼프는 선거전에 자신의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뉴요커에 따르면 억만장자인 로버트 머서와 그의 딸 레베카 머서는 약 500만 달러를 들여 스티브 배넌을 선거대책본부장에 기용하도록 제안하자 트럼프는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화당 거액 기부자인 머서 부녀는 배넌을 후원해왔으며 브레이트바트의 주주기도 하다. 머서의 제안은 오히려 선거전에 자신의 돈을 쓰지 않는 트럼프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울프는 책에서 "자산 100억 달러의 억만장자 후보가 선거전에 자신의 돈을 투입하는 걸 거부했다"고 썼다. 결국 선거 자금이 조달될 때까지 트럼프는 1000만 달러를 선거전에 투입했다.

 

(3) 트럼프와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은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아닐지 모른다

 

2016년 12월14일 선거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트럼프타워에 실리콘밸리의 최고 경영자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루퍼트 머독에게 전화했다. 머독은 이전 오바마 정부와 강한 정치적 관계를 가졌던 실리콘밸리의 대표 인사들 면면에 트럼프 대통령이 눌린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책 내용에 따르면 머독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를 끊은 뒤 "어쩔 수 없는 바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떄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스티브 배넌(오른쪽)은 미국 정부의 성격을 대변하는 대표적 인사였다 © AP/연합뉴스

(4) 배넌은 트럼프와 관계를 끊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국 가디언은 배넌과 울프의 대화를 소개했다. 배넌은 울프와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캠프가 2016년 7월 힐러리 클린턴의 비리에 관한 정보를 쥐고 러시아 변호사와 만난 것을 "사실상 반역행위"라고 말했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을 포함해 트럼프 캠프의 간부 3명은 트럼프타워 25층 회의실에서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은 채 타국 정부 관계자와 만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당신이 이것을 반역이거나 비애국적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즉각 FBI에 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만남에 대한 보도가 나왔을 때 트럼프의 장남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반면 백악관은 이 만남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FBI의 특검을 '마녀 사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배넌의 증언을 통해 당시 측근들도 러시아 측과의 만남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5) 트럼프 가족은 백악관의 직무를 디딤돌로 여기고 있다

 

이방카와 쿠슈너. 트럼프 대통령의 딸과 아들은 예상외의 승리를 거두자 자신들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높은 곳으로 오르기를 기대했다고 울프는 기록했다. 미래의 목표를 대통령에 두고 있다. "두 사람은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언젠가 장래에 기회가 온다면 대선레이스에 서는 것은 이방카 쪽이다." 쿠슈너와 갈등을 빚고 있던 배넌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곤 경악했다고 한다.

 

(6) 트럼프는 책을 읽지 않는다


뉴요커의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이야기(주로 월가의 자산가들)를 많이 듣고 TV를 많이 본다. 특히 침실에는 TV가 3개나 있고 종종 TV로 둘러 쌓인 침실에 틀어박혀 치즈버거를 저녁 식사로 먹는 걸 좋아했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이라고 한다.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 정세를 분석하는 것보다 측근의 정보와 그들의 얘기가 주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 정황이다. 측근들의 영향력이 큰 정부라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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