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표의 엇박자 통합 행보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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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물과 기름의 통합이 성사될 것인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현재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해 있다. 안철수 대표의 일방적인 통합 행보에 반대파 의원들의 비난 수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이 와중에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통합에 관해 아직 결정한 바 없다. 안보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며 국민의당과 일정 거리를 두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통합 지지 의사를 보냈던 손학규 고문 역시 “안철수 대표가 진심을 다해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여전히 리더십 부족이 아쉽다”며 안철수 대표의 통합 행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다. 고립된 상황에서 통합 행보를 펼치는 안철수 대표,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안철수 대표는 통합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박지원 의원에게 “영남과 호남의 통합도 어려운데 어떻게 남북통일이 될 수 있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지며 영남과 호남의 통합, 중도개혁보수 정당으로의 혁신, 제3당의 존립 필요성을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필자 역시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개척지를 모색하는 제3당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안철수 대표가 추진하는 통합 행보는 그토록 강조했던 새정치도 아니고 극중주의 역시 아니다. 중도개혁보수라는 실체가 모호한 미사여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국민의당 통합 행보를 이끄는 그의 언행이 왜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첫째, 안철수 대표는 통합 행보에서 너무 많은 말 바꾸기를 거듭했다. 지난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안철수 대표는 다른 후보들의 지속적인 ‘바른정당과의 통합 추진 문의’에 “바른정당과 합당 추진은 분명히 없다”며 통합에 확실한 선을 그었다. 특히, 천정배 당시 후보가 바른정당과의 선거연대를 물어봤을 때조차 그는 “선거연대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안철수 대표는 과거 교수 시절 가장 싫어하는 상대방으로 ‘일관성이 없는 사람’을 꼽았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결벽증 수준의 신중함을 보였던 안철수 대표였기에 그의 거듭된 말 바꾸기 행보는 결국 같은 당 의원들에게 그가 불신의 아이콘이 되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둘째, 안철수 대표는 정당의 통합을 기업의 인수합병처럼 추진하고 있다. 조직의 성과 및 생존을 위해 역량이 약한 부분을 정리하고 신속하게 타 기업을 흡수하는 기업의 인수합병과 핵심가치, 이념, 정체성을 토대로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단합하는 정당의 통합은 근본 성격이 다르다. 안철수 대표는 과거부터 ‘영속성’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영속하려면 반드시 핵심가치를 공유해야 하고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도록 리더가 일관성을 갖고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의 생존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하는 방식은 기업의 인수합병과 다를 바가 없다. 

 

셋째, 당 대 당 통합을 이루려면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는 제3당의 정책 노선, 지향점, 철학을 정립해서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의원 한 명 한 명을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통합의 돌파구는 어쩌면 국민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통합해서 신당의 지지율이 높아진다는 점을 홍보할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들이 말하는 개혁보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당의 정책과 철학은 어디에 기준점을 둘 것이지를 먼저 밝혀야 했다. 핵심가치를 분명히 정립한 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소통했다면 통합 반대를 외치는 의원들의 행보도 줄어들 수 있고 여론도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요한 타이밍을 너무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유승민 대표는 대북 안보가 갈수록 위기인 상황에서 “안보 위기에 대한 해법과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정당을 하는 게 맞다”며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이후 눈치를 보던 김세연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재빠르게 탈당을 선언했다. 유승민 대표의 리더십 역시 한계를 보인 상황이다. 안보관이 다르다면 안철수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어떤 방향으로 국가안보를 이끌지 같이 고민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정당 대표의 리더다운 행동이다. 국민의당이 분당 사태에 직면하고 안철수 대표가 수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자 곧바로 머뭇거리는 행보를 보이는 유승민 대표의 모습에서 리더의 도량이나 품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경영학 연구조차 기업 인수합병의 필수 조건으로 신뢰의 가치를 최우선 사항으로 꼽고 있다. 상호 호혜적인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인수합병을 추진한 기업들은 모두 시장의 외면을 받고 몰락했다는 것이 경영학 연구의 일관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기업이 이러한데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정당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행보를 하나하나 무섭게 주시하고 판단한다. 그들의 행보에 일관성이 부족하면 그리고 진정성이 결여돼 있으면 유권자들은 단호하게 투표를 통해 부적절한 정치인을 심판하고 내쫓는다. 지금의 통합 행보를 엇박자로 대다수 국민들이 보는 이유는 진심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월12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영남과 호남의 통합 그리고 중도개혁보수의 단합을 싫어하는 국민은 없다. 좌와 우, 위와 아래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어줄 건강한 정당의 필요성도 국민이 원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2010년 안철수 대표가 교수 시절 국민에게 희망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배경 역시 ‘기존 낡은 정치를 바꿔달라는 국민적 열망’에 있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급속히 당을 쪼개고 다시 통합하고 이름을 바꿔 간판을 내거는 정당은 아무리 영남과 호남의 통합을 소리쳐 외친다고 한들 국민들에게는 허황된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겠다던 안철수 대표는 지금 스스로 국민적 열망에서 멀어지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2년 전 총선, 지난해 대선에서 가장 국민의 지지를 높게 받았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총선 때 선거연대를 뿌리치고 독자생존을 외치며 고독하게 승부를 하던 그의 모습에 유권자들은 적지 않은 지지를 보냈고 그 결과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당은 민주당을 제치고 26.7%라는 높은 지지를 받는 이변을 일으켰다. 대선도 마찬가지다. 후보 간 합종연횡을 거부하는 그의 결연한 의지에 안철수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한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를 넘어서는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결연한 승부를 보일 때마다 높은 지지를 받았던 그가 가장 낮은 지지를 보인 때는 언제나 비루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일 때였다.

 

와튼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상대와 협상에 나설 때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상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을 꼽았다. 거짓말을 하면 신뢰와 일관성에 치명상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 역시 교수 시절 장기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단기적인 손해는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리더의 자세라고 젊은 학생들에게 얘기한 바 있다. 그의 저서 제목과 같이 ‘영혼이 있는 승부’를 해도 부족한 상황에 ‘영혼이 없는 승부’만을 보인다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끝내 물과 기름의 통합에 머물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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