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엔 1%도 안 쓰는 삼성생명공익재단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7 13:35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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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이지만 수익사업 지출이 99% 차지…삼성생명재단 측 “병원 운영도 사회공헌사업”

 

삼성이 운영하는 3대 공익법인 중 하나인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생명재단)이 사회복지에 사용하는 돈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삼성생명재단의 주 사업인 병원 운영은 현행법상 사회복지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

 

법인의 투명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목적사업비다. 법인이 설립 목적에 부합한 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비영리기관 정보제공 시스템인 ‘한국가이드스타’를 통해 ‘사회복지법인 기부금 순위’(2017년 6월말 공시자료 기준)를 분석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월드비전·어린이재단·삼성생명재단이 기부금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했다. 한국컴패션·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한국사회복지협의회·밀알복지재단·홀트아동복지회·CJ나눔재단 등이 그 뒤를 이었다.

 

3위를 차지한 삼성생명재단의 총 기부금은 1306억4087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삼성생명재단의 목적사업비는 전체 지출의 단 0.9%에 불과했다. 총지출 1조3174억원 가운데 목적사업비로 쓴 금액은 124억5630만원이었다. 수익사업 지출은 전체 지출의 99%를 차지했다. 9위인 CJ나눔재단은 지출의 98.2%를 목적사업비로 지출하는 등 기부금 액수 1~20위의 다른 사회복지법인이 평균 83%의 지출을 목적사업비로 사용한 것에 비하면, 삼성생명재단의 목적사업비 지출 비중은 극히 작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삼성생명공익재단 © 시사저널 임준선

 

목적사업비, 전체 지출의 0.9%에 불과

 

삼성생명재단의 수익사업을 두고 문제가 제기된 전례는 많다. 국회 정무위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삼성생명재단의 최근 3년간 총수입액은 4조4463억원이 넘지만 공익사업비 지출은 300억원 정도로 총수입 대비 비중이 단 0.69% 수준이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2015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삼성생명재단 총수익 1조5000억원 가운데 수익사업이 1조4000억원”이라며 “공익재단은 공익업무를 해야 하는데, 삼성생명재단은 수익업무만 하고 삼성서울병원·유치원 몇 개 세운 것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병원은 기본적으로 수익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익재단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계속 적자를 메워 가면 그 목적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회계 투명성 부분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삼성생명재단은 다른 사회복지법인과 달리, 외부 회계감사자료 전문을 국세청 공시자료에 첨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재단 측은 “공시 자료와 감사보고서 내용이 같은 내용이기 때문에 별첨을 안 한 것뿐”이라며 “관련 내용은 국세청에 제출돼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재단 측은 또 “삼성생명재단의 가장 큰 목적사업은 병원 운영이다. 진료비 등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익사업으로 잡힌 것”이라며 “병원에서 돈을 벌어 이익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적자가 난다. 공익사업 성격이다. 병원을 운영해 국민 전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수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공헌사업에 해당한다. 공익법인회계기준이 적용되는 2018년부터는 병원사업도 고유목적사업비로 처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 측은 또 “월드비전 등 사회복지법인은 수익이 발생하는 것을 기본 업무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회복지법인과 목적비를 일괄 비교하는 것은 성격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생명재단은 월드비전·어린이재단 등과 같은 ‘사회복지법인’으로 엄연히 분류돼 있다. 사회복지법인은 말 그대로 법령에 의해 사회복지사업을 할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다. 법령이 정하는 사회복지사업은 사회복지 상담, 직업 지원, 무료 숙박, 지역사회복지, 의료복지, 사회복지관 운영 등 각종 복지사업과 이와 관련된 자원봉사활동, 복지시설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사회복지법인은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 목적을 위해 설립돼야 한다. 한국가이드스타 관계자는 “기업이라도 사회복지법인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복지법인이 될 경우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고, 상증세법 상 세금 혜택 등을 받게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복지법인은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보다 훨씬 엄격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공익성’이 가장 강조되는 사회복지법인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목적사업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해 법인의 설립 목적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로 제한된다. 삼성생명재단의 주 수익사업은 병원 운영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수익사업이 99%라면 설립목적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며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설립목적을 벗어난 수익사업인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사회공헌사업이라는 삼성생명재단 측의 주장과 달리, 병원 사업은 법적으로 사회복지사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병원 사업은 사회복지 법인으로 허가를 받을 수도 없다.

 

삼성생명재단은 1982년 ‘동방사회복지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당시 동방사회복지재단은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목적으로 설립됐는데, 설립 허가를 받을 당시는 병원 운영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이듬해 9월 종합병원 사업 시행을 허가받았고, 1991년 4월 지금의 삼성생명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1994년 삼성서울병원, 2010년 삼성창원병원을 개원해 운영해 오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을 관할하는 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법제처는 2015년, 설립 허가 당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거나, 그 이전에 정관 변경을 했을 경우에는 병원 운영이 가능하다며 삼성생명재단이 병원 사업을 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미술팀

 

“병원 운영, 사회복지목적사업에 해당 안 돼”

 

현행법상 사회복지사업법 2조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을 규정하고 있지만 의료법은 없다. 의료기관 설립 근거인 의료법이 법령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 운영은 사회복지목적사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15년 법제처 해석 이후 신규로 만들어진 사회복지법인 설립 지침에 따라, 병원 사업은 사회복지사업으로 허가를 내줄 수 없다. (허가를 내줄 경우) 허가 취소 요건이 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현재 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재단은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돼 운영되고 있지만,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공익법인에 대해 해석이 애매한 부분이 많다. 유권해석을 하거나 법령에서 애매하게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정하는 등 법령에서 빠져나갈 여지를 주는 것들이 많고, 유권해석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공익법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립 목적과 법적 기준에 맞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엄격하게 살펴봐야 한다. 원래 목적에 맞게 자리 잡게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진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대기업, 오너 일가 지배력 확보에 공익법인 악용 논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공익법인은 공익과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주로 학자금·장학금·연구비 등을 지원하거나 자선사업 등을 사업 기치로 내건다. 따라서 정부는 공익법인에 출연한 대기업 계열사 지분 5%(성실공익법인 10%)까지는 상속·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등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들이 공익재단을 오너 일가 지배력 확보에 악용하고 있다는 논란도 많다. 계열사 주식을 공익재단에 출자한 뒤 세금을 감면받고, 이 공익재단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그룹 전체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이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지원하는 데 활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삼성생명재단은 2016년 2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물산의 주식 200만 주를 3060억원에 사들였다. 확보한 지분율은 1.1%로 약소한 수준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써야 할 재원을 이 부회장의 지배구조 강화 수단으로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를 이끌던 당시 논평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재단 이사장 취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재단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공익법인이 그룹 내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 확보를 통해 이 부회장의 승계를 지원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는 지난해 12월,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에 대한 본격적인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기부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은 받고 있지만 계열사 지분을 획득하면서 불법적으로 지배력을 확대하는 문제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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