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측근들은 왜 연이어 MB에 등을 돌리는 것일까
  • 송창섭·유지만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2 09:06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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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정국에 영향 미칠 MB發 '5대 변수' (上)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이제는 전면전이다.”

 

과거 친이계로 활동한 이명박(MB) 전 대통령 측근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말에서 단호함보다 절박함이 더 느껴지는 까닭은 왜일까.

 

김백준 전 대통령실 총무기획관이 구속된 다음 날인 1월17일, MB 진영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은 물론 측근들의 특별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대국민 기자회견이 급하게 마련된 것이다. 오후 5시30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한다”며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 생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측근 수사를 사실상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초강수 발언이다. 더군다나 이날 발언은 지난해 11월12일 바레인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국제공항 발언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적 보복이냐 이러한 의심이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엔 ‘의심’이었지만, 이번엔 아예 정치보복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이 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전면전을 위한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처럼 갖가지 의혹에 둘러싸인 MB의 향후 5대 변수를 들여다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나와 차에 오르고 있다. © 사진=뉴시스

 

■ ​1. 핵심 측근들, MB에 진짜 등 돌리나

 

정치권은 이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반박한 것에 대해 상당히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우리 정치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 ‘정치탄압’을 주장한 사례가 많지 않아서다. 전 정권에 대한 공세를 이어갈 때만 해도 대(對)언론 접촉은 순전히 측근들 몫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정가에선 MB 진영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 다른 측면에선 이 전 대통령 주변에 목숨 걸고 정권에 맞설 투사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인사들은 상당수가 전직 언론인 출신이다. 투사가 아닌 대변인에 가까운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MB 진영에선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특활비) 수사를 정치공세 수준에서 막아낼 생각이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이후 검찰이 김백준 전 기획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후, 이를 근거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부터다. 측근들이 긴급대책회의를 갖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핵심 측근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MB 진영의 우려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발단은 올 초 ‘MB 복심’으로 불리는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2008년 4월과 5월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로 예산관을 시켜 2억원을 김 전 기획관에게 전달했다고 검찰에 털어놓으면서부터다. 검찰 조사에서 김 전 실장은 김희중 전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에게 이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류우익 당시 대통령실장에게 재차 요청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엔 김 전 실장이 이 전 대통령을 청와대 집무실에서 만나 ‘국정원 돈이 청와대로 전달될 경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류우익 전 실장이 최근 비공개 검찰 조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독대했던 것은 맞다”고 진술하면서 김 전 실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기에 최근 검찰은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2010년 재직 당시 청와대에 특활비를 상납한 사실 일부를 인정하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일각에선 청와대가 특활비 상납을 보고받았다는 진술까지 나온 이상,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만큼 MB 진영 중심부를 향한 검찰의 칼날은 매서워지고 있다.

 

다음 차례는 20년 넘게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해 ‘MB 분신’으로 불리는 김희중 전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다. 이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활동한 김 전 실장은 MB 주변 정황을 세세하게 꿰뚫고 있는 인물이다. 한때 친이계 핵심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대통령 마음이 급해진 것은 김희중 전 실장이 검찰에 나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검찰이 김백준(전 총무기획관), 김진모(전 민정비서관)와 김희중을 동시에 조사했는데 김백준, 김진모는 구속되고 김희중은 조사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MB는 등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핵심 측근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원인을 이 전 대통령의 측근 관리에서 찾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고위 공직자로 활동한 한 인사는 시사저널에 “나를 MB 측근으로 보지 말라. 이명박 정부가 끝나면서 나는 MB와 인연을 정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MB는 기업에 있을 때부터 ‘보스’보단 ‘참모’에 가까운 사람이었다”며 “퇴임 후 측근 관리에 실패한 것이 도리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두언 전 의원도 “김희중 전 실장이 2012년 저축은행에서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1년3개월 정도 실형을 살았는데 이때 김 전 실장의 아내가 생활고를 못 이겨 자살했다. 그런데도 MB가 장례식장에 오기는커녕 조화도 안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전직 현대건설 고위 임원도 “MB는 현대건설 시절부터 명예회장(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게만 잘 보이고 아랫사람은 필요에 따라 갈아치웠다”면서 “그러다 보니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이 전 대통령이 1월17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한 것을, 측근들에게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신호를 준 것으로 해석한다. 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는 이면 합의가 있었다”고 말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사례처럼, 같이 근무한 고위 공직자들에게 어떠한 돌출행동도 하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 2. ​MB, 흩어진 보수 세력 다시 규합할까

 

이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킨다고 본다”고 언급한 점도 주목해 봐야 한다. 사실상 보수층에게 SOS를 보낸 것이다.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고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MB 진영이 원하는 프레임은 ‘보혁(保革) 대결’이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전략에는 단번에 ‘보수층 탄압’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으며, 만약 이 전략이 성공할 경우 ‘샤이 보수’의 결집까지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론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가 중요한데, 기자회견 후 국정원 특활비 사용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높은 것은 MB 진영으로선 답답한 노릇이다. 기자회견 이후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전 특임장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핵심 측근들이 가동할 수 있는 채널을 총동원해 언론 인터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정권과의 전면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엔 옛 친이계 인사들의 절박함도 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는 동안 서울 삼성동 사무실 한편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동기 전 민정수석, 김효재 전 정무수석, 김두우 전 홍보수석, 최금락 전 홍보수석, 장다사로 전 총무기획관, 김상협 전 녹색성장기획관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하나같이 청와대 재직 시절 홍보와 민정 라인에 근무했던 인사들이다. 현재로선 이들은 이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는 인사들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타 세력으로 옮겨타기엔 ‘MB 측근’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짙다.

 

그렇다면 MB 진영의 보수층 자극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새로운 보수를 기치로 들고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MB를 두둔하는 순간, 선거는 물 건너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보좌관 출신 인사도 “퇴임 후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에서 테니스를 치는 등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모습에 대중이 과연 ‘정치인 MB’를 지지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런 면에서 이 전 대통령의 현실정치 복귀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에 가깝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우리 정치 역사상 퇴임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재기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더군다나 MB는 정치적 기반도 없고 엄밀히 말하면 정통 보수가 아닌 분”이라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선 안 될 사법 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은 이번 사건을 ‘보수 탄압’이 아닌 ‘개인 비리’로 몰고 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권 입장에선 여론의 동향을 면밀하게 살펴본 뒤 이번 사건을 ‘개인 비리’로 몰고 갈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 나머지 3, 4, 5번째 변수는 '향후 정국에 영향 미칠 MB發 '5대 변수' (下)' 편에서 이어집니다. 

 

 

​[연관기사] 향후 정국에 영향 미칠 MB發 '5대 변수' (上) - 핵심 측근들은 왜 연이어 MB에 등을 돌리는 것일까

​​[연관기사] 향후 정국에 영향 미칠 MB發 '5대 변수'​ (下) - 측근 관리 실패한 MB,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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