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10시와 2시 방향 오락가락 말고 12시 방향으로 나가야”
  • 최예린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3 10:25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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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압박 유지, 대화채널 관리’ 주문한 위성락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높다. 2011년 이후 대화다운 대화가 없던 남북관계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를 계기로 급격한 해빙 무드를 맞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남북 교류이기에 국민 관심도 뜨겁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체제가 다시 가동되는 것은 아닌지,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낙관적인 기대도 많다.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1월17일 서울대 객원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외교부 북미국장과 6자회담 수석대표, 주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평창 미니 6자회담, 의미 없을 것”

 

평창을 둘러싸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다.

 

“너무 기대가 높은 것이 부담스럽다. 그동안 없다가 오랜만에 남북 채널이 생긴 건 유의미하다. 그러나 여기서 어디로 갈지는 미지수다. 너무 큰 기대는 피하는 게 좋다.”

 

 

평창 ‘미니 6자회담’에 대한 기대도 있다.

 

“없을 거다.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 어디에 잠깐 서서 약식으로 할 수도 있지만 무슨 의미가 있나. 북한은 비핵화 부인하고 6자회담 죽었다고 하는데, 6개국 모여서 차 마셔도 의미는 없다. 이벤트성일 뿐이다.”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뜻인가.

 

“그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험로다. 비핵화 대화로 가려면 미·북 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접점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남북이 평창에서 좋은 분위기를 형성해도 미·북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한·미 공조와 남북대화를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데 그게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북한은 신년사만 봐도 한·미 공조를 끊으라고 말한다. 민족끼리 해결하자, 외세의 적대시 정책을 따르지 말라, 외세와 야합하지 말라는 거다. 북한은 한·미 공조를 분명히 견제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을 따라가면 한·미 공조가 안 되고, 한·미 공조를 너무 따라가면 남북대화가 진전 안 된다는 게 딜레마다.”

 

 

북·미 대화는 어렵다는 것인가.

 

“지금부터 예단하고 싶지 않지만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미·북의 대결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은 지금 남북대화를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은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대외적 언술과 속내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미국은 남북 간에 일정한 소통 자체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우려한다. 트럼프가 밝혔듯 미국은 강력한 제재 압박 덕분에 북한이 대화에 응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최대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미국 내의 흐름을 잘 보고, 그에 맞춰 한·미 공조가 어긋나지 않는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물론 북한이 그러한 제재 압박에 반발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쉽지 않은 것이다.”

 

 

대화에 응한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

 

“(북한은) 핵미사일 역량을 완성한 후 그 이후의 게임 플레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북한은 일단 나라를 세웠으니 나라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외부 여건이 극도로 대결적인 것은 피해야 한다. 마침 또 한국의 새 정부가 진보 성향이고 대북 교류협력에 전향적이다. 먼저 한국을 끌어당겨 놓는 것이 자기에게 더 넓은 활동공간을 준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한·미 간에 균열을 초래하거나 남쪽 내부의 갈등을 야기하는 등의 효과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한이 더 높은 수준의 협상에 응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북한은 협상을 의도하고 있다. 미국에 북한의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는 것은 다 북한식 협상이다. 지금은 협상 안 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북한식 협상을 하려는 것이다. 본토 타격 능력을 확실히 보여주고 자기들 역량이 이만큼 되면 북한이 원하는 방향의 담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트럼프에게 이렇게 핵미사일 역량을 과시하는 것이다.”

 

 

“北, 담판으로 안보 구도 바꾸려는 의도”

 

북·미 담판에서 북한이 얻으려는 게 무엇이라고 보나.

 

“한반도의 안보 구도를 바꾸려는 것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안보 구도는 이렇다. 미국이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군사력, 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피폐해 있고 포위돼 있다. 이 구도를 바꿔서 포위망을 빠져나가야 한다. 이를 바꾸려면 핵무기가 필요하다. 이 무기를 가지고 미국을 겨냥해서 담판한다. 한마디로 적대시 정책의 철폐를 원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해야 하고, 미국이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전략자산을 운용하지 않아야 하고, 항모·잠수함·항공기·핵이 이 일대에서 다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불가침조약, 평화협정, 수교, 그에 대한 국제적 보장, 한·미 동맹 파기까지 원하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한반도 안보 구도를 바꾼 게 된다.”

 

 

그런 담판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나.

 

“북한류의 담판이 성사될 가능성은 작다. 미국이 그것을 용인할 가능성은 없다. 물론 중·러는 미군 세력이 나가니 좋아할 것이다. 북한이 지금 그 길을 향해 가기 때문에 긴장과 대결이 고조될 거라 보는 것이다.”

 

 

북한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인가.

 

“한국이 국제 공조를 버리고 움직이기 쉽지 않아서다. 버리고 움직인다면 남북은 진전하지만 그렇게 진전된 남북이 다른 차원에서 선순환하긴 어렵다. 남북관계 진전은 미·북 대화, 비핵화 협상과는 다른 이슈다. 남북이 아무리 잘돼도 어렵다. 국제 공조가 끊어지면 미국은 등 돌리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미·북 대립은 심화되고 남북관계만 진전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2011년 9월22일 베이징 중국 외교부에서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특별대표와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北 비핵화 불가능하지 않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작아졌다.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헌법에도 쓰고 비핵화 협상 안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해야 한다. 장기간으로 북한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북한 같은 나라가 세계를 일정기간 동안 방해하고 복잡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 국가가 되고 안전보장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거부했는데 협상장으로 가는 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적어도, 비핵화 자체에 대한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서로 뭐하러 만나는지는 알아야 한다. 지금 그게 없다.”

 

 

그 목표를 공유할 수 있게 북한을 끌어내는 게 가능한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압박을 놓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압박은 유지하고 대화를 섞어서 긴 게임을 잘 운영해야 한다. 급박한 대응보단 점진적 국제 공조로 죄어가고 협상으로 끌어내고 제재 압박과 대화 협상을 배합해야 한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다. 압박은 가하면서 충돌까진 가지 않아야 하는 딜레마적 상황이다. 한국은 압박은 유지하면서 대화채널이라는 밸브를 통해 상황이 폭발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2012년 북·미) 2·29 합의 파기로 실망한 오바마 정부와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대화경로를 소홀히 했다. 결국 경로가 없어졌다. 그 공백을 치고 들어온 게 중국의 쌍중단(북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상 병행)이다. 지금은 이게 대화로 가는 유일한 길처럼 돼 있다. 우리가 이게 싫다면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한국이 경로를 제시해도 미국 동력 못 받으면 의미 없지 않나.

 

“그래서 미국과 깊이 있는 공조를 해야 한다. 비핵화에선 우리가 미국과 딱 붙어 있지 않으면 우리 값은 떨어진다. 우리 혼자 제의하는 건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2·29 합의가 왜 가능했나. 우리가 미국을 붙들고 있었고 한·미가 완벽히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외교를 많이 얘기하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오히려 한·미 공조가 공고해야 한다. 결국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하는 거다.” 

 

 

한·미 공조가 강해져야 한국이 움직일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인가.

 

“미국과 우리 사이에 깊은 신뢰가 있을 때 나중에 북한과의 사이에서 우리가 뭘 제안해도 동력을 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과 북한 둘이 차를 마시러 나가도 미국이 괜찮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공조를 강화하면 북한이 반발한다. 그러니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난 수개월 동안 한·미 공조에 대한 작업이 이뤄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일본은 그걸 했다.”

 

 

지금의 한·미 공조 수준은 어떻다고 보는가.

 

“괜찮다. 그러나 충분치 않다. 지금처럼 미묘한 국면을 헤쳐가려면 더 강화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잘해 왔다. 새 정부는 유연하게 국제 공조와 대북 대화를 동시에 강조하고 사드 같은 미국의 주문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대미 공조와 남북 교류 협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오락가락했다고 비칠 수 있다. 말하자면 10시 방향과 2시 방향을 왔다 갔다 했다. 그보다는 그 사이의 12시 방향을 하나 정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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