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록, 더 이상 권력의 도구로 사용돼선 안 된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6 17:27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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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 기록 정상화’ 과제 떠안은 이소연 국가기록원장

 

지난해 공개모집 절차를 거쳐 민간인 최초로 국가기록원 수장에 오르기 전까지,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기록학계에서 누구보다 국가기록원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던 인물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탄핵 국면에서 벌어진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기록물 지정 논란까지, 이 원장은 중요한 시기마다 권력에 휘청대던 국가기록원 태도에 때마다 뼈아픈 일침을 가해왔다.

 

 이 원장이 국가기록원에 던져 온 머리 아픈 과제들이 이제 온전히 그의 앞에 쌓이게 됐다. 1월2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기록정보센터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진행한 이 원장은 변함없이 현재 국가기록원을 향한 문제의식들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지난해 11월29일 취임 후 이제 갓 두 달이 지났지만, 국가기록원은 기록물관리에 소홀했던 주요 공공기관들에 대한 실태점검과 법 개정 작업을 실행중이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강단에서 사서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 원장이 이처럼 기록학계 가장 활발한 ‘실천가’가 된 계기는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물 유출 고발 사건이었다. 당시 국가기록원이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으로 외부에 빼돌린 혐의로 참여정부 때 비서관 등을 검찰에 고발한 일이었다. 최근 국가기록원 혁신TF팀에 의해, 당시 고발이 이명박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란 사실을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가기록원은 침묵했고 기록학계는 우왕좌왕했다. 이 원장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면 곧장 나서서 말해야 한다는 걸 그때 결심했다”며 “또다시 비슷한 일들이 발생했을 때, 국가기록원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중심을 잘 잡도록 하는 게 내 임기 중 가장 큰 목표”라고 전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 © 시사저널 임준선

 

국가기록원 역사상 첫 민간인 출신 원장이다.

 

“1970년대 정부 기록 보존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04년 국가기록원이라는 이름으로 개편됐다. 내가 취임하기 전까진 원장이 모두 행정직 출신이었다. 지난 8월1일 원장 모집 공고가 났고 2주간 서류 모집을 했다. 총 17명 지원했다고 한다. 면접도 하고 하루 꼬박 진행된 역량평가도 거쳤다. 지원부터 취임까지 넉 달이 걸렸다.”

 

 

2008년 봉하마을 유출 사건이 개인적으로 큰 의미였던 걸로 읽힌다.

 

“​보도가 나가면 ‘새 원장이 특정 정권에 편향적이다’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그럼에도 당시 사건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참여정부 당시 국가기록원은 철저한 보호를 약속하며 참여정부에 적극적인 기록물 생성을 요구했다. 참여정부는 많은 기록물을 성실히 생성해 국가기록원에 넘겼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은 이후 이 기록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뜻에 휘둘려 도구로 활용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내 연구만 잘하면 되지’했던 생각이 크게 변화했다. 그리고 이후 기록학계 굵직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적극 목소리를 내왔다. 그게 2016년 기록학회장에 오르고 이번에 기록원장이 되는 데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권력에 대한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독립성이란 게 곧 고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금 국가기록원이 행정안전부 소속인데 이게 대통령 직속으로 간다고, 행정부 바깥으로 간다고 독립성이 생길까. 그렇지 않다. 독립성은 조직도표상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내용적으로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여러 규범과 선례들을 차곡차곡 마련해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것들이 내 다음 원장에게 부담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내 임기 동안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기록 남겨봤자 꼬투리 잡힐 거란 생각 많아”

 

수자원공사의 4대강 관련 문건 무단 폐기 문제도 심각한 일이다. 현재 어떻게 조사가 이뤄지고 있나.

 

“​현재 우리 직원들이 4톤에 달하는 문서더미를 뒤져서, 확인이 더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 12박스 정도로 추렸다. 이후 문서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 수자원공사에 넘긴 상태다. 수자원공사는 이제 목록에 나와 있는 기록물 원본을 찾아 우리에게 가져와야 한다. 기록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아 시간이 꽤 걸리고 있다. 이건 의도를 갖고 폐기했어도 큰일, 모르고 했어도 정말 큰일인 문제다.”​

 

 

이 문제를 시끄럽게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공공기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뤄내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기관 내 기록 관리를 담당한 전문요원에게만 처벌이 가해지고 끝날까 우려가 된다. 이들은 사실상 말단일 뿐이고 업무상 여러 가지 한계를 가졌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이 그동안 기록관리에 무신경 했던 높은 분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수조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의 기록관리도 아주 부실했다.

 

“​전반적으로 기관 내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자체가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당시 책임을 따지기 위한 근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 심각성에서 제정된 거다. 그 상황이 2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아직도 공무원들 중 상당수가 민감할 수 있는 업무를 할 땐 기록을 괜히 남겨봤자 꼬투리를 잡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기관마다 기록관리 중요성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까.

 

“​기록관리 시작은 기록관리 전문 인력 배치부터 시작이다. 각 기관에 적어도 한명 기록관리만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거다. 2005년에 중앙부처를 시작으로 광역 기초단체 등에 인력을 배치했고 2~3년 전부터 공사·공단에도 배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록관리가 전에 없던 업무니까, 조직에선 그저 하나 더 생긴 잉여인력으로 생각해, 차량 배치와 같은 잡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우리가 조사한 12개 공사·공단 중 한 군데는 인력 배치가 아예 안 돼 있기도 했다. 기록관리는 모든 구성원이 다 자기 업무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는 건데, 피하고 싶은 부가적 업무라는 인식이 아직까진 지배적인 것 같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 © 시사저널 임준선

 

“기록원 블랙리스트 있단 얘기 구전으로 돌았다”

 

기록물 관련해서 세월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때문에 국민들의 기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해수부, 해경 등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기관들이 사실을 은폐하기 바빴고 황급히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이 옮겨지거나 무단 폐기됐다는 의혹도 있다. 당시 국가기록원에 갖고 있는 원망 중 하나가 사고 직후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기록물을 일절 처분 및 폐기를 금한다’는 동결명령을 내려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거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기록법 개정하면서 추후 기록 은폐가 우려되는 사고 등에 대해선 동결하도록 하는 규정을 명시하려 한다.”​

 

 

탄핵 정국에서 세월호 관련 기록물 등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기록물 담당 권한이 문제였다. 기록법의 빈틈을 보여준 사건이었는데.

 

“​대통령기록물은 지정한 사람이 해제도 할 수 있게 돼 있다. 권한은 대통령에게만 주어진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해제권한을 발휘할 사람이 없어졌을 때 사실 이 규정을 국가기록원이 즉각 보완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땐 논란이 될 만할 것들을 그저 막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6년 탄핵 사태 맞았고, 법 규정이 없어 우왕좌왕하게 됐다. 당시 국가기록원이 황 대행에게 해당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결정한 근거 조항은 ‘대통령 기록물 생산자는 당선자,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거였다. 이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 기록물 지정도 권한대행이 가능하다고 해석한 것이다. 학회에선 이 해석이 무리가 있으니 법제처 유권해석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대로 강행했다.”​

 

 

지난 정권에서 국가기록원 내 블랙리스트가 있었단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야당에선 실체 없는 얘기라는 지적도 있는데.

 

“​고작 스무 명 고른 게 무슨 블랙리스트냐는 주장을 하며 실체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국가기록학 분야 전문가들 중 스무 명은 전체 70%에 해당되는 비중이다. 더 밝혀야겠지만, 블랙리스트 존재는 그동안 구전으로 많이 떠돌았다. ‘출력물이 아닌 엑셀 형태로 있다’, ‘누구누구 들어가 있더라’ 등 많은 얘기들이 있었다.”​

 

 

학회에서 시원하게 비판해온 국가기록원 내 과제들을 모두 이제 원장님이 떠안게 된 것 같다.

 

“​지원 후 발령까지 넉 달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고 한 건가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혼자 할 거 아니니까 괜찮아’, ‘이 일은 내 임기가 끝나고도 계속될 일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돼’라는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 한다. 한두 명이 1~2년 해서 해결될 일이면 아무나 해도 되는 일 아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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