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자친구를 때려죽여도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9 17:10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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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란에 지난 1월12일 이런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여자친구를 때려죽여도 집행유예,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청원의 개요는 이러하다. 여자친구를 폭행해 살해한 남자에게 법원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 범행’으로 보이며, ‘피해자 유족 모두 피고인을 용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는 등 피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다했다’는 이유였단다. 분노한 한 여성이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지만, 1월25일 새벽 청원에 서명한 사람 수는 2000명을 겨우 넘긴 상태다. 1월20일 올라온 ‘나경원 의원 평창올림픽 위원직을 파면시켜주세요’ 청원이 불과 며칠 만에 20만 명을 훌쩍 넘긴 것에 비하니 무척 안타깝다. 그래서 쓴다.

 

청와대 국민청원란의 ‘여자친구를 때려죽여도 집행유예,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청원(위)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을 파면해 달라는 청원 ©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최근 법원이 ‘블랙리스트’라고 표기된 검정 글자는 없지만 뜻으로는 블랙리스트를 만든 문제와, 원세훈 판결을 앞두고 청와대와 감정을 주고받진 않았지만(교감) 정보를 주고받기는 한 문제를 두고, 법원을 향한 국민적 분노가 뜨겁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저 사건은 법원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판결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블랙리스트건 청와대와의 교감이건 젠더폭력에 대한 무지이건, 그 배경이 되는 가치관은 강자와 약자를 나누고 강자의 논리와 의지를 정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질투에 눈먼’ 사내가 여인을 죽인 것은 이해될 수 있고 심지어 ‘우발적’으로까지 보이는 재판관의 내면풍경 속에 앉은 그 사람과, 동료법관을 색깔로 나누고 분류하는 펜을 휘두른 그 법관의 내면에 숨은 사람은 동일 인물이다. 심정적으로 강자의 편에 서 있는 사람. 그 강자가 때로 박근혜와 우병우의 청와대일 수도, ‘질투에 눈멀어 불쌍해진 그러나 불쌍해서는 안 되는’ 남자일 수도 있다. 배척당하고 딱지가 붙는 동료나 살해당하는 여성의 내면과 그 사람은 ‘교감’하지 않는다. 가정폭력 또는 데이트폭력의 피해자가 남자일 때는 그 ‘우발성’이라든가 ‘정당방위’ 같은 것이 받아들여진 사례가 별로 없다. 매우 미세한 단위에서 작동하는 성차별이 법관의 판결에 무의식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안타깝다. 살해당한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청원자들만일까.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들도 ‘탄원서’라는 것을 썼다고 한다. ‘선처를 바란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상투적 탄원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경로를 대강 짐작하거니와, 피해자의 죽음은 이렇게 해서 두 번 아무런 의미 없는 죽음이 되어버린다. 가족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다음 기회에 살피기로 하고, 법원이 사람을 ‘때려죽이는 폭력’조차도 ‘질투’라는 핑계가 있으면 ‘남자에 한해’ 쉽사리 ‘선처’한다는 사실에만 주목한다.

 

청원 목표 달성과 관계없이, 청원이 청와대 사이트에 올라갔다는 그 의미를, 그리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판결이 나오고, 이런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지 대책을 강구해 달라’는 청원 서명자들의 간곡한 요청을 사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법원이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진리는 변함없다. 이제는 정말로 진리에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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