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쓰다 날 샌다”…스타트업 발목 잡는 정부 지원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0 14:35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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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쌓기’식 행정에 정부 지원 포기, 민간 지원으로 눈 돌려

 

최근 성장궤도에 올라 있는 스타트업 A기업은 2014년 꿈을 품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대학 선·후배가 사업 아이템 하나만 보고 의기투합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사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현장을 찾아 업체들을 설득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할 곳이 변변치 않았던 이 기업은 정부에서 사무실을 제공해 준다는 얘기를 듣고 지원을 신청했다. 그 결과, A기업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2016년 정부 지원을 받게 됐다. 서울의 한 창업센터에서 다른 스타트업 기업들과 함께 무상으로 사무실을 쓸 기회가 생긴 것이다. 넓진 않았지만 모여서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었다. 여기에 정부로부터 시드머니 1000만원도 지원받게 됐다. 차별화된 아이템을 부각시킬 수 있다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라 여겼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 글로벌 스타트업 센터 © 시사저널 최준필

 

‘초짜’ 지원한다며 문서는 갖추라는 정부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내고 설명해 가는 단계에서부터 각종 변수가 나타났다. 계속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증빙서류를 매달 작성해 제출해야만 했다. 기관은 이름조차 생소한 ‘내역산출서’ ‘비교견적서’ ‘업무진행보고서’를 써내라고 했다. 업무진행보고서 등에 최신 트렌드에 맞춘 생소한 영역의 업무를 포함하라는 간섭도 있었다. 자신들의 사업계획조차 추진하기 버거운 상태에서 문서 부담까지 가중된 셈이다. 심지어 정부사업 대행업체의 가이드를 통과하더라도 보완을 요구하면 다시 처음부터 문서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A기업은 이듬해 결국 정부 지원을 포기했다. 어렵사리 재심사를 통과했지만 더 많은 업체를 지원하려는 센터 측으로부터 더 열악한 공간으로 이동할 것을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란 독특한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보유한 초기 창업 기업을 말한다. 경력자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경험이 많지 않은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실무를 일부 경험한 뒤 자기 사업을 펼치겠다는 포부 하나로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학생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뭉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스타트업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한국도 뒤늦게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의 핵심은 크게 사무 공간과 시드머니 지원으로 나뉜다. 대체로 초기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요소들이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사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초기 기업들엔 꼭 필요한 지원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 지원을 받았던 기업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상당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서류 절차가 너무 번거롭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그들 또한 정부에서 세금을 지원하는 만큼 제대로 일하는지 확인할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실제로 정부 지원 사업에서 요구하는 문서량은 상당했다. 사업 내용을 과도할 정도로 세밀하게 기록해야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서류작업을 하는 인원을 새로 뽑아야 할 정도였다. 한 스타트업의 개발자는 “초기에 사무 공간과 자금을 지원받으니까 좋긴 좋았다. 근데 서류 절차부터 해야 할 게 너무 많다”며 “공정하고 투명하게 지원해야 하는 건 맞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정부 문서 양식을 갖춰 써내는 일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원 사업 실무자로부터 각종 간섭을 받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작게는 사업 진행상황을 수시로 검사하는 것에서부터 각종 과제 등으로 초기 기업의 진을 빼놓았다. 실무자가 과업 지시서를 보고 직접 수정을 요구하는 일도 많았다. 스타트업이 오롯이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 지원 사업이 반대로 개발 외에도 신경 써야 하는 일을 만드는 이율배반적 모순을 만든 셈이다.

 

지원 또한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가령 공간 지원 사업의 규모는 한정돼 있는데 지원을 받으려는 기업들은 넘쳐난다. 때문에 대부분 1년 단위로 재심사를 거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1년 만에 자체적으로 사무 공간을 확보하는 궤도까지 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창업 전문가인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대체로 3~4년간 사무 공간·시드머니·마케팅 등 순차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초기 기업에 필수적인 사무 공간을 놓고 1년마다 재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것은 정부 지원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1월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업타운 코워킹스페이스에서 홍콩에서 온 벤처투자자 앨빈 램이 스타트업 청년 창업가들 앞에서 강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민간 지원 확대…최소 비용 내고 간섭 최소화

 

다행히도 최근 민간 영역에서 정부 지원 사업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의 지원 사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업타운 서울’이다. 70여 개 국가에 다리미를 수출하는 은성전기의 배범삼 부회장은 청년들에게 초기 창업부터 판로 개척까지 지원하겠다며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사옥 3개 층에 스타트업 지원 공간을 만들었다. 일반 사무실 임대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회의 공간, 교육 공간까지 지원됐다.

 

업타운 서울의 지원 사업은 단순히 공간 지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혁신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기업 성장에 순차적으로 필요한 창업 전문가·벤처투자자·해외 마케팅 전문가 등으로부터 실시간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인적지원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또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나 기업 홍보 등을 돕고 해외투자 유치도 지원할 계획이다. 김성은 업타운 서울 대표는 “올해 3월 중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 10여 개 팀을 선발해 투자환경이 우호적인 홍콩을 찾아 투자 유치를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일회적인 지원이 아니라 기업 성장 사이클에 따라 꾸준히 순차적으로 지원해 스타트업들이 일단 도전하면 성공한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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