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 오명’ 뒤에 의문사 있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1 15:46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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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살 의심되는 사망 사건, 자살로 처리하면서 자살률 높인다는 지적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정말 심각하다. 지난 2005년부터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1년에 1만3092명이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한 달로 따지면 1091명, 하루 평균 36명이다. 2위 일본과는 거의 두 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전쟁을 하지 않고도 매년 1개 사단 규모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자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살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자살의 문제만 부각했지 정작 자살을 막기 위한 제도적 대책 마련에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 또 자살을 기도한 사람에 대한 상담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한 번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이 재차 자살을 기도하면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자살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녀 4명이 동반자살을 위해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서 만났다. 이 중 2명은 마음이 변해 자살을 포기했고, 송아무개씨(남·31)와 김아무개씨(여·29)는 낙산대교 아래로 투신했다. 이들이 투신한 것으로 보이는 지점에서는 남성과 여성용 슬리퍼 2켤레가 발견됐다. 또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수첩이 놓여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119구조대는 낙산대교 아래를 수색해 남성의 시신을 인양했다. 하지만 함께 투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119대원과 특수구조단, 민간 수중잠수사, 헬기까지 투입했지만 아직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살아 있다면 보여야 하는 생활반응(휴대전화 사용, 인터넷 사용, 신용카드 사용 등)도 없다. 김씨 가족은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자살 시도를 포기했던 남녀 2명이 재차 자살을 기도해 이 중 남성은 끝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상담과 치료가 이뤄졌다면 두 번에 걸친 자살 시도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종 상태인 김씨 가족을 도와 온 나주봉 전국미아·실종자가족찾기시민의모임 대표는 “살겠다고 자살 기도 직전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이 다시 자살을 시도한 것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며 “자살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리 시스템이 없으면 이런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정부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 발표

 

문재인 정부는 최근 ‘자살공화국 오명’을 벗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인구 10만 명당 25.6명인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도 발표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자살자 약 7만 명에 대한 전수조사도 실시한다.

 

훈련된 조사요원들이 경찰청을 방문, 과거 수사기록을 통해 자살 원인 등을 조사해 빅데이터를 만든다. 쉽게 말해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에 이른 과정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1990년대 심리적 부검을 대대적으로 실시해 자살률을 50% 줄이는 획기적 성과를 거뒀다.

 

자살 위험신호를 조기에 인지하는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도 100만 명 양성하고, 자살 시도자에 대한 사후관리도 확대한다.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는 가족이나 친구 또는 이웃이 자살 위험신호를 보냈을 때 빨리 인지해 전문가한테 연계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자살 예방정책이 늦은 것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과거 정부는) 정책적 의지가 약했고 예산도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자살이 많은 원인 중 하나가 ‘의문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살 혐의점이 있는데도 수사기관이 ‘자살’로 처리하면서 사망원인을 놓고 논란이 거듭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 의문사 중 상당수가 이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경계초소(JSA)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사건은 대표적 군 의문사 중 하나다. 당시 김 중위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결론짓고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다. 최초 현장 감식이 있기 전에 군 내부에서 자살로 보고됐는가 하면, 미군은 당일 현장을 보존하기는커녕 오히려 물걸레로 청소해 현장을 훼손했다.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타살의 단서가 될 수 있었던 증거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등 오류투성이였다.

 

김 중위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취했다는 부자연스러운 자세, 김 중위가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에서 화약흔이 나온 점 등은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김 중위의 손목시계가 파손되는 등 그가 격투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서들도 발견됐다.

 

2009년 군의문사위는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총기 격발 실험을 통해 김 중위가 스스로 격발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타살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또 ‘진상규명 불능’이 됐다. 군이 쉽게 자살로 결론 내리고 사건 현장이 훼손되면서 사망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김 중위의 유족은 여전히 ‘타살’을 주장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 사진=연합뉴스

19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 육군 7사단에서 사망한 허원근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허 일병은 7사단 GOP 철책 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군 헌병대는 자살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자살자가 머리와 가슴 등에 총 세 발을 쏠 수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남았고 자살 동기도 불명확했다.

 

허 일병 유족은 군의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1년 6월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냈고, 1기 군의문사위는 ‘타살’로 결론을 내렸다. 헌병대 수사 과정에서 부대 간부들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망 현장과 시간, 중대원들의 알리바이 등을 조직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방부는 군의문사위가 사건 결과를 날조했다며 군 검찰과 헌병대 등으로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특조단)을 꾸렸다. 두 달 후 특조단은 군의문사위와는 정반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2기 군의문사위는 다시 허 일병 사건을 조사했고, 2004년 6월 은폐 주도 세력이나 실탄 발사 장면을 목격한 결정적 증인을 찾지 못한 채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내렸으나 “타살은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김훈 중위 사건과 비슷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허 일병 유족은 2010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타살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자살’로 판결하면서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2015년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인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당시 군 수사기관 초동수사의 일부 책임을 물어 3억원의 배상 판결을 확정했다. 결국 김훈 중위와 허원근 일병 사건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고 말았다.

 

경기도 벽제 1군단 산하 보급대대 창고에는 군에서 의문사한 장병들의 유골이 보관돼 있다. 유족들이 군 수사기관의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골 인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월9일 강원도 홍천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 예하 13여단에서는 김찬욱 상병이 목맨 시신으로 발견됐다. 군은 김 상병이 전형적인 목맴 사망 현상을 보이는 점에 비춰볼 때 타인에 의해 살해당한 뒤 위장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스로 목매어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유족 측은 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살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점, 제대를 얼마 남겨 놓지 않았고, 평소 군 생활도 모범적으로 했던 점 등을 들어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다. 화장된 유골 인수를 거부해 현재 강원도 횡성의 육군 임시 봉안소에 4년째 안치돼 있다.

 

한 예비역 군 수사관은 “군은 거대한 조직체다. 군 조직을 벗어나면 국가를 생각하지만 군 안에서는 철저하게 ‘조직 논리’가 작동한다. 사망 사건이 터지면 지휘관을 포함한 간부들이 줄줄이 문책을 당해야 하는데 이런 것도 의문사가 많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2010년 5월12일 1시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장외공단 도로변에 주차된 카렌스 승용차에서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1명과 여성 4명이 연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 사진=연합뉴스

 

자살로 처리된 사건들 명확히 따져봐야

 

타살로 의심되는데도 자살로 처리된 ‘의문사’는 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06년 7월21일 오전 0시30분쯤 파주시 교하읍의 한 아파트 10층에서 24살 정경아씨가 아래로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씨는 직장동료 등 3명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이 중 한 명의 집에 왔다가 복도 창문을 통해 아래로 떨어졌다. 당시 경찰은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해 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장기손상에 의한 사망으로 보이나, 사망 전 가해를 당했을 것으로 의심할 만한 흔적도 인정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자살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정황들이 여럿 발견됐다. 정씨의 어머니는 경찰청·청와대·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수사 재개를 요구해 왔다. 경찰은 유족들의 수사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2011년 8월 재수사에 나섰으나 결국 무혐의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2010년 7월29일 충북 영동군의 한 유료 낚시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서울 강남경찰서 이용준 형사(27)의 사망 사건도 의문사로 남아 있다. 이 형사의 사망 전후 행적과 몸에 있는 상처 등은 자살보다는 타살에 가까웠다. 유족들은 포털사이트 등에서 재수사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며 자살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2012년 12월 검찰은 “이 형사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단, 타살 증거도 없다”면서 ‘미제 사건’으로 재분류했다. 자살도 타살도 아닌 이상한 죽음이 된 것이다.

 

강력반 형사로 잔뼈가 굵은 전직 경찰 간부는 “경찰은 타살이 명확하지 않은 변사 사건 등은 ‘사건화’를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타살일 경우 수사본부를 꾸려야 하고, 또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이 제때 되지 않으면 경찰서 평가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타살 의심자가 간혹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자살률을 줄이려는 정부의 대책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전수조사 과정에서 타살 의심 사건을 ‘자살’로 분류해 처리했는지도 명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만 타살이 자살로 둔갑되는 억울한 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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