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도 지워도 계속 올라오는 사이버성범죄와의 싸움
  • 박소정 인턴기자 (ouo11111@nate.com)
  • 승인 2018.02.0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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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성폭력 대응 시민단체들 "국가가 못하는 일 우리가 한다"

 

지난해 12월, 한양대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이 지인 16명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음란물과 합성해 소지하고 있다가 발각됐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 A씨는 1월24일 시사저널과 만나 “피해를 인지했지만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고 어느 단체에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 몰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 B씨 역시 “피해 대응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국가 차원의 기관이 없었다”며 사이버성폭력 피해 직후 참담했던 심정을 밝혔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와 같은 단체가 필요 없어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의 필요성이 사라질 때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는, 다소 모순된 명제를 목표로 삼는 이들이 있다. 2015년10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 ‘디지털성폭력아웃(DSO)’과 지난해 초 설립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가 그들이다. DSO는 국내 최대 디지털 성폭력 사이트 소라넷 폐쇄 운동을 위해 ‘소라넷아웃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디지털 성폭력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한사성은 사이버공간이 남성화돼 있고 여성혐오가 유희돼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기존에 잘 알려진 촬영형성폭력 뿐만 아니라 사이버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들 단체는 모두 온라인 및 소셜네트워크(SNS) 상의 성폭력 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 및 법률 상담 등 적극적 피해 지원에 나선다. 관련 입법 추진을 위한 제도적·정책적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센터 직원들이 피해자 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소정

 

사이버공간에서 사진합성·채팅 등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뜻하는 사이버성폭력은 인터넷 및 SNS 공간의 일상화와 함께 발생·확산되기 시작했다. ‘나우누리’ 등 인터넷 포털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사이버공간 속 성폭력 위험은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한국 성폭력상담소는 2001년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사이버성폭력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공론화를 시도한 바 있다.

 

매년 그 피해 건수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카메라 촬영‧통신매체이용음란 등 사이버성폭력이 전체 성폭력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4.4%에서 2014년 28.2%로 9년 새 6배 이상 증가했다. 앞서 언급한 한양대 사건과 같이 지인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합성은 물론, 몰카‧리벤지포르노 등이 대표적 사이버성폭력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처가 발생 건수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이버 상 성폭력이 발생할 경우 그 파급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한번 피해사례가 발생하면 해당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유통되며 2차, 3차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마치 ‘디지털 지문’처럼 피해 콘텐츠를 완전히 삭제해내기 어렵기도 하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28)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사이버성폭력은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전파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더 위험하다”며 “해당 콘텐츠를 삭제한 뒤에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고, 피해 규모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기도 불가능하다”며 사이버성폭력 피해 구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사이버성폭력 피해 대응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미흡한 실정이란 게 관련 단체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사이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지난해 9월26일에는 국무조정실과 14개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사이버성폭력피해자 지원 시범 사업을 벌였다. 당시 서울시는 이 시범사업을 모델로 여성가족부가 전국 단위 사업으로 확대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피해자 지원 서비스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장현경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 사무관은 “사이버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종합서비스를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에는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사이버성폭력의 피해자들은 국가를 대신할 민간 시민단체에 주로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활동가 개개인의 희생이 없으면 단체 존립이 불가능"

 

이들 시민단체 직원들의 주요 업무는 피해자 상담과 피해 영상 삭제를 돕는 것이다. 기자가 방문한 사이에도 한사성 사무실에서는 끊임없이 전화가 울렸다. 피해 구제는 1차적으로 전화 상담을 통해 사건 경위파악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상담 내용을 토대로 삭제·수사 동행 등의 실질적 지원이 진행된다.

 

지속적인 피해 사례 모니터링도 주 업무다. 한사성 사무실의 모니터링 컴퓨터 화면 속엔 포르노 사이트 등 살펴야 할 230여 곳의 홈페이지 주소 목록이 빼곡히 채워진 엑셀 파일이 있었다. 모니터링은 업무량도 방대하지만, 그보다 이 업무로 인한 활동가의 정신적 피해가 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한 DSO 활동가는 모니터링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 길을 걷다가 돌연 실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를 할 당시는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왔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이버성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피해자가 기댈 곳은 제한적이다. 때문에 한사성, DSO와 같은 사이버성폭력 피해지원 단체의 직원들은 늘 격무에 시달린다. 오전 9시반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기 일쑤다. 일반 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월급이기에 일부 팀원은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고 했다. 최소생계비 유지를 위해서였다. DSO 활동가 하아무개(21)씨는 “후원금을 받고 외부 사업비를 따내기도 하지만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활동가들 대부분이 20~30대”라며 “개개인의 희생이 없으면 단체의 존립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민간 영역에 의존하는 사이버성폭력 피해 대책

 

이처럼 사이버성폭력 피해에 대한 지원활동은 오롯이 개인활동가들의 노동력 위에 이뤄지고 있다. 그들이 이토록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써가며 일하는 이유는 뭘까. DSO 활동가 한아무개(27)씨는 “피해자들의 사례를 지원하면서 나 스스로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이버 상의 성폭력에 대한 자정 작용이 자신을 포함한 잠재적 피해자를 사전에 지켜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엿보였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마냥 민간에 맡겨둘 수밖에 없는걸까. 서 대표는 “이런 문제는 국가가 피해자 지원을 주도하고 시민단체는 국가를 감시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을 한다.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구제하는 역할을 민간 차원에서만 전담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부작용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사이버 상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일을 대행해주는 ‘디지털장의사’ 업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기록 삭제를 대행해주는 디지털장의사는 의뢰한 고객을 대신해 촬영물을 확인하고 삭제하는 일을 한다. 일상적인 흔적들도 많지만 주로 불미스러운 기록물들이 그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게 대상물이 다시 노출되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한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장의사업체 ‘포겟미코리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유출 영상을 삭제하는데 드는 비용은, 유포범위에 따라 최소 165만원부터 최대 330만원(1개월 기준)이다.

 

관련 단체 종사자들은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사후 피해 지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피해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서 대표는 “사이버성폭력은 유통을 근절하면 피해를 매우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존 오프라인 환경에서 이뤄지는 성폭력과 다르게 국가의 직접 개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법‧제도적 차원의 개선도 절실하다. 관련 처벌법이 사이버성폭력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 사례가 재유포자에 대한 처벌이다. 현재 재유포자의 경우 성폭력 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받고 있다. 여성변호사회 김현아 변호사는 “성폭력처벌법에 포섭되면 피해자는 국선 변호사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가해자는 성폭력치료강의수강 명령이 가능하지만, 재유포자 사례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라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생기고 가해자를 교화할 수 없는 한계가 생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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