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 향한 불편한 진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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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두 번 울리는 모진 말들에 동참 포기···젠더 피로감 느껴 외면하기도

 

# 직장 여성 A씨는 1년 전부터 악몽을 꾼다. 눈을 감으면 직장 상사와 동료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사는 1년 전 회식에서 “나랑 자고 가자”고 말했다. 술에 취해 반쯤 풀린 눈으로 “여기 가까운데 있는데”라고.

 

한 달이 지난 후 여자 동료들에게 그 날 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내 돌아오는 답은 “그 분이 그럴 리 없어” “네가 잘못들은 거 아니야?”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등이었다. 남자 동료에게 말해도 반응은 비슷했다. “그 정도 가지고” “A씨가 좀 예민한 거 아닌가” “그건 나도 당해봤어.”

 

A씨는 사연을 소셜 커뮤니티에 남길까 고민했다. 요즘 화제라는 해시태그 ‘#미투(me too)’를 달아 피해 사실을 고발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차피 익명으로 혼자 떠들어봤자 그 사람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 인식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

 

2월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피해자 또 울리는 건 ‘네 탓이다’ 반응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too)’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미투’를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여성들을 향한 모욕적인 댓글이 달리는 탓에 피해자들이 또 다른 상처, 즉 ‘2차 피해’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해서다.

 

모바일 익명 커뮤니티에 자신의 성희롱 피해 경험을 소개한 이아무개씨(여.25)는 4시간 만에 게시물을 삭제했다. 자신을 향한 모욕적 댓글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여자가 꼬리친 거 아닌가” “솔직히 좋지 않았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씨는 “이런 반응인데 어떻게 피해자들이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가 있겠나. 다신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소통하는 어플 ‘블라인드’에서 성추행 피해를 고백하는 ‘#MeToo’ 게시판에는 2월6일 오후 2시 기준 1328개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도 미투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4400여개다.

 

 

남성들 “취지는 공감하지만 우리를 가해자로 보는 시선 불편”

 

폭로가 많아진 만큼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생겼다. ‘블라인드’를 이용하는 남아무개씨(남.27)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모든 남자들을 가해자로 보는 시선은 불편하다”면서 “솔직히 익명인데 과장해서 적는 건지 어떻게 확인하나”고 말했다.

 

블라인드의 ‘#MeToo’ 게시판에서는 한때 남자도 성폭력 피해를 폭로해도 되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범죄 피해는 남녀 구분 없이 접근해야 한다”는 댓글이 있던 반면, “가해자인 남성이 피해를 말하는 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미투’가 확산될 수 있는 조건으로 ‘여성이 중심이 될 것’과 ‘피해자에게서 피해 원인을 찾지 말 것’을 꼽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대부분 성 범죄 가해자가 남성인 현실에서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여성 관념이 어떤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남성 피해자도 있지만, 지금은 수많은 여성들이 간신히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성범죄 사건의 대부분은 남성이 가해자라는 통계치가 나왔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 등 강력범죄에서 가해자가 남자인 비율은 4년 연속 98%에 달했다.

 

이상화 양성평등진흥원 교수는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우리 사회는 각본을 짜서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해 원인이 여성에 있는 것처럼 몰고 갔다”면서 “피해 여성의 외모를 부각하거나 행실에 꼬투리 잡는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이런 왜곡된 성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한 사람씩 목소리를 보태는 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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