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을 더욱 분노케 만드는 ‘채용 비리 네트워크’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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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금수저’들의 채용 비리, 단죄 통해 반드시 악순환 끊어야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국민들을 향해 수많은 메시지를 던졌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오랜 기간 남아 있는 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리 사회 뿌리 깊게 만연된 불공정함을 반드시 바로 잡겠다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의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힘을 보태기 위해 지난 대선 몰표를 보내줬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 한 명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듣고 얘기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2010년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공정사회 구현’을 외쳤지만 우리 사회는 지난 8년 간 전혀 정의롭지 않았고 공정하지도 않았다.

 

이 와중에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분야인 공공기관과 금융 공기업에서 발생한 이번 채용 비리는 수십만 명이 넘는 취업준비생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사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 비해 공공기관과 금융 공기업은 안정적이고 주인(오너)이 없는 조직이기에 좀 더 공정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이라고 믿었던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KB금융지주 회장의 처조카 특채 비리나 공공기관에서 학연·지연을 중심으로 채용이 진행되는 특혜 잔치가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 과연 공정한 채용을 하는 곳이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일수록 권력층의 전리품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금융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들이 2월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국민은행 본점 압수수색을 마친 뒤 관련 물품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보이지 않는 손들이 거미줄 네트워크 통해 압력 행사

 

윤후덕 의원, 김태원 의원 자녀의 취업 특혜 의혹 시비가 일었던 게 불과 2년6개월 전이다. 당시에도 수많은 기업의 채용 담당자는 “저런 비리가 있었다니”라는 얘기보다 “어떻게 해서 걸렸지”라는 말을 더 많이 하고 다녔다. 그만큼 대기업과 공기업 등의 채용 시즌에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거미줄 네트워크를 통해 직간접적 압력을 행사하고, 갑자기 나타난 지원자가 모든 선발 과정을 뚫고 올라오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훌륭한 경력이나 우수한 스펙이 아니라 부모 및 관련 인맥의 영향력일 뿐이다. 이미 ‘금수저’로 태어난 이들은 막강한 부모의 전화 한 통이면 그 어렵다는 취업난도 돌파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기업·공공기관·금융 공기업이 해마다 대규모로 채용을 시작하는 3월과 9월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위 말하는 추천 인력이 형성된다. 말이 추천이지 그야말로 ‘빽 있고 힘 있는 자녀들의 리스트’가 정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도 금수저별로 차이가 발생한다. 부모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해서 모두 동일하게 취급 받는 건 아니다. 1차 서류전형 우대를 해주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서류전형부터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합격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이 경우 이들의 학점·영어·자격증·면접 점수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이미 지원했을 때부터 사실상 합격자, 즉 내정자 상태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금수저 채용 비리가 심각한 이유는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

 

필자가 시사저널을 통해 공개한 바 있지만, 예전에 모 기업 채용 과정에서는 한 유력 인사가 자신의 자녀가 면접 과정에서 불합격을 통보를 받자 이에 반발해 직접 강력한 항의를 전달해 왔고, 끝내 불합격 통보를 합격 통보로 바꾸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기업 이외 로펌 및 전략컨설팅 업계는 최종 면접에서 지원자의 집안 배경, 부모 지위 등을 공공연하게 살핀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돌고 있다. 교수 채용도 예외는 아니다. 우수한 연구 성과에 훌륭한 강의 실력을 지녔음에도 강력한 배경을 바탕으로 밀고 들어오는 내정자에게 밀려서 탈락한 지원자들의 항의 및 불만은 관련 게시판 곳곳에 수년 전부터 퍼져나간 상황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남북단일팀을 구성했을 때 20~30대 젊은이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발한 이유도 바로 국내에 관행처럼 굳어진 채용 비리와 무관하지 않다. 땀 흘린 사람보다 강력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공정성을 훼손하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들에게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의 합류는 금수저들의 횡포와 동일선상에서 비춰진 것이다. 지금까지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과정, 불합리한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주장한 정부가 단일팀 구성에서 엇박자 행태를 보이자 젊은 세대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불공정한 채용 비리에 관해 유독 젊은이들이 불만과 항의를 쏟아내는 이유는 채용 비리의 직간접적 피해자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수저들의 채용 비리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이기에 피해 인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정부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채용 비리로 인한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 누가 직접적인 피해자인지는 현실적으로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내정자들은 서류전형 때부터 합격을 사실상 확정하고 지원하기 때문에 이들로 인해 불합격 통보를 받은 이들이 과연 누군지 특정하기 어렵다. 지원자가 구제됐다고 해서 불공정 시비로 인해 탈락된 정신적 상처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인맥’이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 만들어야

 

이번 기회에 정부는 채용 비리에 관한 대규모 전수 조사를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사실 금융 공기업, 공공기관 이상으로 대기업, 대학 교수 채용 등에서 발생되는 채용 비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정자를 정해놓고 모집 공고를 오픈하는 기업과 대학, 내정자를 정해놓고 공개 오디션 등을 받는 공연예술 분야 등의 채용 비리는 사실 지금도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불공정한 합격은 곧바로 또 다른 대가인 금품 수수 등과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에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가장 큰 적폐이자 공정성 훼손의 주범인 채용 비리가 어디까지 퍼져있고 어떻게 고착화되었는지 정밀한 조사와 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채용 비리에 연루된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각 해임하는 강력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 인사비리 청탁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부정적 파급효과 또한 매우 크다. 채용 비리로 합격한 이들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향후 몇 년간 취업 기회를 완전히 박탈해야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또한, 면접 등 채용 과정에 대해서 평가자의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될 가능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고 평가 방침에 있어서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공정한 지표를 의무사항으로 만들어 기회·과정·결과에 대해 합격자와 불합격자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블라인드 채용에 관해 불만을 털어놓은 채용 담당자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지원자의 대학·학점·자격증·집안 배경 등을 보지 않으면 무엇을 보고 심사해야 하느냐”며 불평을 쏟아냈다. 지원자의 품성·역량·사고력 등을 확인하려는 노력 대신 눈에 보이는 손쉬운 지표로 지원자들을 걸러냈기에 지원자의 부모 배경 등 부정적 현혹 효과가 채용의 공정함과 기회의 평등함을 훼손하고 있다. 국내 지방대를 나와 국내 대학 교수에 수없이 지원해도 탈락한 이가 미국 명문대 교수직에 채용됐다는 소식이나, 국내 기업에 취업 못한 지방대 학생이 글로벌 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에도 국내 기업 또는 대학이 성찰이나 반성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수많은 사회심리학 연구 결과 중에서 지원자의 출신 대학이나 부모 배경이 지원자의 역량이나 성과를 예측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단 한편도 없다. 미국 대학 및 기업이 지원자의 역량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인맥 및 부모 배경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이나 대학, 공공기관은 지원자가 얼마나 절박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여전히 지원자의 학력(간판), 부모 배경 등에 집착한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악인 9.9%를 기록했다. 채용 비리를 엄벌하고 단죄하지 않는 한, 청년들의 한숨은 더 깊어져 갈 것이다. ‘인맥’이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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