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알아서 하라” 구멍 뚫린 감염관리 체계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8 09:08
  • 호수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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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감독 사실상 공백, 동네 병원은 의무조차 없어

 

최근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감염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세상에 드러낸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부실한 감염관리에 대한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간호사가 비닐장갑 없이 휴지로 인큐베이터 옆의 바퀴벌레를 잡았다”거나 “가족 면회객들이 마스크를 안 쓰거나 손을 알코올 등으로 소독하지 않는 경우에도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홍정익 질병관리본부 위기대응총괄과장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이후 “이대목동병원의 감염관리가 부실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며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의 감염 경로를 더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의료진이 매개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단순히 특정 병원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의료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의료 관련 감염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사고가 났을 때 해당 병원에 대한 책임을 묻지만, 관리·감독 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뒤늦게 전수조사 등을 진행하며 생색을 낼 뿐이었다. 의료 관련 감염에 대한 관리·감독 문제를 집중 분석해 봤다.

 

의료 관련 감염관리는 병원 자율에 맡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중환자실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정맥영양주사제(TPN)에 대한 관리조차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신체 깊숙이 심어놓은 도관을 통해 공급하는데, 자칫 병원균에 감염된 세균이 섞여 들어가면 바로 피를 통해 전신으로 퍼지는 패혈증 상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중환자실이 별도 멸균 시설 공간 없이, 수액과 주사제가 비치된 테이블에서 TPN을 조제하고 있다. 중환자실 환경에 노출된 세균이 수액제로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규정상 TPN을 무작위 추출해 세균 감염 여부를 조사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주기로 하라거나, 이를 어디에 보고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 규정이 없다. 병원 자율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의료계 감염관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단순히 특정 병원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 사진=연합뉴스

 

병원 자율에 맡겨진 의료 감염관리

 

왜 그럴까. 의료 관련 감염에 대한 관리·감독에 구멍이 생긴 것은 법적인 허점 때문이다. 여러 법으로 나눠져 있는 데다 각 법마다 주안점이 달라 의료 관련 감염 문제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꼴이다. 이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구체적 규정이 없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기관장은 병원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는 명목상 의무 규정이 적시돼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의료관련감염병’ 또한 관리 대상이지만, 수두·홍역·결핵 등과 같은 유행성 감염 등의 관리에 집중돼 있다. 병원 내 의료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감염에 대해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보건소의 설치 근거가 되는 지역보건법에서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리·감독해야 할지에 대해선 명문화돼 있지 않다. 이는 화재 예방 분야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소방기본법의 경우 화재 예방 업무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들이 나열돼 있다. 또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에게는 화재 예방을 위해 관계인에게 소화기구 등 소방 설비의 설치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의료 관련 감역 체계는 크게 5개 기관에서 맡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주로 법령과 정책을 담당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감염 예방을 위한 수가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선 의료기관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또한 감염 예방을 위한 표준지침 등을 마련하고 감시 체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이 또한 병원 자율에 맡겨져 있는 상태다. 현실적으로 보건소에서 해당 지역의 병원을 감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전문인력 부족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의료 관련 감염의 경우 자발적 감시체계를 통해 자정 노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돼 있다”며 “의료 분야에 대한 전문성 때문에 보건소에서도 각급 병원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관리의 초점이 유행성 감염병에 맞춰져 있지만, 이대목동병원의 사례처럼 의료 관련 감염 또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2016년 7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전국 193개 병원의 중환자실을 조사한 결과, 3989건의 감염 사례가 나왔다. 입원 1000일당 감염 건수는 2.87건이었다. 1년 전(2.76건)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물론 신고가 잘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의료기관 감염이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이대목동병원 사망 신생아에게서 검출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검출된 사례는 7건이었다. 메티실린·반코마이신처럼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도 상당수다.

 

규모가 작은 병원은 아예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 설치·운영 등에 대한 의무규정조차 없다. 의료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에 대해서만 의무 조치를 시행하고 있어서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대형 병원도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의무 규정을 지키려면 버거운 상태”라며 “동네 병원에까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실상 지키지 못할 의무를 떠넘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뒤늦게 대책 마련한다지만…

 

질병관리본부 감염관리과 구현숙 연구사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감염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현장 감독에 대한 대책이 제도적으로 빈약한 것은 사실”이라며 “감염 예방 의무 기관을 점차 확대하고, 병원 내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당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과 같은 의료 관련 감염사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의료관련감염 종합대책 마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는 기존에 추진된 의료 관련 감염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한다. 또 조사·감시 체계를 확대하고 감염관리 인프라 강화, 의료기관 감염관리 강화 방안 등이 논의된다. TF는 오는 6월까지 5차례의 회의를 거쳐 ‘의료관련감염 종합대책’을 확정할 계획이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이후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 등을 내놨지만 다양한 감염관리 영역에 대한 세부 정책, 상대적으로 감염관리 여건이 어려운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에 대한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모든 국민이 병원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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