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전문가 칼럼] GM 숨통 틀어쥘 한국의 협상 전략
  • 박상기 협상전문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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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계화는 인류는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국제 사회 교역의 증가로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은 날로 증가해가고 있다.특히 경제 분야에 있어 국가 간 경계가 약해지면서 비즈니스 영역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협상의 중요성은 이런 배경 위에 서 있다. 국제관계 속에서 국가 간 협력관계 및 이해관계를 따지는 제1차 무대가 바로 '협상'임은 분명하다.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 정권 역시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한 국제 정세 속에 한미 FTA 재협상, 한일 위안부 협상, 미중 갈등 등 국제적 외교 난제들이 산적한 지금, 시사저널은 국제 비즈니스 분쟁·협상 전문가의 칼럼을 통해 주요 이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필자인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는 ​​한국협상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연세대, 한국뉴욕주립대, 한양대 국제대학원 협상학 겸임교수를 역임한 그는 현재 주요 언론사 협상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은 영화처럼, 영화는 협상처럼》(2013·영림카디널)이 있다. 

전문가 기고문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는 무관하다.​​​ 

한국GM 사태, 트럼프 대통령의 세이프가드 압박 등등. 대한민국이 또다시 미국의 협상 농단에 흔들리고 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을 잘 대처하고 제대로 관리하라고 한 자리 앉아 계신 분들의 입에선 "사실상 대책이 없다"란 맥 빠지는 말만 나오고 있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나 학자들은 정부를 무능하다고 지탄하기만 한다. 당장 수습은 어렵고, 시간을 두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더 나아가 한국의 산업을 정비해야 한다는, 고품격 전문가 고언을 한마디 툭 던질 뿐이다. 그들로부터 현실적 대응전략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청와대도 이번엔 미국과 한판 제대로 붙겠다고 일성은 뱉었지만. 그 방안이란 게 협상의 판세를 뒤엎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기 그지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주요 언론은 이런 내용을 연일 재생산하고 있다. 그런 보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는 어차피 미국하고 협상하면 지는구나. 어쩔 수 없지'라는 패배의식이 느껴질 정도이다.

2월20일 서울 종로구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규탄 민중당 정당연설회'에서 당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법에 맞춰 한국GM의 문제 파헤쳐야

미국이 두려워할 만한 협상 전략 전술이 정말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몇 가지 상황전략을 제대로 연출만 해도 미국 정부 스스로가, 혹은 GM 스스로가 적정 합의를 역제안해 올 수도 있다. 

최근 GM 사태에 대해 '대주주 책임, 고통 분담, 장기경영전략 요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사항은 미국식 비즈니스 협상에선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아무런 구체적이거나 법률적인 책임 의무가 없​는 요구여서 GM 입장에선 상황논리로 언제든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말도 안되는 '대한민국 공무원' 방식의 넌센스를 지켜봐야 할까. 과연 GM과의 협상에서 지금처럼 GM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협상의 법칙이 뭐가 있을까. 이 칼럼을 통해 몇가지 한국GM 협상 전략 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미국 및 서구 기업들과의 수없이 많은 협상을 통해 그들로부터 배운 최고의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협상 전략이다. ​ 


1. 한국GM 사업장은 한국에 있다. 즉, 한국 정부의 행정조치 영역 안에 있다. 면밀하게 검토하면 한국의 국내법만으로 한국GM의 숨통을 틀어 쥐고 흔들 수 있다.

2. 다양한 관할 행정기구별·법률별·사안별로 국내법을 적용한 제재 폭탄을 안기는 게 첫번째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당연히 국내법으로 기선을 제압한다.

3. 끊임없는 국내외 소송들을 상황별로 진행 해, 미국의 GM 본사로 하여금 한국GM 문제 해결 방향과 내용을 싫더라도 변경토록 유도해야 한다.

요점은 한국GM은 한국에 있는 기업이니 우선 한국법에 맞춰 조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GM 본사와 한국GM 간의 막대한 차입금의 부당 회계처리는 자연스럽게 돌출될 것이다. 합법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면서 탈법·​탈세·​고소·​고발이 이어질 것이다. GM 측이 항의하면 국내법에 따라 소송해버리면 그만이다.

고소·​고발 소송을 끝까지 가서 법정에서 유뮤죄 확정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GM의 과실 여부만 따지는 게 아니​다. GM이 획책하고 있는 여러 부당하고 기만적인 협상 전략을 무력화하고, 우리의 협상력을 끌어 올리는 효과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또 하나, 한국GM의 부당행위를 샅샅이 뒤져 마찬가지로 고소·​고발, 행정소송으로 가라는 것이다. 당연히 납품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당 근로행위, 작업장 안전문제 소홀, 근로기준법 위반 등. 위반 사항을 찾으려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거기다, 한국GM 생산 차량에 대한 철저한 제조공정상의 불법 및 제품의 불량 문제. 판매 과정의 불법행위 등을 파헤쳐 겹쳐 놓으면, GM은 예상치 않는 문제들에 휩싸여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에 이를 것이다.


초기 협상 전략 팁은 ‘스노우 잡(snow job​)’이란 협상 기법​

협상은 그때 하면 된다. 미국의 MBA 협상 교실에서 금과옥조처럼 가르치는 게 'Golden Bridge'다. 즉, 합의 불가능할 것 같은 양측의 입장차를 기적처럼 좁히는 금문교 협상 전략은, 사실 상대의 숨통을 얼마나 강하게 조여 상대가 더 이상 기존의 입장을 도저히 고수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 붙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초기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조건을 성공적으로 막바지까지 밀어붙인다면, 협상 초기의 달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과의 외교·​통상·​안보·​비즈니스 협상에서 문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던 바로 그 협상기법이다.     

국제협상컨섵턴트로서 필자가 제안하는 초기 협상 전략 팁은 바로 ‘스노우 잡(snow job​)’이란 협상 기법이다. 스노우 잡 전략은 상대가 정신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서류나 골치거리를 퍼부어 상대의 협상력을 초기에 무력화 시키는 방식이다. 고소·고발·​소송·​행정조치 등에 있어 GM으로 하여금 무죄(부당) 입증 책임을 일단 지워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 한국 입장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협상 상황을 상당 부분 역전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수없이 쏟아 붓는 행정 및 법률 소송 가운데 한 두 개가 실질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GM은 이 새로운 문제들로부터 법적·​행정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 정부에 어쩔 수 없이 타협적 거래안을 들고 올 수 있다. 

미국에서 소송은 판결 전 합의가 98~99%에 달한다. 소송 압박은 효과적인 협상전략인 셈이다. 이 역시 미국이 기업에게 가장 많이 애용하는 협상 기법이다. 당장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202조·​232조 등이 바로 소송 압박 전략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젠 우리 차례다. 지체하지 말고 제대로 된 협상 전략으로 우리 경제를 지켜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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