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 “LPGA 신인왕과 메이저대회 우승이 목표”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7 09:18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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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만에 LPGA 데뷔전 우승…4년 연속 ‘코리아 신인왕’ 대기록 도전

 

‘무서운 루키’ 고진영(23·하이트진로)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데뷔전 연착륙에 성공하며 골프 역사를 다시 썼다. 2월18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쿠용가 컨트리클럽(파72·6599야드)에서 열린 제44회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총상금 130만 달러) 최종일 경기 4라운드에서 고진영은 이날만 3타를 줄여 합계 14언더파 274타로 최혜진(19·롯데)을 3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첫날부터 최종일까지 선두를 한 번도 내주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우승이다.

 

고진영의 LPGA투어 데뷔전 우승은 베벌리 핸슨(미국) 이후 67년 만에 처음이다. 핸슨은 1951년 프로 전향 후 첫 무대인 이스턴오픈에서 ‘골프 전설’ 베이브 자하리스(미국)를 꺾고 우승했다. 1번과 2번 홀에서 버디를 챙기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한 고진영은 이후 파3인 3번과 7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조금 불안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9번 홀에서 세 번째 샷을 핀에 붙여 버디를 추가하며 전반에 1타를 줄였다. 후반 들어 13번 홀(파4)에서 버디를 챙긴 데 이어 17번 홀(파4)에서 5.6m 버디를 잡아 추격하던 최혜진을 밀어내고 ‘우승 쐐기’를 박았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세계여자프로골프랭킹 20위에서 4계단 상승한 16위에 올랐다.

 

고진영(23·하이트진로) 선수가 2월18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쿠용가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투어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한 후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美 LPGA의 강력한 신인왕 후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10승을 올린 그는 지난해 LPGA 비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미국 무대에 ‘무혈입성’했다. 그는 미국의 골프채널이 거론한 2018년 주목할 선수 15인 중 한 명으로 이미 기량이 검증된 선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올 시즌 가장 강력한 LPGA 신인상 후보 1순위다. 한국은 2015년 김세영, 2016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이 3년 연속 신인상을 휩쓸었다. 여기에 고진영이 4년 연속 기록에 도전한다.

 

그는 자격을 따내고도 미국행을 망설였다. 외동딸로 자란 탓인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후에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 미국행을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준비된 ‘대어(大魚)’로 손색이 없다. 미국 진출을 결심한 뒤 장기 레이스에 대비해 체력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강한 체력을 타고났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집안 모두 권투선수 출신인 덕에 하체가 탄탄하고 기초체력이 훌륭하다. 그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권투를 배웠다. 특히 로드워크와 줄넘기를 많이 했다. 아버지와 줄넘기를 누가 오래 하는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체력에서 견고하고 흔들림 없는 편안한 스윙이 나온다. 안정적인 투어 정착 비결에 대해 그는 “비행시간이 길고, 골프를 치는 날들이 많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과 시차 적응에 대해 많은 노하우가 필요할 것 같다. 아직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비행을 많이 해 보고, 그런 경험을 많이 하면 나에게 현실적인 노하우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지난해 승부수를 던졌다. 시즌 중간에 코치도 교체하고 스윙도 바꿨다. 엄청난 모험이었다. 지난해 6월까지 9개 대회에서 톱10에 5회나 들었으니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터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플레이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샷이 불쑥 튀어나왔고, 시즌을 망치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2017 시즌을 마치고 가졌던 달콤한 휴식기에도 그는 훈련에 집중했다. 대회 첫 출전을 LPGA투어 세 번째 대회인 호주여자오픈으로 잡고 뉴질랜드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훈련을 가기 전에 한 달간 클럽을 잡지 않고 몸을 만드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아직도 스윙에 기복이 있는 편이라 스윙을 다듬었다.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쇼트게임에 집중했다. 100야드 이내에서의 감각적인 샷을 위한 훈련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치 없이 홀로 했다. 연습 스케줄도 혼자서 짜고, 잘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석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문제점을 해결해 나갔다.

 

그는 불운하게도 국내에서 ‘일인자’를 해 보지 못했다. KLPGA투어 데뷔 첫해인 2014년에는 LPGA투어에서 활약하다가 국내에 복귀한 백규정(23)에게 밀려 신인상을 놓쳤다. 이후에는 김효주(23·롯데)에게 잡혔고, 전인지(24·KB금융그룹)와 박성현(25·KEB하나금융그룹)에게 최고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갔다. 동료나 선배들이 미국과 일본에 진출해도 한눈팔지 않고 국내에서 기량을 더 다졌다. 이것이 그만의 장점이다. 그는 그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등판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을 많이 봐왔기에 더욱 그랬다.

 

 

“준우승 머문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하고파”

 

고진영은 자신의 캐디백에 ‘GO! J.Y. GO!!!!’라고 새겼다. ‘고’라는 성(姓)을 활용해 재미있게 쓴 문구다. 하지만 영문 이름을 쓸 때는 성은 ‘Go’가 아니라 ‘Ko’다. 리디아 고(뉴질랜드) 역시 ‘Ko’다. 이 때문에 미국 골프매체는 고진영의 미국 진출 소식을 전하면서 “또 다른 ‘고’가 온다”고 했다. 특히 그가 LPGA투어에 나가면 다른 나라 선수들이 ‘리디아 고와 가족이냐’ 또는 ‘그 패밀리(고씨 집안)는 모두 골프를 잘 치냐’고 자주 묻곤 한다.

 

비록 첫 대회를 치렀지만 고진영은 상금랭킹에서 브리타니 린시컴(미국·21만 달러)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우승상금 19만5000달러를 획득했다. 롤렉스 신인상은 150점으로 1위다. 레이스 투 CME 글로브는 500점으로 역시 1위를 달리고 있다.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는 250.13야드로 78위, 페어웨이 안착률은 92.86%로 1위, 아이언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그린 적중률은 84.72%로 1위, 그린 적중 시 홀당 평균 퍼트 수는 1.67개로 5위, 평균 퍼트 수는 29.75타로 46위, 샌드 세이브는 25%로 117위, 평균 타수는 68.50타로 1위에 올라 있다.

 

고진영은 2015년 준우승에 머무른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박성현이 신인왕과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3관왕에 올랐다. 순항하는 고진영이 박성현의 3관왕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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