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의 굴욕’ 배병우 창작스튜디오, 결국 폐쇄
  • 전남 순천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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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식 유명 예술가 모시기가 빚은 '참사'…평판 점검도 부실

"배병우 작가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유명한 세계적인 사진 거장으로 소나무·​바다·​산과 같은 한국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지난 2016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를 일환으로 문화의 거리에 조성한 '배병우 창작스튜디오'를 개관한 순천시가 사진작가 배병우(68)씨를 평가한 부분이다. 창작예술촌 제1호로 입성한 배 작가를 글로벌 작가로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순천시는 당시 유명 예술가의 창작스튜디오 개관을 통해 순천이 생태와 더불어 문화예술의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순천시가 구도심 문화의 거리에 조성한 '배병우 창작스튜디오' 전경 ⓒ 순천시 제공

순천시, "성추행 의혹 유감스럽다…작품도 철수"

 

하지만 이런 바람은 1년 2개월 만에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성추문에 휘말리면서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순천시는 이번 사태로 그동안 쌓아온 청정 순천 이미지가 먹칠당하는 굴욕을 안게 됐다. 

 

시는 배씨의 성추행 논란이 확산되자 2월25일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뒤 순천 문화의 거리에 있는 배병우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시는 지난 23일 대책회의를 열고 배씨의 창작스튜디오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전날(24일) 스튜디오 간판을 떼어내고 안내문을 붙인 뒤 공간을 폐쇄했다. 현재 스튜디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스튜디오 폐쇄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철거할 방침이다. 시 측은 "성추행 의혹이 제기돼 매우 유감스럽다"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배씨는 줄곧 소나무 사진을 찍어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의 대표 사진작가로 꼽혀왔다. 지난 2009년 사진 발명 170주년에 선정한 세계적 사진가 60인에 뽑히고 영국 팝가수 엘튼 존을 비롯한 국외 여러 수집가의 눈에 띄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서울예대 사진과 교수(1981~2015년)로 재직하면서 촬영지나 작업실 등지에서 제자들을 성추행·​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 이에 대해 배씨 측은 "너무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순천시는 지난 2016년부터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유도하고 시민들은 문화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시재생 선도지역 내에 거점 문화예술공간인 창착예술촌 조성사업을 추진해 왔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씨는 이곳에서 순천을 주제로 한 화보집 제작 발간과 함께 예술인 교류,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통 프로그램 운영, 사진 페스티벌 등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시에 비판 여론 비등···"단기 성과에 사로잡힌 단체장 욕심 탓"  

 

이번 사태를 두고 순천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배씨의 성추문 연루로 인한 창작스튜디오 폐관 사태는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일단 유명 예술인을 모시고 보자는 행정성과주의 때문에 일어난 예고된 참사라는 것이다. 

 

유명인 유치를 통한 지역 알리기는 광고 등 다른 마케팅 수단에 비해 단기간에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 반면에 그만큼 위험도 또한 높다. 작가와 지역 주민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이외수 작가의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이 대표적인 사례다. 

 

순천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결국 장기적으로 자생적인 풀뿌리 문화를 육성하기보다는 소나무 옮기듯이 이식문화로 단번에 문화예술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단체장의 욕심으로 성급하게 추진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배씨를 둘러싼 평판을 순천시가 사전에 체크했는지도 논란거리다. 순천시는 서울예대 재직당시 성추행 발생 사실을 몰랐고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유명인의 리스크 관리에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정적 평판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순천시는 일단 스튜디오 운영을 중단하고 각계의견을 들어 활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배씨의 퇴출로 인한 창작예술촌의 비정상적인 운영과 먹칠 당한 지역이미지가 쉽게 회복될지 미지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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