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넘어 백악관도 강타한 ‘미투’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8 09:27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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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대통령 정조준하는 ‘미투’ 화살

 

“백악관을 휘청거리게 만든 ‘미투(#me too)’ 운동이 이제 권력투쟁을 넘어 트럼프도 정조준하는 모양새다.”

 

2월2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의 한 정치 분석 전문가가 백악관의 현재 분위기에 관한 논평 요구에 내놓은 말이다. 성폭력 고발 캠페인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나도 당했다(me too)’ 운동의 물결이 백악관을 덮쳐 권력투쟁마저 몰고 온 데 이어 이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을 휘청거리게 만든 사태의 발단은 2월6일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의 보도였다. 롭 포터 백악관 선임비서관이 과거 2명의 전처에게 가정폭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포터 비서관은 다음 날 다른 영국 매체에 전처의 멍든 얼굴 사진이 공개되는 등 사태가 더욱 확산하자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포터 비서관과 호프 힉스 백악관 공보국장 간의 염문설도 불거지는 등 일파만파를 낳았다.

 

1월20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성폭력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AP연합

 

백악관 ‘거짓 해명’ 의혹에 내부 갈등 노출까지

 

포터의 사퇴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오른팔인 포터의 사임을 놓고 존 켈리 비서실장은 그의 사임을 만류하면서 “포터는 진실로 위엄이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며 “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끝이 없다”고 두둔했다. 백악관의 연설문 담당인 데이비드 소렌스 비서관도 전처 폭행 보도가 불거지면서 2월9일 사퇴하는 등 백악관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10일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이 단지 혐의만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파괴되고 있다”면서 이들의 행동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다음 날 포터 비서관의 또 다른 전처가 언론 기고를 통해 “진실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포터의 가정폭력을 다시 고발했다. 민주당 등 정치권은 물론 여성단체들의 집중포화를 몰고 오는 등 백악관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는 후폭풍에 직면했다.

 

백악관을 향한 비난과 파문이 확산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2월11일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도 우리처럼 포터의 혐의에 대해 충격을 받고 놀랐던 것 같다”면서 “피해 여성들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수습에 나섰다. 침묵을 유지하던 트럼프 대통령도 2월14일 “나는 가정폭력에 전적으로 반대한다”면서 “그런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퍼진 파문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과거 가정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 기밀을 취급하는 백악관 비서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느냐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불똥은 백악관 사방으로 확산했다. 특히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포터 비서관의 가정폭력 혐의를 알면서도 이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으로 확산했다. 또 백악관은 포터 비서관의 혐의가 언론에 보도되자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2월13일 의회에 출석해 포터 비서관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지난 1월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백악관은 ‘거짓 해명’ 논란에까지 휘말리고 말았다.

 

백악관을 휘청거리게 만든 불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측근을 감싸고 부실한 인사검증으로 도마에 오른 켈리 비서실장이 2월16일 신원검증이 끝나지 않은 일부 백악관 관리들의 임시 기밀취급 권한을 취소하는 등 개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포터 비서관의 가정폭력 문제로 시작된 스캔들의 여파가 백악관의 기밀정보 취급 권한 문제로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의 조치는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면서 핵심 실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의 갈등설을 낳고 말았다. 백악관은 통상 FBI를 통한 신원검증을 거쳐 백악관 고위 관리들에게 기밀정보 접근 권한을 주고 있다. 쿠슈너는 백악관에 입성한 지 1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원검증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켈리 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쿠슈너 선임고문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쿠슈너는 켈리 실장의 이러한 조치가 사실상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며, 백악관 동료들에게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백악관 내부 갈등이 더욱 폭발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이 백악관을 덮친 ‘미투’ 운동이 결국 적나라한 백악관 내부의 분열상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보도하는 이유다. 이번 파문 과정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켈리 비서실장이 일찍 잘 다뤘어야 했다”면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선을 그은 데 이어 이번에는 켈리 실장과 쿠슈너 선임고문이 대립하는 등 백악관은 거의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2017년 12월11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과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REUTERS 연합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다른 ‘미투’ 등장하면…

 

전문가들은 이번 백악관 파문을 불러온 원인의 정점에는 바로 최종 책임자이자 최고 권력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여성 비하 발언이나 성폭력 등에 대한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는 트럼프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워싱턴포스트가 2월19일 과거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의 기사를 다시 1면에 게재하면서 ‘미투’ 운동의 화살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해당 기사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그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만 무려 13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또 최근엔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성관계를 맺은 포르노 여배우에게 거액을 지급해 입막음했다고 보도하면서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여사와 불화설에까지 휩싸인 상황이다. ‘미투’ 운동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번 백악관 스캔들로 인해 백악관에 대한 미국 국민의 신뢰도는 거의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또 다른 ‘미투’들이 등장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생 불가의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그만큼 ‘미투’ 운동은 할리우드를 넘어 백악관도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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