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블랙리스트’ 판도라 상자 열리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8 11:38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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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정황 증거, 공직윤리관실 사찰 문건에서 드러나

 

이명박 정권 당시 있었던 불법 사찰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폭로를 입막음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혐의에 대해 검찰의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경찰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폭로가 나왔다. 전·현직 경찰관들의 최대 커뮤니티인 무궁화클럽은 최근 경찰청 앞에서 ‘MB정권 파면·해임시킨 경찰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와 관련한 국민청원도 이어졌다. 양동열 전 서울 수서경찰서 경사(54·무궁화클럽 전 사무총장)는 2월18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경찰관 블랙리스트 희생자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는 청원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했다.

 

2009년 초 광우병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이명박 정권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양 전 경사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의 지시로 경찰청 보안국 산하에 사이버 보안수사대를 만들었고, 경찰 조직이 공조해 정권이나 경찰 내부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경찰관 색출에 나섰다. 이를 위해 경찰 내부 게시판, 다음 아고라, 무궁화클럽 게시판 등의 온라인 수색을 통해 정부 비판 세력, 조직 비판세력을 정화 대상자 ‘가급’ ‘나급’ ‘다급’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가급’에 해당하는 경찰관을 중징계해 퇴출시켰다. ‘나급’이나 ‘다급’에는 정부 정책에 쓴소리를 하거나 경찰조직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논객들이 다수 포함됐다. 무궁화클럽 운영진 전원, 폴네티앙 운영진, 다음 아고라, 내부 게시판에 글을 자주 게재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됐다고 한다.

 

‘나급’과 ‘다급’에 해당하는 정화 대상자들도 전방위 감찰조사를 통해 온라인 활동을 중지하도록 탄압받았다고 했다. 일부 경찰관들에게는 보직과 승진을 통해 회유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양 전 경사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가급’과 ‘나급’에 해당하는 경찰관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명박 정권 당시 ‘경찰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가·나·다’급으로 분류해 무더기 징계

 

양 전 경사가 말한 ‘경찰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가 블랙리스트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과 여기에 해당하는 경찰관들의 실명을 밝혔지만 문건 원본을 공개하지 않아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섣부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2012년 3월 공개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문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위한 비선조직이다. 당시 ‘왕 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설립 및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질 당시인 2010년 박 전 차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촛불시위에 공무원들도 나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VIP 인신공격이 굉장히 심해 지원관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는 고위공직자뿐 아니라 민간인도 불법 사찰했다. 당시 공개된 사찰 문건에는 2008~10년 벌인 사찰 활동 보고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있다. 무궁화클럽(대한민국 무궁화클럽 포함)에 대한 사찰 문건이 150건이나 나온 것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경찰 내부망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하위직 경찰관들에 대한 동향파악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던 것이다. 당시 무궁화클럽 회원들은 경찰 수뇌부 비판, 각종 제도 개선 등을 주요 현안으로 글을 올리고 있었다. 경찰 내부 통신망의 주요 논객들 대다수가 무궁화클럽 회원으로 활동했다.

 

양 전 경사는 ‘경찰관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며 정화 대상자 ‘가급’에 해당하는 인물로 본인뿐 아니라 경기경찰청 박윤근 경사, 충북경찰청 장재룡 경사, 충북경찰청 김영대 경위 등을 꼽았다. 이들에 대해서는 근무태도, 가족관계, 재산관계, 과거 행적 등을 정밀하게 조사해 자료를 수집했고, 이를 위해 미행·음해 등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공작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설치된 이후 경찰 내부망을 통해 비판적인 글을 올렸던 핵심 논객 7명이 무더기로 파면당하거나 해임되고 2명이 사망했다. 여기에는 양 전 경사가 말한 ‘가급’ 대상자들이 포함돼 있다.

 

2009년 4월 경기경찰청 소속 박윤근 경사가 파면된 후 같은 해 10월과 11월에는 충북경찰청 장재룡 경위, 서울경찰청 양동열 경사가 파면됐다. 2010년에도 무더기 징계가 이어졌다. 그해 1월에는 부산경찰청 김흥현 경사가 해임되고, 6월에는 내부 게시판에 글을 쓰다 감찰 압박을 받던 인천경찰청 김명렬 경사가 사망했다. 11월에는 광주경찰청 정해권 경위가 파면됐으며, 같은 청의 천훈호 경사는 해임됐다. 2011년에도 불운이 잇따랐다. 김영대 전 충북경찰청 경위의 경우 내부 게시판에 글을 쓰다 감찰 압박을 받고 명퇴했다. 하지만 이를 비관해 같은 해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 박윤근 경사의 경우 이례적으로 감찰부서가 아닌 광역수사대를 동원해 샅샅이 뒤졌다. 내부 직무감찰이 아닌 ‘형사’ 처리를 위한 수사에 나선 것이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현직 경찰들에 대한 사찰은 집요하게 이뤄졌다. 여기에는 경찰 감찰조직이 동원됐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양 전 경사는 자신이 파면될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번은 청문 감사관이 나를 불러서 하는 말이 ‘양 전 경사가 공무원 중에서 정화 대상자 1순위로 선정돼 있다’고 했다. 그래서 ‘누가 선정한 것이냐’고 묻자 ‘청와대 공직기강팀’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 전 경사는 미행까지 당했다고 한다. 그는 “2009년 10월쯤이다. 수서경찰서 대치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밤에 순찰을 나갔는데, 뒤에서 차가 한 대 따라오더니 차 안에서 3명이 나를 감시했다. 이상해서 승용차가 있는 반대편으로 이동했는데, 한 시간 후 그들을 또 만나게 됐다. 수서경찰서 청문감사관한테 ‘왜 나를 미행하느냐’고 항의했더니 처음에는 ‘아니다’며 부인했다. 그래서 경찰청에 항의하고 ‘언론에 터뜨리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미행한 것을 시인했다”고 말했다. 양 전 경사는 한 달쯤 후에 파면됐다.

 

양 전 경사는 경찰관으로 재직한 20년 동안 시말서 한 번 쓰지 않은 모범 경찰관이었다. 2008년에는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경찰 개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청장상’도 받았다. 2010년에 과로사한 인천청 김명렬 경사의 죽음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10여 년 동안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내부 통신망의 ‘스타 논객’이었다. 그런데 근무를 나갔다가 집에서 잠든 후 사망했고, 과로사로 판명됐다. 하지만 양 전 경사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김 경사가 죽은 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10년 동안 쓴 글을 모두 지웠다. 댓글까지 다 지웠다. 갑자기 사망한 것도 그렇지만 글을 모두 지운 것도 석연치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의 전경수 회장도 집중 사찰 대상에 포함됐다. 전 회장은 무궁화클럽을 발족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또 다른 하위직 경찰 커뮤니티인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을 만들었다. 사찰 문건이 공개된 후 그는 언론을 통해 “용산 참사 때 경찰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올렸다. 또 조현오 청장의 실적주의 폐단도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사찰 대상이 된 것 같다. 경찰 조직을 사유화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찰 사건의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1월13일 무궁화클럽 회원들이 경찰청 앞에서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 정락인 객원기자


 

“국정원이 수집해 경찰청에 통보”

 

‘나급’ 정화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7월 경찰의 지나친 성과주의를 비판하며 조현오 서울경찰청장과 동반 퇴진을 주장했다가 파면됐다. 그도 경찰관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에서 경찰관들의 정보를 수집해 경찰청으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 ‘나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해 MB에게 보고했느냐’고 물었더니 웃음으로 수긍했다. 그러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는데 내가 파면당한 것도 이런 연장선에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채 전 서장은 파면 조치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여기서 이겨 약 2년 뒤에 복직했다. 현재는 경무관으로 명예퇴직한 상태다. 김장석 무궁화클럽 회장은 “이명박 정권은 정권에 비판적인 경찰관들을 선별해 사생활까지 불법 사찰했다. 그 결과 의문사, 해임·파면 등 부당한 인사조치 등으로 인권 말살을 자행했다”며 “지휘부의 책임 있는 반성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동열 前 수서경찰서 경사 “경찰 조직 내 인권 말살 행위 낱낱이 밝혀야”

 

© 정락인 객원기자


 

파면 당시 어떤 글이 문제가 됐나.

 

“2007년 10월부터 파면되기 전까지 사이버경찰청 경찰 발전 제언방에 156차례 글을 올렸다. 그중에는 경찰 제도개선을 요구한 글도 있지만, 정부와 지휘부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글도 포함돼 있다. 그러다 천직처럼 여겼던 경찰관직에서 갑자기 파면당했다.”

 

 

징계의 부당함을 얘기하지 않았나.

 

“당연히 했다. 경찰청은 내 징계 사유로 7가지를 꼽았다.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미 나를 경찰 조직에서 쫓아내려고 결정한 상태여서 수순대로 진행했던 것이다.”

 

 

최근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주장하며 국민청원까지 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상 과거 정부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블랙리스트와 불법 사찰 등 경찰 조직 내에서 벌어진 인권 말살 행위를 낱낱이 밝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불법 감찰의 피해자들을 전원 복직시키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불법·위법 감찰의 폐해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까지 경찰의 감찰제도는 사실상 지휘부의 ‘갑질’을 조장하는 시스템이었다. 제대로 된 감찰제도로 정착되려면 인사권을 가진 지휘부에서 떼어내야 한다. 경찰위원회나 민간이 참여하는 사법기관 감시단, 인권위원회 등에 이관해 별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부정·부조리와 관련 없는 불법 감찰서류는 일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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