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처럼 던진 트럼프 한마디가 한반도 대화 물꼬 틀수도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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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이 바라본 대북특사 전망…AFP "최신판 데탕트", NHK "북·미 대화 쉽지 않을것"

북·미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단이 3월5일 평양을 향해 떠났다. 이번 평양 방문은 평창 올림픽에 북측에서 특사와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 데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뤄졌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을 '투톱'으로 해 모두 5명으로 꾸려진 대북특사단은 ​1박2일 간 방북 일정을 소화한 후 귀국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단으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으로 가는 정의용 대북특사 단장이 3월5일 오전 춘추관 기자실을 방문해 "문 대통령의 비핵화 의지를 북에 전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대북특사단은 유례없는 ‘장관급 인사 2명의 공동 파견’으로, 특사단 구성의 격을 맞추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미통'으로 꼽히는 정의용 실장을 특사단 단장 격인 수석에 임명한 것에서 이번 특사 파견의 성격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무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북미 간 대화의 장을 조율하는데 집중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있는 것이란 평가다.

 

 

'초특급' 대북특사단에 외신도 집중조명

 

매머드급 대북특사단에 외신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은 특사단에 포함된 인물의 면면을 자세히 전하며 특사단의 행보 등을 예측했다.​ AFP 통신은 대북특사단 파견을 냉전체제 이후 미·​소 간의 긴장이 완화되던 '데탕트​(détente)​'에 비견하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 통신은 남한의 대북 특사 파견은 "평창 올림픽이 가져온 최신판 '데탕트'"라며, 문 대통령이 특사단을 북한에 파견해 북·​미 대화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독일의 DPA 통신도 특사단이 북·​미 대화 재개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북한에 파견된 특사단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긍정적 성과를 들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

 

일본의 언론사들 역시 대북특사단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일본 언론은 무엇보다 대북특사단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만남에 주목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은 대북특사단이 문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북·​미 대화와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회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측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고위급대표단을 만났다고 2월1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도쿄신문 역시 대북특사단과 김 위원장과의 회담 실현 여부에 주목했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가 각료급(장관급)인 정 실장과 서 원장을 동시에 특사로 파견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관측했다. 

 

다만, 평창 패럴림픽 후 실시될 예정인 한·​미 합동군사군훈련을 언급하며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따라 한국의 입장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2월3일 "북·​미 회담 역사에서 우리는 한 번도 미국과 전제조건을 붙인 교섭 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주장을 전하며 북·​미 대화를 위한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북과 대화 가능" 농담하듯 던진 트럼프

 

북·​미 양측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는게 이번 대북특사단의 최우선 목표로 전해지고 있다. 성황리에 끝난 평창 올림픽 덕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긴 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미국과 북한이 여전히 상대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2월1일(현지시간)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북·​미 대화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 점쳤다.

 

하지만 북·​미 간 대화의 가능성은 희박하게나마 열려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2월3일(현지시간) ​한 만찬 자리에서 "김정은과 직접 대화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워싱턴 주재 중견 언론인 모임인 '그리디론 클럽' 연례 만찬에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전 그들(북한)이 전화를 걸어 와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나 역시 '우리도 그렇다. 그러나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긍정적인 일이 일어난다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비록 ​유머섞인 농담성 발언인데다가 이 역시도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이란 조건부 발언이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파악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평소 돌발 발언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농담을 한 것인지 실제 북·미 간 대화가 임박했다고 밝힌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외교전문매체인 폴리티코 등 일부 외신들은 ​이같은 트럼프의 발언을 두고 북한과의 대화의 통로를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놨다. 백악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북한 관련 깜짝 발언에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북한의 외무성은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해야 대화할 것이며 최대의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다(preposterous)"는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태도가 북·​미 대화 재개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면서도, 한편으론 미국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시기적으로, '북·​미 대화 유도'라는 미션을 갖고 북한으로 출발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목전에 두고 미국과 북한이 농담과 반박 성명을 주고 받은 셈이다. 대화의 조건 등에서 극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북·​미 간 대화 중재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영(0) 프로'도, 백(100) 프로'도 아닌 가능성을 안고 떠난 대북특사단의 돌아오는 길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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