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성공한 이주열 한은 총재, 통화정책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3.06 15:31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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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 등 금리 인상 속도 가팔라질 가능성…전문가들 “빠르면 5월이나 7월 한은 움직일 듯”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3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시장에서는 4차례 인상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은행(BOE) 역시 물가 상승 탓에 기존 예상보다 더 이른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긴축에 소극적이었던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도 정상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은행이 덩달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 수준의 통화 완화 정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여전한 까닭이다. 특히 주요 선진국과는 다르게 한국의 물가 상승 압력은 높지 않다. 게다가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수출산업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가 자칫 경기 상승 국면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상황이다.

 

통화정책 정상화 흐름 속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정상화 움직임은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 대한 전망이 갈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외 여건과 한국은행 총재 교체기를 고려할 때 이르면 오는 5월 추가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다른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률이 낮은 데다, 6월 지방선거가 끼어 있다는 점을 들어 7월을 기준금리 추가 인상 적기로 점치고 있다. 금리 인상 횟수도 연 1회나 2회로 의견이 나뉜다.

 

© 시사저널 박은숙


 

주요 선진국 통화 정상화 위한 가속 페달

 

지난해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 기조 변화에 앞장섰다. 미국은 2006년 6월 이후 근 10년 만인 2015년 12월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지난해에만 3차례 금리를 올렸다. 영국 역시 지난해 11월 10년 만에 금리를 올리면서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축소했다. 캐나다는 6년7개월 만인 지난해 7월 금리를 인상했고 이어 같은 해 9월에도 한 차례 추가 인상에 나선 바 있다.

 

문제는 주요국 통화 정상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준이 올해 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것과 달리 네 차례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다섯 차례 인상도 예상한다. BOE도 상황은 비슷하다. BOE는 지난 2월8일 통화정책위원회(MPC)에서 기준금리를 연 0.5%로 동결했지만, MPC 위원 9명 전원이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에 동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이를 사실상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보고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긴축에 소극적이었던 ECB나 BOJ도 올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월11일 FT 보도에 따르면, ECB는 이날 공개한 지난해 12월 통화정책 회의록에서 “경제가 계속 확장되면 올해 초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나 선제 안내 관련 문구가 다시 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의 배경은 주요국의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진 데 있다. 3월 금리 인상이 유력한 미국은 올해 1월 소비자 물가가 전월 대비 0.5% 올라 시장 예상(0.3% 상승)을 크게 웃돌았다. 게다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고용과 임금 관련 지표들도 올 들어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는 5월에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영국 역시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3% 상승하며 시장 전망치(2.9%)와 중앙은행 물가 목표치(2%)를 넘어선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2월27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현행 연 1.5%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이후 올해 1월에 이어 두 번째 동결이다. 경기는 나쁘지 않으나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낮다는 게 동결을 결정한 주요 배경이었다. 금통위 위원들은 이날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했지만 셈법은 더 복잡해졌다. 낮은 물가 상승률,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금리 동결 요인과 주요국 통화 정상화 확대, 가계부채 누증 등 금리 인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준금리 인상을 또 언제, 얼마만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2월27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한국은행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속도 차 커지는 한국과 주요국 통화정책

 

특히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주요국들과는 달리 한국의 물가 상승은 정체된 상황이다. 물가가 낮은 상황에서 쉽사리 기준금리를 올리기에는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다. 자칫 회복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찬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금리 인상 카드를 내는 데 주저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하기에는 한·미 간 금리역전 현상이 현실화돼 자본 유출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의 움직임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물가 상승 움직임이 미국·영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은 점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이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뜨겁다는 것과 같다”며 “올해 전체를 봤을 때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기 여건, 물가 여건이 완만한 상황이어서 연 1회 정도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통화정책 정상화 일정이 생각보다 타이트해지고 가팔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주요국들의 통화 정상화 속도도 빨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외 금리차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통화 정상화 기조는 연동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며 “인상 시점은 새 총재가 취임하고 두 번째 금통위인 5월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미선 부국증권 연구원은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빠르면 7월로 예상한다”며 “3월에는 한은 총재 교체가 있다. 6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이전에 금리를 인상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본다. 게다가 물가 지표가 저조해 금리 인상을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인다”며 “다만 미국에서 올해 3~4회 정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한국은행은 7월을 포함해 하반기에 2회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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