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소중한 미국 경험에 후회나 미련 없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9 16:24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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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生生토크] 한국 야구로 돌아온 박병호, 미국에서 넥센 훈련 합류

 

‘홈런왕’ 박병호(32)가 돌아왔다. 2015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 미네소타 트윈스와 4+1년 최대 1800만 달러(약 208억원) 계약을 체결했지만 2년이란 기간을 남기고 넥센 히어로즈 복귀를 결정했다. 박병호는 2016 시즌 초반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 선수로 활약하며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다 슬럼프에 빠지는 바람에 그해 7월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2017 시즌에는 2월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구단으로부터 양도지명선수 조치를 당했다. 그로 인해 메이저리그 캠프에 초청선수 신분으로 참가하는 불운을 겪었다. 시범경기에서 타율 3할5푼3리, 6홈런, 13타점으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그에게 메이저리그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미국에서 개인훈련 중 넥센의 강한 러브콜을 받았고, 마침 미네소타 구단이 박병호를 풀어주게 되면서 한국 복귀를 결심했다.

 

박병호와의 인터뷰는 2월 중순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스프링캠프지인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있었다. 지난해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만났던 때와는 달리 밝은 표정으로 동료 선수들과 즐겁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용 훈련장이다. 넥센 히어로즈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훈련장을 먼저 사용한다. 텍사스 선수 중 일부는 일찌감치 캠프에 합류해 개인훈련을 소화하는데, 이때 넥센 선수들과 텍사스 선수들의 만남이 가능하다. 텍사스 소속 추신수도 보름 정도 일찍 애리조나에 입성하면서 넥센 선수들과 클럽하우스 또는 훈련장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박병호와 인사를 나눈 건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추신수한테 들은 얘기로는 박병호에게 “네가 생각한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자신 있게 야구를 하길 바란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국내 복귀를 결정하면서 이런저런 ‘악플’에 시달린 박병호에게 응원을 전하는 선배의 진심이었다. 박병호와의 인터뷰는 훈련을 마치고 서프라이즈 스타디움 근처에 위치한 선수단 숙소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박병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2016년 6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미네소타 트윈스 박병호 선수가 스윙하고 있다. © 사진=PENTA PRESS 제공

 

미네소타 트윈스 선수로 보낸 2년 동안은 플로리다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렀다. 넥센은 애리조나에서 캠프를 진행하고 있어 2년 만에 찾은 애리조나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궁금하다.

 

“애리조나 캠프가 더 좋다. 캠프장 환경도 그렇고, 날씨도 좋다. 플로리다는 덥고 습한 데 반해 이곳은 건조하면서 적당히 덥다. 운동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씨다. 넥센 선수로 4년 정도 이곳에서 스프링캠프를 경험하고 2년간 플로리다에 있다가 돌아온 셈인데 금세 적응이 된다. 그만큼 편하다.”

 

 

얼마 전 이곳에서 추신수 선수를 만났다고 들었다.

 

“반갑게 인사했다. 신수 형이 좋은 말을 많이 해 줬다.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한국에서 다시 날아오르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한국으로의 복귀가 매우 어려운 결정이지 않았나.

 

“쉽진 않았다. 어떤 과정이 있었든지 결국엔 결정한 일이고, 다시 넥센 유니폼을 입게 된 이상 최대한 넥센 훈련에만 전념하고 있다.”

 

 

나름 많은 준비를 하고 떠났던 메이저리그였다. 지난 2년 동안 다양한 일들을 겪었는데 그 소회를 듣고 싶다.

 

“야구 인생의 스펙트럼을 넓게 해 줬다는 생각이 든다. 2년 동안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경험하면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진 않는다.”

 

 

혹시 미국 진출 후 KBO리그 출신의 홈런왕이란 타이틀이 주는 부담이 있었나.

 

“그렇진 않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에는 홈런이 나왔어도 타율이 높지 않아 혼자만의 스트레스가 심했다.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날 아는 지인들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털어내라고 조언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성격이었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격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지 않나. 홈런 50개를 쳐도 스트레스가 있는 선수이고, 그걸 이겨내면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스트레스는 항상 날 따라다녔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선 그 스트레스를 코치·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풀었던 반면에 미국에선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상대한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 차이가 컸던 것 같다.”

 

 

미국에서 보낸 2년의 시간들 중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

 

“처음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처럼 부상 없는 몸으로 야구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좀 더 선수들과 잘 어울리고 즐겁게 경기를 치렀다면 어떠했을지를 떠올리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야구를 잘했더라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를 못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잃었고,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

 

 

작년에 뉴욕 인근의 보스턴 레드삭스 트리플A 포터킷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매코이 스타디움에서 인터뷰했던 때를 기억하나. 당시 박병호 선수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웃으면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올 시즌 한국에서 뛰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미네소타와의 계약기간이 2년 더 남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웬만하면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넥센에서 연락이 왔고, 미네소타 구단이 배려해 준 덕분에 한국으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복귀를 결정하기까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결정은 어렵게 했지만 마음의 정리를 마친 후에는 넥센으로 복귀하는 데 집중했다.”

 

넥센 히어로즈에 복귀한 박병호 선수가 1월9일 그랜드하얏트 인천에서 열린 KBO리그 복귀 환영식에서 넥센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7년 5월, 로체스터 레드윙스(미네소타 트윈스 산하 트리플A 팀) 소속으로 포터킷 원정경기를 왔던 박병호는 그곳에서 필자를 만나 마이너리그 생활의 고단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2017 시즌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박병호는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맞이했고 시즌 4경기 만에 오른쪽 허벅지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른 이후였다. 포터킷 원정경기는 부상에서 복귀한 지 며칠 지난 상황이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박병호 선수의 복귀를 공식 발표한 이후 곧장 입단식을 열지 않았다. 그때 계속 미국에 남아 있었던 거로 알고 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2017 시즌을 마친 후 귀국하지 않고 집이 있는 미니애폴리스에서 개인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으로의 복귀가 결정된 터라 바로 짐을 정리해 귀국하기 어려웠다. 1월초에 한국에서 입단식만 치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개인훈련을 하다가 넥센 캠프지인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 온 것이다.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서프라이즈로 향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게 있다. ‘난 여기서(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최선을 다했다’라고. 일부 사람들은 나를 향해 실패자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이겨냈으며,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에서도 목표를 갖고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야구 면에선 2년 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KBO리그 복귀가 비난받을 일이라면 비난받아야 한다. 욕먹을 일이 있으면 욕도 먹겠다. 절치부심해서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다.”

 

 

미국 야구에서 자신의 어떤 점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야구를 못했던 것이 아닐까. 야구만 잘했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야구를 제대로 못했고, 부상도 있었고, 자신감도 하락했고, 동료와 코칭스태프한테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부분 등은 부수적인 문제들이다. 야구를 꾸준히 잘했더라면 그 문제들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병호가 비시즌 동안 귀국을 미루고 미니애폴리스에서 운동에 몰두했던 건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마이너리거 신분이었지만 2018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터라 트레이너·통역과 함께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미니애폴리스의 추운 겨울을 견뎌냈다. 물론 운동은 실내에서 했지만 말이다. 한국 복귀를 염두에 뒀다면 굳이 미국에 남아 개인훈련을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난 한 시즌 동안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통역, 유태욱씨를 거론했다(박병호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에는 다른 통역이 있었고 2017 시즌에는 유태욱씨로 교체했다). 자신이 메이저리그로 올라갔더라면 그도 메이저리그를 경험했겠지만 지난 시즌 통째로 마이너리그에 머무르는 바람에 로체스터에서만 생활하게 된 부분을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넥센 선수들과는 서프라이즈에서 처음 만난 것인가.

 

“그렇다. 보고 싶었던 선수들을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다.”

 

 

박병호 선수의 합류로 넥센 타선의 무게감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다.

 

“그동안 넥센 관련 내용은 기사로만 접할 수 있었다. 경기 영상을 볼 기회가 없었다. 넥센이 대단한 게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갔지 않나. 나를 비롯해 강정호, 손승락 선배 등이 빠져나가면서 전력이 약화된 것 같은데 지난 시즌에만 좀 안 좋았지,  2016 시즌에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었다. 선수들이 빠져나가도 남아 있는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합류했다는 게 큰 도움이 되기보단 조금은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넥센에서 만나는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박병호 선수가 미국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지 않았나.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에스밀 로저스는 지난 시즌 트리플A 경기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워싱턴 내셔널스 산하 트리플A 시러큐스 치프스와 계약 후 야구장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마이클 초이스는 텍사스 레인저스 출신이다.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을 같이 사용했던 선수인데 지난 시즌 넥센 입단 후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다들 친한 선수들이다. 특히 초이스랑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내가 미국 야구를 경험해서인지 서로 얘기가 잘 통하는 것 같다.”

 

 

김현수·황재균 그리고 박병호 선수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야수들이 모두 KBO리그로 복귀했다. 앞으로 야수 출신 코리안 메이저리거가 나올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자기 인생이고, 자기 결정이다. 선배들이 잘했든 못했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성공의 가치를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에만 둔다면 불안해서 도전조차 못하겠지만, 폭넓은 야구 인생을 위해서라면 후배들이 계속 도전하길 바란다. 미리 걱정하고 염려해서 포기하는 것보단 그래도 도전해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 넥센 홈구장은 목동야구장에서 고척돔으로 바뀌었다. 4년 연속(2012~15년) 홈런왕에 올랐고, KBO리그 사상 유일하게 2년 연속 홈런 50개 이상을 때린 슬러거였는데 고척돔에서 그 기록들이 이어질지 관심이 많다.

 

“이미 2년 동안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규모가 큰 구장을 다 경험했다. 선수가 야구장 크기와 싸우는 것은 아니다. 상대 투수와 싸우는 것이다. 몇 개의 홈런을 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야구장 크기 때문에 홈런을 못 친다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다시 넥센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 선수 © 사진=이영미 제공

 

2015년 12월, 박병호가 미네소타 트윈스 유니폼을 입게 된 데는 테리 라이언 전 단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성적 부진으로 2016년 7월 시즌 도중에 경질됐고, 이후 박병호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박병호가 2017 시즌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음에도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한 건 미네소타 구단 수뇌부의 역학관계 때문이란 시선도 존재했다. 즉 테리 라이언 전 단장의 ‘작품’인 박병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내용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만약 라이언 전 단장이 계속 단장직을 수행했다면 박병호의 야구는 다른 색깔을 보여줬을까. 적어도 2017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박병호는 넥센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사연을 소개했다. 

 

 

“미네소타 구단이 공식적으로 나의 한국 복귀 사실을 알렸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으니까 상대편에서 ‘병호니?’하고 묻었다. 그렇다고 답하니까 ‘나 몰리터야’라고 말했다. 미네소타 트윈스 폴 몰리터 감독이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한국 돌아가서도 잘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같이 1년도 채 뛰지 않았던 동양인 선수에게 미국 감독이 이런 연락을 해 줬다는 게 신기했고 고마웠다. 덕분에 미국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감독의 전화 한 통이 비로소 미국 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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