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만큼이나 부침 겪어온 중국 차(茶)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9 16:55
  • 호수 14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 산업 독점해 전략무기와 통치수단 활용하기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은 2013년 9월7일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처음으로 해외에서 주창하면서 “차는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물자였다. 앞으로도 차가 주요한 교역물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60개국 30억 명의 인구가 경제권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를 새로 구축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에서까지 언급될 정도로 차는 중국의 자부심이었다.

 

현재 중국에서 생산되는 차는 ‘매일 다른 차를 마셔도 평생토록 모두 마실 수 없다’고 할 만큼 다양하다. “차 마셨어요?”가 아침인사를 대신할 정도로 차 마시는 풍속이 일상화돼 있다. 덕분에 차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을 실천하는 유화정책의 상징인 동시에 부를 창조하는 교류품목이 됐다.

 

중국 역사와 함께 부침을 겪어온 차는 차마고도 시절부터 단순한 교역품목이 아닌 중요한 전략물자였다. 고산지대에서 겨울을 나기 위한 생존 필수식품으로 차를 마셔야만 했던 티베트인은 기동력과 지구력이 뛰어난 고원지대의 준마를 헐값에 차와 교환했다. 전투력을 배가시키는 고산지대의 말은 오늘날 최첨단 병기에 준하는 비장의 무기였다. 문성공주(文成公主)가 결혼예물로 가져가며 차를 티베트에 최초로 소개한 당(唐)나라는 차를 전략물자로 사용했다. 끼니는 걸러도 차는 꼭 마셔야 했던 티베트는 결국 차 중독에 빠져 나라를 잃고 중국에 예속돼 있다.

 

수나라가 만든 세계 최대 운하 경항대운하를 통해 차가 북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