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의 더러운 성욕 때문에…” ‘미투 고백’ 여의도 강타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2 13:04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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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벌 떠는 국회 의원회관…폭로 이어지지만 실명 공개엔 ‘주춤’

 

“국회에도 미투 바람이 불었다. 과연 의원회관 내 권력형 성범죄, 권력형 갑질이 사라질까. 대단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의원들은 미투의 철저한 교훈을 통해 보고도 보았다고 하지 않는, 듣고도 듣지 않았다고 하는 보좌진을 더욱 선별해 채용할 것이다. (중략) 왜 서로들 나는 아닌 척, 깨끗한 척들 하십니까.”

 

국회 직원들의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3월7일 올라온 글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파문이 여의도 정가를 휩쓸고 있다. 일각에선 제2·제3의 추가 폭로가 이어져 여진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파문이 불거진 뒤 처음으로 국회에서 실명으로 보좌진 간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사례가 나왔다. 여권의 유력주자인 정봉주 전 의원 또한 미투 운동의 중심에 서면서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 진술이 보도된 직후 본격적인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등 빠르게 선을 긋는 양상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여야 모두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일러스트 오상민

 

“딸 같다며 바지 내린 의원님”

 

하지만 정작 국회에서 일하는 직원의 상당수는 회의적이다. 3월7~8일 이틀간 만난 보좌진들 대부분은 성별과 무관하게 실명 공개가 계속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시각이었다. 폐쇄적인 국회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미투 운동의 확산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당연히 여야가 내놓는 임시처방으로는 제대로 치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국회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 무엇이 문제일까.

 

국회의 한 의원실 5급 비서관인 J씨는 3월5일 국회 홈페이지에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2012년부터 3년여간 근무했던 의원실에서 벌어진 성폭력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J씨는 “직장 상사 관계로 묶이기 시작한 뒤 장난처럼 시작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됐다”며 “‘뽀뽀해 달라’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 달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요구부터 상습적으로 엉덩이를 스치듯 만지거나 팔을 쓰다듬고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전화해 음담패설까지 (하는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발언이 계속됐다”고 밝혔다. 가해자로 지목된 보좌관은 근무지를 옮겨 다른 의원실에 소속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곧바로 면직 처리됐다.

 

국회 보좌진들은 “터질 게 터졌다”고 말한다. 국회 내엔 이미 성폭력이 만성화된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상명하복 질서가 명확해 국회 전반에 권력형 성폭력이 뿌리 깊게 퍼져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의원회관의 특성상 한번 찍히면 다른 의원실에서도 일하기 힘든 분위기여서 실명 공개를 대체로 꺼리는 분위기다. 익명으로 고발한다고 해도 가해자 실명을 언급하는 순간 피해자 또한 지목받는 구조다.

 

미투 운동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파문이 일기 전부터 익명 고발은 계속돼 왔다. 국회 직원들이 주로 고충을 토로할 때 이용하는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익명 고발이 계속돼 왔다. 의원실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직원은 ‘회관 남자 전반에 대한 #Me Too’라는 제목의 글로 의원회관 내 분위기를 전했다. 자신이 과거 한 비서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얼마든지 신고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며 “그 비서관의 인맥이나 영향력이 두려웠고, 조사를 받으면 회관에 기자들의 내부보고용 카카오톡 혹은 경찰 정보과 ‘찌라시’가 돌 수도 있는데 신원이 밝혀질 것이 두려웠다”고 적었다.

 

과거 이아무개 의원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익명의 글쓴이도 자신의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그는 “당시 딸 같다며 며느리 삼고 싶다던 의원은 내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며 “의원의 더러운 성욕 때문에 우리 부모는 딸에게 더러운 말을 하는 의원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어야만 했고, 나는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죄인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의원이 얼마 전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며 가해자를 비난하는 기사를 보고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이 글을 올린다고 해서 의원이 죄책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당당하게 대면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며 글을 마쳤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미투 운동이 본격화된 한 달 동안 국회는 무풍지대였을까. 의원회관에서 5년 이상 근무했다는 한 여성 비서는 “의원회관에서 일하는 ‘직업 보좌진’은 해당 의원이 국회를 나가도 다른 의원실로 옮겨서 일하는 고정된 인력풀”이라며 “생계를 걸고 의원실을 옮길 때마다 평판 조회를 하는데 자칫 소문이 잘못 나면 의원회관을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에 함께 일했던 의원실에서의 일이라 하더라도 의원회관을 아예 떠난다는 생각이 아니면 쉽게 실명으로 폭로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 여성정책연구회 회장이자 현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보라 비서관은 “국회에서 미투 운동 관련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당장 피해구제 매뉴얼, 대응 조직이 없어 문제”라며 “이로 인한 2, 3차 피해가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좌진 협의기구 소속의 여성 보좌진 중심으로 구성된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자 보호조치와 법률, 언론 대응 등의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 대변하는 국회부터 바뀌어야”

 

여야가 내놓는 대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여당의 한 비서관은 “보좌진의 채용·승진·해고 등 생사여탈권이 의원에게 전적으로 부여된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기 싫으면 철저히 ‘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성폭력뿐 아니라 언어폭력, 갑질이 만연한 상황에서 성폭력 상담센터를 만든다고 해서 뭐가 바뀌겠느냐”고 비판했다.

 

국회에서 여성 보좌진에겐 ‘유리천장’이 존재했다. 가령 20대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17%다. 전체 보좌진 2548명(인턴 포함) 가운데 여성은 836명(32.8%) 수준이다. 하지만 상위 직급인 보좌관(4급 상당)과 비서관(5급 상당)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각각 6.7%, 19.5%에 불과하다. 반면 9급 비서의 경우 여성 비율이 66.6%다. ‘상위 직급은 남성, 하위 직급은 여성’이라는 고용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국회의 유리천장은 강력한 갑을 구조 속에서 잠재적인 성폭력 피해자를 양산하는 셈이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국회 작동의 메커니즘은 사회의 위계화된 성별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며 “위계구조에서 여성은 상시로 남성에 의한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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