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 권력 독점화 걱정된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9 11:02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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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체 개정안 준비하는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

 

“한 번 당선됐다가 차기 대선에서 질 경우 선거 출마를 못하게 하는 대통령 연임제는 기본권인 공무담임권(국민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관의 구성원이 돼 공무를 할 수 있는 권리)을 침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발표된 자문위(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안에는 대통령의 권력 분산 의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내용을 좀 더 봐야겠지만 현재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막강한 대통령제가 나올 수 있다.”

 

한국헌법학회장인 고문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3월13일 공개된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 교수는 현재의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에만 쏠려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공소시효를 손대지 않고 단순히 권력구조만 연임제로 바꾸면 집권층의 비리가 덮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헌법학회는 대통령, 국회와는 별도로 제3의 개헌안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인터뷰는 서울 상도동 숭실대 연구실, 전화 인터뷰 방식으로 두 차례 진행됐다.  

 

고문현 한국헌법학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


 

헌법학회가 자체 개헌안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작년 12월1일 학회장 취임사에서 밝힌 바다. 올해가 제헌절 70주년이다. 최근 개헌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때 우리 학회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직무유기 아닌가. 실학에서는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나서는 게 학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지금 헌법이 심각한 병에 걸렸기에 우리 학회가 실사구시 정신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장에 취임하면서 학회 내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마련했다. 다행히 고문단에서 만장일치로 내 생각에 동의해 줬다. 이에 작년 12월21일 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85명으로 구성했는데 전국에 있는 한국헌법학회 회원이 900명이니 10명 중 한 명은 이 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학회 안은 언제 나오나.

 

“곧 나온다. 원래 3월10일까지 안을 내는 것이었는데, 세부사항에 이견이 있다. 현재로선 권력구조와 관련한 것이 가장 큰 이견이다.”

 

 

시사저널을 비롯해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다.

 

“개인의 취향 따라 다를 텐데 아마 많은 이들이 대통령제에 익숙하고 통일을 위해서도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해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변형된 내각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집권여당에선 힘을 갖고 싶을 것이고 야당은 반대로 빼고 싶어 할 것이다.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내치(內治)는 총리가 갖는다면 아마도 국회에선 총리 자리를 갖고 경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통령 직선의 의미가 반감된다. 대통령과 총리의 힘이 균형을 잡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권력의 60~70%를 가져가는 게 맞다.”

 

 

일각에선 개헌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시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기독교 단체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의견을 담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곳에서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논쟁이 많은 것은 이번에 빼고 지속 가능 발전에 필요한 것부터 조문에 넣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만약 이번 헌법에 개정이 힘들다면 최소한의 것부터 처리했으면 좋겠다.”

 

 

‘최소한 것’이라면 어디까지를 의미하나.

 

“최소한 ‘개정 절차’라도 바꿨으면 좋겠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국회 재적 인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을 거쳐야만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앞으로도 헌법 개정은 너무 힘들다. 당장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바꾸기 힘든 것 아닌가. 그렇기에 3분의 1이 반대하면 못하는 것이 아니라 5분의 3이 찬성하면 개정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행 우리 헌법은 헌법(憲法)이 아니라, 30년이 지나 헌 옷처럼 ‘올드(Old)’한 ‘헌’법이다. 30년 지난 옷은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나라에서는 얼마나 자주 헌법을 바꾸나.

 

“독일 같은 나라는 3~4년마다 헌법을 바꾼다. 솔직히 시대 상황이 바뀌면 바꾸는 게 법 아닌가. 시대가 바뀌어 상위법을 바꾸면 하위법도 바뀐다. 시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 헌법은 구석기 시대 것을 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헌법 개정 절차 쉽게…새 시대정신 담아야”

 

아예 미국식 정·부통령제와 의회 양원제를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통령제는 몰라도 양원제는 통일을 앞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 양원제로 바꿀 때 상원을 어디로 규정할지 잘 모르겠다. 경상도, 전라도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다만 미국식 정·부통령제는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는 국회에서 총리를 뽑는 것인데, 그럴 바에는 미국처럼 직접 선거를 통해 러닝메이트 형태로 부통령을 뽑는 게 더 낫다. 대통령의 궐위(闕位) 시 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 책임정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내치와 외치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원집정부제는 권력 갈등을 만들 수 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어떻게 보는가. 일부에선 과도기적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그건 법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87년 헌법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아내지 못한 건 사실이다. 기후변화나 인권 등 달라진 시대상황을 말이다. 그런 것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현행 헌법을 대통령이 지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령 국무위원 제청 건만 해도 현행 헌법에선 총리가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과연 역대 대통령 중 누가 그것을 지키려 했는가. 역대 국무총리 중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한 사람이 있나. 헌법에 규정돼 있는 것조차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의회의 권한을 높여야 한다고 보는가.

 

“의회도 회기 중 불체포 등 과도한 면책 특권 등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제왕적 의회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감사원조차 국회가 가져가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방분권 강화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 않나.

 

“큰 틀에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분권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다. 지방 법률이라는 조항을 만들면 국회가 만든 법률과 혼선이 생긴다.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문제에 대해 우리 학회는 개정안에 지방재정조정제도를 신설했다.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지원해 주는 제도를 헌법에 넣으려 한다.”

 

 

이것 말고 학회 개정안에 담긴 것 중 특이사항이 있나.

 

“현행 헌법엔 5장이 법원이고 헌법재판소가 6장에 있는데 우리는 이걸 합쳐서 사법부라고 칭했다. 그 안에 헌재를 먼저 넣고 법원 관련 법령을 나중에 넣으려 한다. 헌법이 일반 법률의 상위에 있다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바뀌어야 한다. 독일은 헌재가 위에 있고 법원이 그 아래에 있다.”

 

 

결선투표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현행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50% 이상 다수의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도가 40%대였다. 다시 말해 50% 이상이 문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정통성과 결부돼 있다. 물론 이해관계에 따라 표가 쏠릴 수야 있지만 어차피 정치 속성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선출된 대통령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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